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자리만 머물며 서식한다해서
- 제주서 ‘자리’라 부른게 명칭 돼
- 어획량·소비 모두 제주도가 최고
- 집된장·제피·쉰다리 식초 넣고
- 시원하게 버무린 물회로 복달임
- 비늘 그대로 구워 통째 씹거나
- 간장양념으로 바짝 졸여 반찬도
- 동·서쪽 젓갈 담그는 법도 달라
- 성산포에선 통째 소금에 박고
- 모슬포에선 짓이겨 삭혀 먹어
무더운 여름, 갯바위 낚시를 하다 보면 물때 지난 대낮에는 물고기 입질이 뜸하다. 그렇지 않으면 치어 떼나 졸복들의 습격에 하릴없이 미끼만 떼이는 고난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날은 덥고 허기가 질 때 가끔 반가운 손님이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다. 자리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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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7대 향토 음식에 선정된 ‘자리물회’.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제공 |
자리돔 몇 마리 얻어걸리면 바로 회를 뜬다. 대가리와 비늘 치고 내장 긁어내면 장만 끝이다. 자리돔은 뼈째 껍질째 꼬리지느러미째 먹을 수 있기에 그렇다. 장만한 자리돔은 넓적넓적 썰어서 된장에 찍어서 먹으면 된다.
손바닥 크기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어종이지만, 대가리가 작고 내장이 적어 장만하기에도 수월할뿐더러 썰어 놓으면 양도 많다. 그래서 낚시꾼치고 자리돔 좋아하지 않는 이가 드물 것이다. 잡는 즉시 숭덩숭덩 썰어서 술안주나 허기를 속이는 끼니로도 좋기에 그렇다.
■제주 사람에게 특히 친숙한 어종 |
| 같은 ‘자리젓갈’도 제주 동쪽은 통째로 삭히고(왼쪽), 서쪽은 머리를 짓이겨 담는다. |
개인적으로 자리돔에 대한 맛있는 기억이 꽤 있다. 한려수도 취재차 대매물도에 묵을 때였다. 취재 어선을 빌린 선장님의 소개로 마을 사람들과 대매물도 포구 한 귀퉁이에 퍼질러 앉아 자리돔 쌈밥으로 점심을 푸지게 먹은 적이 있다.
고무 대야 가득 잡은 자리돔을 이 마을에서 가장 젊다는 50대 말 연배의 이장이 연신 썰어대고, 이를 두레밥 먹듯이 상추에 밥 한 덩이 올리고 자리회를 된장에 푹 찍어 함께 쌈으로 먹었다. 입안이 미어터져라 자리회 쌈을 연신 싸서 먹어 배불러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쌈을 싸고 있는 자신이 신기하기만 할 정도였다.
꽤 아끼던 제주 출신 후배의 초청으로 제주도에 머무를 때였다. 이 후배가 제주에서 제일 먼저 데리고 간 곳이 자리물회 전문 식당이었다. 그에게 자리물회는 외지 손님들을 맞기 위한 제주의 ‘웰컴 푸드’였을 것이다. 들큼하고 구수한 국물, 고소한 자리회에 아작아작 씹히는 꼬리지느러미의 식감까지, 참으로 흔쾌한 제주의 맛깔이었다.
자리돔은 자리돔과의 물고기이다. ‘자리’ 혹은 ‘자돔’이라고도 한다. 통영 지역에서는 ‘생이리’라고도 부른단다. 몸길이 18㎝ 전후의 소형 어종으로 몸빛은 흑갈색이고 입은 아주 작다. 대표적인 아열대성 물고기로 수심 20~30m의 해안 절벽 지형 등에서 많은 개체 수가 떼를 지어 서식한다. 산란기는 5~8월로,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 연안과 일본, 동중국해 등에 분포한다.
우리나라는 제주도에서 자리돔 대부분을 어획하고 소비한다. 제주도에서는 보리 이삭이 패는 4, 5월 무렵 본격적인 자리돔 어획을 시작해 다양한 조리법으로 갖은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만큼 제주 사람에게 자리돔은 활용도가 높은 물고기이자, 소중한 ‘소울푸드’ 식재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리돔’을 비롯해 ‘자리’ ‘자돔’ 등 자리돔 이름 대부분이, 제주도에서 부르던 말인 것만 봐도 쉬 알 수가 있다, 이 가운데 ‘자리돔’이 정식 학명으로 등재되고, 제주에서는 통상 ‘자리’라 널리 부른다.
제주 사람들이 자리돔을 ‘자리’라 부르는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서식지 한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한자리에 머문다고 자리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만큼 제주 사람들은 맛도 좋고 흔한 자리돔으로 온갖 음식을 만들어 오래도록 먹어 왔다. 우선 자리회를 비롯해 자리물회 자리구이 자리지짐(조림) 자리젓갈 자리젓지짐 등으로 밥상에 귀히 올려 먹었던 것이다.
“제주의 옛 어르신들은 여름에는 ‘리’자로 끝나는 다섯 가지 ‘바릇궤기(생선)’가 맛있다고 했는데요, 다금바리 붉바리 벤자리 객주리(말쥐치) 자리’가 그것입니다. 그 가운데 제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어종이 ‘자리’이고, 특히 좋아하는 생선 또한 자리입니다.”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의 말이다.
양 원장의 말대로 제주 사람들은 값싸고 양 많고 맛있는, 가성비 좋은 자리를 활용해 끼니로, 반찬으로, 술안주로 그들의 입을 즐겁게 했고, 배를 불렸던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이면서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자리 음식은 ‘자리물회’일 것이다.
■밥상 위의 감초 역할 ‘톡톡’ |
| 극강의 고소함을 자랑하는 ‘자리구이’. 비늘을 벗기지 않고 짭짤하게 구워 통째 먹는다. |
자리물회는 제주의 대표적인 여름 음식으로 ‘제주도 7대 향토 음식’에도 선정된 바 있다. 이 자리물회 때문에, ‘제주 자리 음식’이 ‘여름 음식’으로 분류된다. 원래 어부들의 노동식이었지만, 이제는 시원하게 한 그릇 훌훌 마시는 자리물회가 제주 사람 여름 복달임 음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전통적인 제주 자리물회는, 자리와 함께 다진 마늘 부추 풋고추 깻잎을 썰어 넣고, 집에서 담은 ‘토장’과 허브 성분의 ‘제피’, 곡물로 지은 밥을 삭힌 ‘쉰다리 식초’ 등에 버무린 후 냉수를 부어 먹는다. 토속 된장으로 물회의 구수한 맛을 내고, 신맛이 강렬하고 독특한 풍미의 ‘쉰다리 식초’로 상쾌함을, 향기가 진한 제피로 비린내를 잡아주고 향긋함을 올려준다.
원래 제주 사람들의 밥상에 자주 오른 자리 음식은 단연 ‘자리구이’였다. 석쇠 위의 자리가 살짝 기름이 오르게 구운 ‘자리구이’는 그 고소함을 비교할 생선이 없어서다. 소금을 듬뿍 묻히고 짭짤하게 구워낸 자리 한 마리면 밥 한 사발은 거뜬히 비워내곤 했단다. 자리는 비늘을 벗기지 않고 구워야 제맛을 볼 수 있다. 비늘을 제거하면 살이 모두 타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늘째 뭉근한 불에 오래 구워야 맛있게 구워지고 가시까지 통째 씹어먹을 수 있다. 특히 알밴 자리는 더욱 고소하고 맛이 좋아 최고 인기였단다.
‘자리지짐’은 자리를 간장양념으로 조린 음식이다. 제주 사람들은 양념으로 조려내는 음식을 ‘조림’이라 하지 않고 ‘지짐’이라 부르는데, 국물 없이 바짝 조려내기 때문에 ‘지진다’고 표현한단다.
전통적인 방식은 간장에 다진 마늘과 물을 소량 섞은 양념을 자리 위에 끼얹고 뭉근한 불에 졸여 가시째 먹는다. 국물이 다 졸여지도록 바싹 조리는 것이 조리법의 핵심. 이렇게 조려낸 ‘자리지짐’은 그 짭조름하고 구수한 풍미로 거친 잡곡밥도 ‘한 그릇 뚝딱’하는 밥상 위 감초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자리젓갈’은 보리 수확 철에 주로 담가 먹었다. 다 자라기 전의 작은놈들을 골라 젓갈을 담그는데, 자리를 천일염에 섞어 항아리에 담고 발효될 때까지 기다리면 자리젓이 된다. 이 젓갈로 제주 사람들은 반찬으로, 양념으로, 젓갈 지짐으로 다양하게 소용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제주도 동쪽과 서쪽 지역의 자리젓 담그는 법이 다르다는 점. 양 원장에 따르면 “모슬포를 비롯한 서쪽 지역에서는 젓갈을 골고루 잘 삭히기 위해서 머리를 ‘막개(나무방망이)’ 등으로 가볍게 짓이겨서 젓갈을 담고, 성산포를 비롯한 동쪽 지역의 자리젓은 통째로 소금에 박아 삭히는데, 그 맛이 서로 달라 두 자리젓을 일별하며 맛을 보는 것도 아주 재미난 제주 맛 여행이 될 것”이란다.
이처럼 제주 사람들은 자리돔에 대한 애정이 참으로 남다르다. 그만큼 자리를 활용한 음식 또한 많고 잘 발달돼 있음도 당연하다. 이 때문에 자리돔을 이용한 음식에 대한 자긍심도 상당하다. 그래서일까? 자리돔을 보면 제주 사람의 고유한 음식문화를 살짝 엿볼 수가 있겠다. 여름의 제주에서 ‘자리 음식’을 먹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