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모양 토우는 1999년 부산박물관에서 실시한 부산 동삼동패총 정화 지역 발굴 조사에서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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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양양
오산리유적에서
출토된 곰모양 토우(왼쪽)와
부산 동삼동패총출토 곰모양 토우.
부산박물관 제공 |
덧무늬토기와 같이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볼 때 6500~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결실된 부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곰의 머리 부분만 만들고 뾰족한 도구로 눈과 코를 표현했다. 길이는 3.5㎝에 불과하다.
토우(土偶)는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인데, 사람의 모습을 갖춘 것만이 아니고 다른 여러 가지의 동물·생활용구·집 등 사물을 본떠서 만든 물건을 통칭한다. 흙뿐 아니라 동물의 뿔이나 뼈, 나무 등으로 만든 것도 있고 드물게는 짚이나 풀 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유물은 흙으로 만든 것이 가장 많으므로 일반적으로 토우라는 범위 안에서 설명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토우가 출토되기 시작하며 신라·통일신라시대에 가장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신석기시대에서도 뾰족 밑의 빗살무늬토기와 같이 출토되는 토우는 사람의 성기나 성적 특성을 부각한 토우가 위주지만, 빗살무늬토기보다 이른 붉은칠 토기·덧무늬토기 등과 같이 출토된 토우는 곰 물개 멧돼지 등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우가 많다.
동삼동패총의 곰 토우는 후자에 속하며, 한반도 북부 지역과 중국 동북 지역, 시베리아 지역에 확산하여 있었던 동물 숭배, 특히 곰 숭배와 관련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 곰이 신격화되고 단군을 낳았다고 하는 것도 동북시베리아 지역의 곰 숭배에서 그 뿌리를 찾으려는 연구자들이 많다.
곰은 사람과의 유사성 때문에 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사람과 동일시된다.
곰 모양 토우는 동삼동패총 외에도 강원도 양양 오산리유적에서 붉은칠 토기와 함께 출토된 것이 있다. 두 마리 모두 표정이 온화하거나 익살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사람들도 곰을 친근한 존재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시베리아에서 곰은 한 부족이나 씨족의 ‘최초의 조상’ ‘오래된 친척’ 등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하고, 샤머니즘에서는 샤먼이 곰의 도움을 받아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거나 저승으로 간 영혼을 되찾아 오기도 하며, 질병을 치료하고 점을 치기도 한다.
신석기시대 사람들도 곰에 대해 친근하게 생각하면서도 곰이 가진 범상치 않은 힘과 신비로운 속성을 보고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을 것이다. 곰 모양 토우는 의례나 제사를 올릴 때 신의(神意)의 전달자·중계자로 이용된 주술적 도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토우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유물이다. 특히 동삼동패총의 곰 모양 토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사례여서 발굴 조사 당시 크게 주목받았다.
그런데 현재 동삼동패총전시관에는 곰 모양 토우의 복제품이 있고, 실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국가대표 토우로서 더 많은 관람객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뿌듯한 일이지만, 푸바오가 본적지인 중국으로 돌아가듯이 곰 모양 토우도 자신이 태어난 동삼동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