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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1> 순천 돼지국밥

접시 수북한 수육·순대가 먼저…여긴 돼지국밥도 코스요리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1-23 19:31:2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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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울푸드 메뉴로 자리잡은 부산
- 다양한 팔도조리법 변형돼 정착

- 순천식은 머리육수로 맑은 국물
- 오일장 웃장엔 대규모 식당골목

- 2인 이상 주문 땐 수육이 서비스
- 데친 배춧속과 정구지도 한 가득
- 국은 콩나물 넣어 시원하고 아삭

- 해장하러 왔다가 낮술로 또 취해

돼지국밥이라고 하면 예나 지금이나 서민을 대표하는 탕반 음식 중 하나이다. 어디에 가더라도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고, 돼지의 갖은 부위로 탕을 만들고 밥을 말아 대접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장터에서도 서민들 장국밥은 돼지국밥이 대표적이었다.
순천에서 받아든 돼지국밥 한 그릇. 약간 맑은 육수의 돼지머리국밥으로 보면 되는데 콩나물도 들어간다.
■팔도 돼지국밥 부산에 모여

우리 민족의 소울푸드인 돼지국밥은 특히 부산이 그 브랜드가치나 전국적 인지도 면에서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의 돼지국밥은 팔도의 이주민들이 부산으로 이주해 와서, 자기 고향 특유의 돼지 음식을 부산에서 발현시켰기에 ‘팔도의 음식문화’가 모두 반영된 국밥이기 때문이다.

2인 이상 국밥을 주문하면 서비스로 나오는 수육과 순대. 배추와 부추(정구지)가 가득하다.
그래서 온갖 다양한 돼지국밥이 부산에는 존재한다. 팔도의 음식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팔도의 조리법으로 만들어 낸 돼지국밥이 부산에 정착한 것이다. 그래서 부산 돼지국밥은 국밥의 레시피에 있어서는 딱히 정형이 없다.

국밥의 주요 식재료가 고기 머리 내장 순대 등으로 부위에 따라 국밥 이름이 달라지고, 육수도 사골 위주의 뽀얀 육수, 돼지머리를 삶은 약간 맑은 육수, 고기로만 국물을 낸 맑은 육수로 크게 나뉜다.

팔도 출신의 소비자 기호에 맞게 국밥에 국수를 넣기도 하고 우동 면을 넣기도 한다. 국에 밥을 말지 않고 따로 차려주는 따로국밥과 수육과 함께 상을 내는 수육 백반,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제공하는 섞어 국밥 등 팔도의 음식문화 다양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여러 다양성과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게 부산 돼지국밥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산 돼지국밥은 가히 대한민국 돼지국밥의 교과서 또는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도 하겠다.

■순천 돼지국밥엔 콩나물 ‘쏙’

돼지국밥집이 20곳 넘게 있는 순천 웃장 국밥거리 정경.
얼마 전 전남 순천에 며칠 들른 적이 있다. 주변 지역의 여수 서대회, 벌교 참꼬막, 순천 찔룩게 튀김 등 남도의 제철 음식을 일별했던 기꺼운 시간이었다. 순천을 떠나기 전 해장을 겸한 늦은 아침을 먹으러 웃장에 들렀다. 이곳에서 순천 돼지국밥을 먹어볼 요량이었다.

순천에는 대표적인 전통 오일장이 두 곳 있다. 순천 원도심 위쪽의 웃장과 아래쪽의 아랫장이 그것이다. 각각 5일 10일, 2일 7일에 장이 선다. 남도의 동부지역 물산이 모두 이곳에 모이는 크고 활기찬 오일장들이다.

그중 웃장에는 스무 곳 남짓의 돼지국밥집이 모여 돼지국밥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순천의 음식문화를 되직하게 담은 돼지국밥 거리이자 전국에서 제일 큰 돼지국밥 거리이기도 하다. 국밥 거리가 들어선 지는 30여 년. 2010년부터는 매년 9월 8일 국밥 축제가 열리는, 순천 사람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기도 하다.

순천 웃장의 돼지국밥은 부산식 분류법에 따르면 돼지머리로 조리한 약간 맑은 육수의 ‘돼지머리국밥’이다. 수육 또한 당연히 머리 고기이다. 삶은 돼지머리를 잘 손질해 부위별로 나누고, 머리뼈와 장만이 된 머리 고기를 넣고 육수를 낸다. 이 때문에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없이 국물이 깔끔하다.

순천 돼지머리국밥이 부산 돼지머리국밥과 다른 점은 국밥 안에 콩나물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국물이 끝없이 시원하고 개운하다. 식감 또한 아삭아삭한 것이 신선하고 청량감마저 돈다. 그러나 순천 돼지국밥이 여타 지역의 돼지국밥과 천차만별로 다른 점은 넉넉한 인심과 푸근한 맛의 여정일 것이다.

일단 국밥을 주문하면 수육과 순대가 먼저 한 접시 상에 오른다. 국밥 먹기 전에 수육과 순대 한 점 먹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순천 돼지국밥은 국밥 먹는 절차가 다른 지역과 다르다. 본디 국밥은 전통 장터를 중심으로 맛보는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이다. 원래 장터국밥은 가마솥에 설설 끓어오르는 국물에 찬밥 한 그릇 국자로 토렴해서 뚝딱 말아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곳 웃장 돼지국밥은 마치 코스요리처럼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음식이 상에 오른다.

2인 이상 국밥을 주문하면 제공되는 수육과 순대 한 접시. 이를 받으면 적잖이 놀란다. 기존 판매되는 수육을 사람 숫자에 비례해 덤으로 제공하니 말이다. 게다가 양도 한 접시 수북하니 넉넉하다. 돼지머리 여러 부위의 맛과 식감은 젓가락을 집을 때마다 어떤 맛일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순대의 구수하면서 진한 육향과 쫀득한 식감 또한 참으로 흔쾌하다. 덤이라고 하기엔 황송하기 그지없을 정도로 맛 또한 뛰어나다.

■낮술 부르는 서비스 수육 ‘푸짐’

이 서비스 수육에는 또 다른 반전이 있다. 이곳 손님들은 모두 삶은 배추와 정구지를 수북하니 올린 접시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릴없이 받아든다. 타지 사람들이 볼 때는 참으로 뜬금없다. 주인장이 준 접시를 ‘이게 뭔가?’하고 배춧속을 살포시 들춰보면 그 안에 김이 솔솔 나는 수육과 순대가 고스란하다.

돼지고기 육수에 데친 배춧속과 정구지를 한 입 먹으면 채소의 아주 다디단 맛과 향긋한 향이 은은하다. 이를 야들야들한 머리 고기 수육, 쫀득쫀득한 순대와 함께 곁들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서로 잘 어울리는 음식 궁합을 경험할 수가 있다.

이렇게 공짜 수육 접시를 앞에 두고 그냥 두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일단 반주 한 잔 슬쩍 걸쳐야 하는 것이다. 술꾼들에게는 해장하러 왔다가 막걸리 한 잔으로 다시 낮술 부추기는 풍경이다. 특히나 막걸리가 참 맛있는 도시 순천에서, 맛있는 수육과 고소한 순대로 막걸리 한 잔의 술추렴은 당연한 일이다. 이곳 순천의 술꾼뿐만 아니라 멀리서 온 나그네들에게도 순천 돼지국밥의 식사는 ‘낮술하는 자유의 시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수육으로 술추렴을 하다 보면 국밥이 상에 오른다. 여러 부위의 머리 고기가 뚝배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야들야들 보들보들 살강살강 쫀득쫀득 여러 가지 식감이 입을 즐겁게 하고, 국물은 콩나물과 버섯 등속이 들어가 ‘짜르르’ 뜨거우면서도 시원하고 진하면서도 개운하고 깔끔하다. 이참에 막걸리 한 병, “그래~! 또 한 병” 시켜 보는 것이다.

장이 선 지 백여 년. 순천 웃장의 돼지국밥집은 어느 곳에 들어가도 넉넉하고 푸짐하다. 뚝배기 속을 꽉꽉 채운 국밥, 그리고 덤으로 주는 순대와 수육까지, 돼지 음식을 풀코스로 제공하는 것이 바로 ‘순천 돼지국밥’이다.

비록 고급스러운 부위의 살코기는 아니지만 부드러운 머리 고기에 진득한 정성과 풍성한 인심이 들어가 있는 순천의 소울푸드. 이것이 순천 돼지국밥의 특징이고 ‘하늘이 순한(順天) 고장’ 순천 사람들의 손님을 맞는 징한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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