# 단편소설 부문 당선 이주현
- “파열된 근육 다시 붙여 키우듯
- 상처와 단련으로 키운 소설근육”
# 시 부문 당선 김정미
- “쓸수록 어렵고 답없고 고독한 詩
- 도망치려 했지만… 너무 좋아서”
# 동화 부문 당선 박동식
- “영화·드라마 작업하다 쓰러져
- 건강 회복하면서 동화를 만나”
# 시조 부문 당선 김이령
- “생업으로 오래 다양한 글 써와
- 시조의 글로벌화 길 찾고 싶어”
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는 문학 향연의 맛을 모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지난해 10월 들려온 작가 한강의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첫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문학 열기를 한껏 끌어올리리라고 누구나 예측한 터이기는 했다. 문학 창작의 매력을 알아버린 한국 중·장년 세대가 꾸준히 늘어나는 현상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런 요인이 과연 신춘문예에 관한 관심과 참여로 이어질지 섣불리 확신하지는 못했다.
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는 4개 부문 모두에서 크게 늘었다. 응모한 사람 숫자를 기준으로 시 부문 508명 (전년도 397명), 시조 부문 170명(전년도 133명), 단편소설 부문 361명(전년도 244명), 동화 263명(전년도 159명)으로 집계됐다. 전년도보다 증가 폭이 크다. 부문별 단 한 사람만 뽑는 신춘문예의 ‘가혹한’ 방식을 고려하면, 모든 응모인은 더욱 치열하게 겨뤄야 했다.
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인 4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달 23일 이들을 만났다. 동화 부문 박동식(50·당선작 ‘섬섬이의 등’·부산 거주), 시조 부문 김이령(49·본명 김병곤·당선작 ‘수어 배우기’·서울), 단편소설 부문 이주현(48·당선작 ‘노란 문’·부산), 시 부문 김정미(57·필명 김도은·당선작 ‘적당한 힘’·강원도 춘천) 씨다. 이들과 이야기하며, 여전히 세고 소중한 문학의 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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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인 4인이 을사년(乙巳年) 새해를 맞이하며 문학의 바다를 향한 힘찬 새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동화 부문 박동식, 단편소설 부문 이주현, 시 부문 김정미, 시조 부문 김이령 당선인.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촬영 협조=부산 연제구 서점 책과아이들 |
■단편소설의 이주현
단편소설 당선인 이주현 씨와 이야기 나누는 일은 즐거웠다. 그는 맛깔나고 재미나게 대화를 이어갔다. 당선작 ‘노란 문’에서 보여준 이야기꾼 저력을 인터뷰 도중에도 거듭 느꼈다. 이주현 씨는 당선 소감과 문학 수업 시절에 관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는 오래도록 쓰고 또 썼습니다.” 어디에 가서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혼자 열심히 쓰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미등단 상태에서 ‘커피킹’이라는 장편소설을 2015년 펴내기도 했다.
문학 창작을 향한 갈증·갈망은 그에게서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시와 시나리오를 배우기도 했고 드라마 창작 교실도 다녀봤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동화에 관심이 커져 동화도 썼는데, 덜 까다로울 것 같던 동화가 어떤 면에서 다른 장르보다 더 어렵다는 점을 깨우치기도 했다. 그러다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언덕에 원로 추리소설가 김성종 선생이 운영하는 추리문학관이 소설 교실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가 추리문학관 근처에 살거든요. 저는 ‘추세권’(역세권 등의 표현에 빗대 추리문학관 인근이라는 뜻) 주민입니다.”
매일 노트북을 들고 추리문학관 문 열 때부터 가서 소설 쓰기를 수련하던 기간, 육필로 작품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시간, 문우들과 함께한 합평의 날들이 흘렀다. “운동과 단련을 통해 원래 있던 작은 근육이 파열되고 다시 붙는 과정을 거쳐 근육이 커진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렇게 근육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상처와 아픔을 어둡지만은 않게 그려내고, 해학과 재미도 담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다짐했다.
■시의 김정미
“차를 몰고 공지천(강원도 춘천시 도심을 흐르는 하천이자 널리 사랑받는 친수공간)으로 평소처럼 시를 쓰러 가던 길이었어요. 그때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시 당선인 김정미(필명 김도은) 씨는 당선 전화를 받고도 시를 쓰러 갔다고 한다. 김정미 씨는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에 산다. 그는 고교 때 시를 만났다. 교정에서 진지하게 시를 읽고 가르친 은사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 때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잠시 거리가 벌어졌다.
강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면서 문학의 손을 굳게 잡은 그는 시를 향해 나아갔다. 2013년 강원 지역 문예지 ‘시와 소금’ 신인상도 받았다. “시는 어렵지만, 정말 좋다”고 그는 말했다. 어렵지만, 정말 좋다. 이 표현은 깊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인상 깊은 고백으로 다가왔다. “시는 (정해진 답과 따라야 할 논리를 뛰어넘는) 직관과 함께 가야 하고, 예민한 감각을 지녀야 하며, 실제로 예민해지는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쓸수록 어렵고 답도 없고 고독하기도 해서 도망치려고도 했어요.”
그런 시 쓰기를 좀 편안하게 받아들인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 쓰기란 원래 그런 일임을 받아들인 셈이다. “논술 가르치는 일을 20여 년 하며 책 읽고 시 쓰는 일에 바빠 인간관계도 단출해졌다”고 그는 들려줬다. 3300여 명이 응모한 산문 공모에서 일등을 해 수필가로도 등단했던 그는 “이제는 시가 저의 종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면서도 새로움과 낯선 면모를 내장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동화의 박동식
부산에 사는 그는 20여 년 경력의 시나리오 작가다. 서울·부산을 오가며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본인이 참여한 영화 몇 편이 개봉했고 3년 전부터 드라마 작업을 주로 했다. 지난해 6월 그는 쓰러졌다. 동화 당선인 박동식 씨는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그때 일을 들려줬다. “심정지가 왔습니다. (쓰러진 자신을 발견한) 아내 덕분에 살았죠.” 코로나19 시국에 한국 드라마 산업 상황이 나빠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게 원인이었다고 추정한다.
“제가 활동하는 시나리오 분야(영화·드라마)에서는 ‘센 표현이 좋은 표현’이라는 식의 인식이 있습니다.” 자극성이 강하고 선명한 언어를 써야 관객과 시청자에게 더 확실히 폭넓게 먹히는 현실을 반영하는 말로 들렸다.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는 그림책과 동화를 눈여겨보게 됐다. 루이스 세풀베다 등의 동화도 있었고, 그림책도 있었다. “부산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딸이 그림을 그리고 제가 글을 쓴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올해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이 된 따뜻한 동화 ‘섬섬이의 등’이 그렇게 태어났다. “국제신문과 가까운 데 사니까 아내와 함께 걸어와서 직접 응모했죠.“ 당선 통보를 받은 직후 그는 20여 년 전 국제신문과 부산문화연구회가 주최한 국제문예아카데미 수강생으로 매주 신문사 강당에 와서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강의를 들은 인연이 떠올랐다고 했다. 세지 않아도 좋은 표현이 많음을 그의 동화는 보여줄 것 같다.
■시조의 김이령
시조 당선인 김이령(본명 김병곤) 씨는 “생업으로 오래 글을 써 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그는 연극 분야에 종사하며 희곡을 쓰고 연출도 한다. 시도 쓰고, 고유명사라는 이름의 출판사 운영에도 참여한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협동과정을 마치고 예술전문사도 취득했다. “한예종에서 뮤지컬 작사를 접하면서 정형성을 갖춘 우리 시조가 지닌 고유 리듬에 주목했습니다.” 시조의 매력과 저력을 알게 됐다.
“번역 일도 10년쯤 했습니다. 일본의 정형시가 하이쿠를 번역했는데요, 매력을 느꼈습니다. 저는 시조도 발전 가능성이 정말 크다고 봅니다. 젊은 친구들이 합류해 트렌드를 만들고 세계인을 더 널리 만나면 글로벌 차원에서 통하는 장르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조용조용 말하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 일을 호기롭게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한국 고유 장르인 시조계를 이끄는 이들은 K-문학의 한 갈래로서 시조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관심이 높다. 연극 뮤지컬 문학 출판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영역의 최전선에서 뛰는 김이령 씨의 인식은 그런 흐름과 만난다. 그는 “혼자 시조를 익히며 신춘문예에 응모한 지 올해로 3년째인데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당선 통보를 받는 순간 놀랍고 기뻤다”며 시조시인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