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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93> 어을빈과 만병통치약 ‘만병수’

근대의 만병통치약 ‘만병수’ 홍보책자, 엄청난 판매고…독립자금으로도 기부

  • 허미연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4-03-18 19:20:55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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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은 과연 있을까. 요즘은 모든 약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체질과 병세에 따라 약을 알맞게 써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00년대 초만 해도 만병통치약으로 사람 사이에서 널리 이름을 날리던 약이 있었다. 바로 어을빈의 ‘만병수’이다.

미국 의료 선교사로 부산에 온 찰스 어빈(Charles H. Irvin)은 어을빈(漁乙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의료 선교활동을 펼쳤다. 메리 콜린스 휘팅 시약소를 개소해 운영했으며, 1903년 초량에 전킨 기념병원을 세워 해마다 6000~1만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부산 최초 한센병 환자 전용시설인 상애원을 세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후 1911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어을빈 병원’을 열어 각종 약품을 제조해 팔았다.

어을빈의 제조 약품 홍보 책자(사진)에는 14장에 걸쳐 그가 판매한 약이 총망라돼 있다. 이 가운데 만병수는 어을빈이 해마다 수만 명 조선 사람의 병을 진찰해 얻은 경험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맛도 모양도 값도 생각지 않고 오로지 이 한 가지 약으로 여러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만든 것임을 강조한다. 약의 효험이 있는 병을 나열해 두었는데, 황달 종기 부종 체증 신경통 인후통 외에도 급성매독 동맥경화증 심지어 반신불수에도 효능이 있다고 기록했다.

한약을 달여 마시던 이전과 달리, 유리병 뚜껑만 열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만병수는 신문물인 데다 미국인 의사가 제조했다 하니 인기가 급격히 높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신문을 활용해 크게 광고하면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부산과 전국을 넘어 일본 대만 만주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정도였다. 만병수 인기가 높아지자 일본인이 설립한 제약회사에서 ‘만병약수’라는 이름의 유사한 약도 등장했다. 홍보 책자와 약병까지 비슷해 어을빈의 홍보 책자 곳곳에 위조약을 주의할 것을 당부할 정도였다.

만병수는 한 병에 420g으로 약 15일분이었다. 한 병에 1원(圓) 90전(錢)에 판매됐는데, 1931년 기준 조선인 남성 공장 노동자 평균 하루 임금이 93전(錢)으로 1원(圓)이 채 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꽤 비싼 약이라 할 수 있다. 1년 판매고가 20만 원에 이를 만큼 막대한 돈을 벌었던 어을빈은 우산 윤현진 선생을 통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 30만 원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센병 예방협회에 금전을 기부했으며, 몹시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고쳐주는 등 의료 구제 활동도 지속했다.

그는 40년간 부산 생활 끝에 1933년 영면하여 부산 중구 복병산에 안장되었다. 어을빈 사망 이후 그의 아들이 ‘만병수 정(錠)’이라는 알약 형태로 유통을 재개했으나 약 광고는 1939년을 끝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게 어을빈과 만병통치약 ‘만병수’는 잊혀 갔지만, 부산박물관 근현대실에서 그 자취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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