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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0> 신년 울릉도 음식기행

열악한 환경이 빚어낸 울릉도의 맛, 바다서 건져올린 모든 것이 밥상에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1-09 19:24:28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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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음식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 물엉겅퀴 참고비 토속 식재료에
- 동해가 내어준 각종 해산물 조합
- 자연밥상 찾는 관광객들의 성지

- 삿갓조개 듬뿍 따개비 칼국수
- 토종 섭 홍합밥에 돌미역국
- 해초·초장과 버무린 꽁치물회
- 난전 오징어와 누런창찌개까지
- 울릉도 대표 별미에 입이 호강

새해 첫날 울릉도로 향했다. 망망대해, 칠흑 같은 동해의 밤은 깊고 넓었다. 그리고 한 해의 시공간을 품고 광대무변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윽고 먼동이 튼다. 꿈틀대는 붉은 바다, 그리고 멀리 울릉도가 아스라하다.
오징어누런창찌개.
사동항에 내려 천부행 버스를 탄다. 천부에서 구절양장 산길을 구불구불 오른다. 나리분지는 눈에 쌓여 적요하다. 나리분지는 울릉도 개척자들이 농경지로 일군 울릉도 개척사의 한 장소이다. 울릉도 특산의 식재료인 참고비 눈개승마 더덕 홍감자 섬말나리 물엉겅퀴 등이 재배되거나 자생하고 있다.

■삿갓조개 듬뿍 칼국수 먹고

따개비칼국수.
이 식재료 중 일부는 비영리 국제기구인 슬로푸드 국제본부가 나라별 전통 음식 중 소멸 위기에 처한 종자나 식재료 등을 발굴하여 ‘지역 음식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맛의 방주’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들로 울릉도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울릉도 특유의 토속 음식을 만들어 먹어왔다는 것이다.

이곳의 몇몇 식당에는 나리분지의 식재료로 ‘산채비빔밥’과 ‘참고비 나물볶음’ ‘삼나물회’ ‘감자더덕전’ 등을 만들어 육지 나그네들에게 제공한다. 천궁 더덕 호박 마가목 등에 누룩을 섞어 띄운 ‘씨껍데기술’도 좋은 마실 거리다.

눈 쌓인 나리분지를 한 바퀴 돌고 추산을 돌아드는 추산길을 걸어 내린다. 추산마을에서 천부까지 해안 길을 걸으며 거센 조류의 꿈틀거림 속 파도를 본다. 파도의 물거품이 푸른 옥색을 띤다. 마치 갑진년의 푸른 용이 꿈틀대며 승천을 준비하는 듯하다.

천부의 유명한 ‘따개비 칼국수집’에서 삿갓조개 넉넉히 들어간 칼국수로 몸을 데운다. 울릉도산 삿갓조개 살이 넉넉히 들어가 있어, 칼국수와 함께 씹으니 쫄깃하면서 고소하다. 계속 먹을수록 깊은 해물 냄새가 입안 가득 퍼지는 게 울릉도 바다를 닮았다. 울릉도 바다에 자생하는 해초, 대황으로 담근 ‘대황김치’와 곁들이면 쫀득쫀득하니 금상첨화다.

배를 채운 뒤 순환도로를 따라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든다. 화산섬 울릉도는 온 섬이 자연 지질 박물관이다. 해안 전역이 기암괴석의 단애와 절리가 끊어질 듯 이어진다. 최근 들어 관광자원 개발로 온 섬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울릉도의 광대한 풍광은 자연이 빚은 거대한 만물상임은 변하지 않는다.

■꽁치물회 한 점에 맑은 술 한잔

울릉도에서 맛본 꽁치물회.
도동에서 토속 음식 ‘홍합밥’을 먹는다. 울릉도의 토종 홍합인 섭을 넉넉히 넣고 밥을 했다. 국으로는 울릉도 자연산 ‘돌미역국’, 반찬은 취나물 부지깽이 대황 명이 도라지…. 울릉도의 여러 가지 나물을 말리고 삶고 데쳐서 조물조물 무치고 볶고 조려서 낸다.

밥에서 해물의 바다 향이 넘실거리고 참기름의 고소함이 물밀듯 밀려온다. 씹을 때마다 해물이 스며든 밥알이 흔쾌하고, 정갈한 식단 구성과 깔끔한 음식 맛이 아주 조화롭다. 자연밥상 한 상 제대로 대접받은 느낌(국제신문 2019년 7월 31일 자 19면 참조)이다.

대황김치.
섬에도 밤은 찾아온다. 저동항이 보이는 곳에 여장을 푼다. 먼 곳 섬의 밤은 나그네 심사를 어지럽게 한다. 한 식당에서 소주와 꽁치물회를 시킨다. 창가로 울릉도의 바람이 황소울음을 운다. 투명한 소주 한 잔에 적당히 말려 고소하고 쫀득한 꽁치물회 한 점 먹는다.

꽁치는 한때 동해의 최대 어획 어종 가운데 하나였다. 울릉도에서는 꽁치를 손으로 잡는 ‘손꽁치잡이’가 이뤄졌다. 가마니에 해초를 매달아 물 위에 띄워 놓고 그 해초에 산란을 위해 모여드는 꽁치를 맨손으로 잡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잡은 꽁치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중 하나가 울릉도 토속음식인 ‘꽁치물회’이다. 잘 장만한 꽁치를 잘게 찢어 갖은 채소, 해초를 넣고 초장에 비벼 먹는다. 그 맛이 고소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것이 밥과 함께 먹어도 되고 술안주로도 안성맞춤이다.

■오징어내장 넣은 요리도 일품

오징어회.
칠흑 같은 어둠 속 선창은 이미 귀항한 배의 불빛으로 환하다. 오랜만의 만선으로 활기가 넘쳐난다. 고기를 부리는 어부나 그 고기를 받아 담는 선창의 아주머니나 몸놀림이 분주하다.큰 고무 대야 속을 들여다본다. 요즘 보기 힘들다는 오징어가 꽉꽉 들어찼다. 난류 북상과 치어 남획으로 이제 동해에서는 씨가 말랐다고들 하는 한류성 어족이다. 지금이 주된 어획 철은 아니어서 더욱 눈길이 갔다. 이곳 주민들 얘기로는 며칠째 잡히지 않다가 오랜만의 풍성한 조과란다. 이렇게 오징어가 잡히지 않은 지가 벌써 몇 년 됐다고 한다. 예전의 저동항은 오징어 어업 전진기지였다. 한때 대낮처럼 불을 밝힌 오징어 배로 불야성을 이뤘다. 하루에도 수십 척 배가 출항해 울릉도 앞바다를 어화(漁火)로 물들였던 곳이다. 모든 오징어 배가 저동항으로 들어오고 오징어 할복장 작업장 경매장 등이 이곳에 있었다. 사시사철 오징어를 말리는 콤콤한 냄새가 진동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활기찬 모습의 저동항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선창 옆 활어를 파는 할머니 세 명이 좌판을 펼쳤다. 밀복과 오징어가 고무대야에 가득하다. 오징어와 한치 한 마리씩 회를 떠달라고 부탁한다. 비는 추적추적 오는데 생선회 좌판 옆에서 갓 잡은 오징어회를 먹는다. 방금까지 맑고 깊은 동해의 바다에서 맘껏 유영하던 놈들이다. 꼬들꼬들 오돌오돌 잘강잘강 몰캉몰캉 다양한 식감이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하게 스며든다. 그러고는 다디단 감칠맛으로 입안을 한껏 희롱하는 것이다.

저동항 선창에는 이곳만의 진풍경이 하나 있다. 오징어보다 오징어 내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울릉도에서 오징어는 버릴 것 하나 없는 어종이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울릉도 사람들은 오징어 배를 따고 남은 내장 부산물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오징어 창자는 ‘오징어누런창찌개’의 식재료로, 오징어알과 정소는 ‘오징어내장탕’의 주요 식재료로 소용(국제신문 2019년 1월 23일 자 20면 참조)됐기에 그렇다.

오징어누런창찌개는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하고 아주 짙은 체취와 기름진 맛이 돌고, 오징어내장탕은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을 낸다. 오징어누런창찌개는 울릉도 사람들 겨울나기 음식이고, 맑은 국물이 특징인 오징어내장탕은 관광객의 해장용 아침 식사로 인기가 좋다. 이 모두가 저동 선창의 토속 음식이다.

먹을 것이 제대로 없던 시절, 조악한 음식 재료로 끼니를 이어갔던 울릉도 사람의 토속음식들. 사흘여를 울릉도 전역을 돌며 울릉도 주민이 자주 찾는 원조 음식점을 두루 찾아다녔다. 오랜만의 기껍고도 여유로운 시간, 울릉도 ‘자연밥상’으로 힐링의 한때를 쏠쏠하게 보낸 것이다. 아! 울릉도 칡소와 독도새우, 호박 식혜도 빠지면 섭섭한 울릉도 음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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