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태극기 정말 많다!” “야아, 진짜 대단하다.” 태극기 물결을 지켜본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감탄의 말을 내보낸다. 그렇다. 우리 5학년 3반은 지금 독립 기념관에 와 있다. 하지만 내겐 따분한 현장 학습에 불과했다. 며칠 뒤 수행평가도 걱정되고... 게다가 난 동네에서 ‘댄스퀸’이라고 소문 날 만큼 춤을 좋아한다. 그래서 춤과 관련이 없는 것들엔 별 관심이 없다. 그때 나이 지긋한 해설 선생님께서 등장하셨다. 선생님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말씀하셨다.
“지금 여러분들 앞에 태극기들이 많이 보이죠? 이 국기는 모두 815개에요. 8.15 광복절을 기념하는 거죠. 그날의 함성이 여러분들에게도 들리죠?”
함성이라구? 나는 실실 웃었지만 앞으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지 호기심이 일었다. 끼이익. 곰팡이가 슨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대문을 열자 마치 내가 일제 강점기 안에 들어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빛바랜 흰 무명 옷을 입고 슬픈 표정으로 고개 숙이고 서 있는 조선인들, 입을 벌리고 무언가 결연하게 외치는 독립 투사들, 태극기를 들고 당장이라도 뛰어 올 듯 자세를 취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 모형들이 그 시절의 모습들을 생생히 담고 있었다. 우리는 박물관 내부의 분위기에 깜짝 놀라며 점점 진지해지는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천천히 둘러보라며 자유 시간을 주셨다.
“나는 예전부터 유관순 열사님은 굉장히 존경하고 사랑했어. 이곳에 온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영광이야.” 뒤를 돌아보니 은수가 감격에 겨운 듯 유리관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답답했다. 위안부로 팔려가는 소녀들, 물고문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손톱이 빠져나가고 피를 흘리는 저 불쌍한 조선인들. 그리고 깡마른 채 쫄쫄 굶고 계신 옥중의 독립 투사분들... 그 모습은 매우 처참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일본 헌병이 내 등에 총을 대고 “이런 조센징!”이라고 말할 것 같아 조마조마 하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옛 모습을 재현한 이곳에서도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심정인데, 당시 일본 지배하에 있던 수많은 나의 조국, 나의 조상님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다음으로 우리가 본 것은 일제 강점기 아래 갇혀 있던 조선의 옛 기차였다. 기차에서 나는 소리를 유관순 열사님은 “대한 독립 만세”로 들었다고 한다. 내게도 그 기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는데 그것은 조선 팔도를 자유롭게 달리고 싶다는 울부짖음 같은 것이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이렇게 빠져든 걸까. 나는 나도 모르게 모진 고문을 당할 까봐 감옥에서 덜덜 떨고 있는 어린학생이 되었다가,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태극기로 만들어서 목숨 걸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의지와 불굴의 투사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난 내 나라를 사랑했을까? 아니 단 한번이라도, 내 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있었을까? 이 분들이 계셨기에 나 이정윤은 따뜻한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며 우리글을 배우고 춤도 출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가득 차 있을 때, 선생님과 친구들은 벌써 두 번째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그 곳에서는 벽 면 가득 차지하는 큰 빔 프로젝터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스크린에서는 고종 황제의 독살설과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3.1 운동의 장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 흑백의 흐릿한 화면이었지만 거리거리로 벌떼 같이 몰려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우리 조선인의 눈은 모두 간절함으로 같은 빛을 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평화 시위조차 허락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만세를 부르면 감옥에 투옥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죠.” 나는 얼마 전 책에서 본 ‘참담하다’라는 표현이 지금의 심정을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내 나라를 지키고 사랑하는게 왜 죄가 되는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가슴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불꽃같은 용솟음이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수행평가, 뭐 할 거야?” 은수가 물었다.
“나 결정했어, 은수야! 난 오늘 독립기념관에서 느낀 것을 노래와 춤으로 만들 거야! 제목은 ‘8호 감방의 노래.’ 어때?”
“응, 나는 독립 선언문을 써 볼 거야.” 우리는 마주 보고 서로에 대한 응원과 진지한 눈빛을 교환 했다. 버스는 천천히 달렸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독립군, 그래도 다시 불사조처럼 일어나 가슴팍에서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간절한 염원과 투지를 담은 조선인!
차창 위로 내가 만들 안무가 영상처럼 차례차례 지나갔다. 나의 춤이 웅장하고 긴장감 넘치는 그때를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을 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는 펄럭펄럭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전진하며, 내 온 마음을 다해 춤을 출 것이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지금껏 이토록 아름답게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 때문이다. 다시는 이 아름다운 산과 들을, 그리고 강과 바다를 외세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는 펄럭펄럭 아름다운 하나의 태극기가 되어 춤을 출 것이다.
사랑해, 나의 조국... 펄럭펄럭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