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카자흐 등서 신작 출품
- 주목할 만한 감독들 영화 관람
- BIFF의 정체성 재확인한 자리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개막한 지난 2일 밤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개막 파티에서 필리핀의 영화감독 로렌스 파하르도 씨를 만났다. 그에게 물었다. ‘아시아 영화감독인 당신에게 BIFF는 어떤 의미인가?’ 그는 즉각 답했다. “정말로 중요한 영화제다. 내게는 세계에서 제일 큰 영화제나 다름없다. 필리핀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그런 아시아 감독에게) BIFF는 기회와 에너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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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일 부산 해운대구 CGV센텀시티에서 카자흐스탄의 알리나 무스타피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생강 쿠키’ 출연진·제작진이 관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초창기부터 BIFF를 관통해 온 이런 소감은 실은 BIFF의 정체성이며 BIFF를 지탱하는 힘이다. 극장이나 TV에서는 좀체 접할 수 없는,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젊은 영화’를 본다는 점이 BIFF의 참맛이라는 전제 아래 지난 7일과 8일 ‘낯선 곳에서 온 영화’ 상영 현장을 취재했다.
지난 8일 CGV센텀시티 7관에서 알리나 무스타피나 감독의 카자흐스탄 영화 ‘아버지의 생강 쿠키’가 상영됐다. 노마드(유목민)처럼 세계를 떠돌며 예술 활동을 하던 알리나 무스타피나 감독, 속 깊고 다정하고 현명한 엄마 알리사, 어릴 적 폴란드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관한 미안함을 여전히 간직한 85세 외할머니. 이들 세 사람이 카잔을 거쳐 폴란드로 가는 여정을 비추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삶에 대한 통찰과 응원을 객석을 향해 보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과 출연진·제작진이 대화하는 GV(Guest Visit)가 열렸다. 알리나 감독, 작품에 출연한 엄마 알리사가 제작 관계자와 함께 나온 GV에서는 질문이 쏟아졌다. 진행자는 급기야 “GV 시간이 다 되었다. 아쉬운 관객분들은 극장 바깥 로비로 나가 알리나 감독이 준비해 온 영화 홍보 엽서에 사인을 받으시기 바란다”고 안내했다.
이내 극장 밖에 긴 줄이 생겼고 알리나 감독은 국내외 영화관객에게 사인을 해주며 영화 이야기를 더 나눴다. 소감을 묻자 알리나 감독은 “내 영화를 상영하고 이렇게 많은 관객에게 사인을 하다니. 처음이다. 충격받았다(I am shocked).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BIFF 관객의 열정은 여전했다.
같은 날 CGV센텀시티 5관에서 상영된 ‘뿔닭이 되는 것에 대하여’(감독 룬가노 뇨니)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온 영화였다. 이 영화 또한 ‘우리’는, 세계인은 하나로 연결된 존재임을 강렬하게 느끼게 했다. 잠비아에서 일어난 일을 담은 영화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곧 오늘날 한국 이야기이고 ‘우리’가 처한 현실임을 내보이는 보편성의 힘을 영화는 발휘했다. 여성이 처한 어처구니없는 차별, 이를 둘러싼 뿌리 깊은 인식·관행의 부당함, 모든 사람의 대등함을 영화는 지구 반대편 관객에게 인상 깊게 제시했다.
지난 7일 관람한 ‘빛이 산산이 부서지면’(감독 루나르 루나르손)은 아이슬란드 청춘들의 만남·사랑·헤어짐·애도·연대를 그렸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이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친 상황에서 남은 이들의 애도와 연대를 비추며 때묻지 않은 청춘들의 세계를 보여주는데, 아마 한국 청춘들도 이럴 것이다. ‘뿔닭…’과 ‘빛이……’의 GV는 따로 열리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 온 젊고 활력 넘치는 영화를 보는 맛, 이 맛이 비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