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핍한 진영, 물고기로 곡식교환
- 새 수루에 다락방·사랑채도 지어
- 떠나는 이억기와 작별의 술자리
- 견내량으로 순찰선 보내 적 정탐
10월10일[11월11일] 맑음.
늦게 새로 지은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수사 경상수사가 함께 와서 조용히 이야기했다.
10월11일[11월12일] 맑음.
일찍 수루로 올라가 종일 다락방 공사를 감독했다.
10월12일[11월13일] 맑음.
일찍 수루 위로 올라가 다락방 공사를 감독했다. 수루 서쪽에 사랑채를 만들어 세웠다. 저녁에 송홍득이 들어왔는데, 망녕된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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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통영시 명정동에 있는 충렬사 전경이다.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위패를 모신 조선 시대 건물로 1973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
10월13일[11월14일] 맑음.
일찍 새로 지은 수루에 올라가 대청에 흙을 올려붙였다. 투항해 온 왜인들을 시켜 일을 끝마치도록 했다. 송홍득이 군관을 따라 나갔다.
10월14일[11월15일] 맑음.
우수사 경상수사 사도첨사 여도만호 녹도만호 등이 와서 만났다.
10월15일[11월16일] 맑음.
새벽에 망궐례를 올렸다. 저녁에 달빛을 타고 우수사(이억기)와 작별의 술을 마셨다. 경상수사(권준) 미조항첨사(성윤문) 사도첨사(김완)도 함께 했다.
10월16일[11월17일] 맑음.
새벽에 새로 지은 수루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우수사(이억기)는 임치첨사, 목포만호 등을 데리고 떠났다. 그대로 새 다락방에서 잤다.
10월17일[11월18일] 맑음.
아침에 가리포첨사, 금갑도만호가 와서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진주의 하응구, 유기룡 등이 계원미(繼援米) 20섬을 가지고 와 바쳤다. 부안의 김성업, 미조항첨사 성윤문이 와서 만났다. 정항이 돌아간다고 했다.
10월18일[11월19일] 맑음.
권수사(권준)와 우우후(이정충)가 와서 봤다.
10월19일[11월20일] 맑음.
아들 회와 면이 나갔다. 송두남이 장계를 가지고 서울로 갔다. 김성업도 돌아갔다. 이운룡이 보러 왔다. 계향유사(양식 대는 책임자) 하응문, 유기룡이 나갔다.
10월20일[11월21일] 맑음.
늦게 가리포첨사 금갑도만호 남도포만호 사도첨사 여도만호가 왔기에 만나고 나서 술을 대접해 보냈다. 저물 무렵에 영등포만호도 와서 저녁밥을 먹고 돌아갔다. 이날 밤 바람이 몹시도 싸늘한 데다 차가운 달빛은 대낮같이 밝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민다.
10월21일[11월22일] 맑음.
이설이 휴가를 신청했으나 허가하지 않았다. 늦게 우우후 이정충, 금갑도만호 가안책, 이진의 권관 등이 와서 만났다. 바람이 몹시 싸늘해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공태원을 불러 왜적의 정세를 물어보았다.
10월22일[11월23일] 맑음.
가리포첨사 미조항첨사 우후 등이 와서 봤다. 저녁에 송희립 박태수 양정언이 들어왔다. 임금께 보낼 전문을 모시고 갈 유생도 들어왔다.
10월23일[11월24일] 맑음.
아침에 전문을 보낸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보았다.
10월24일[11월25일] 맑음.
경상수사가 보러 왔다. 하응구도 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서야 돌아갔다. 박태수와 김대복도 돌아간다고 했다.
10월25일[11월26일] 맑음.
가리포첨사 우후 금갑도만호 회령포만호 녹도만호 등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저녁에 정항이 돌아간다 하므로 전별 술을 대접했다. 띠풀을 베기 위해 이상록 김응겸 하천수 송의련 양수개 등이 군사 80명을 데리고 나갔다.
10월26일[11월27일] 맑음.
임달영이 왔다고 했다. 그를 불러서 제주에 가는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송흥득과 송희립 등이 사냥하러 갔다.
10월27일[11월28일] 맑음.
우우후와 가리포첨사가 왔다.
10월28일[11월29일] 맑음.
경상우후(이의득)가 와서 보았다. 띠풀을 베러 갔던 배가 들어왔다. 밤에 비가 오고 우레가 치는 것이 여름철 같으니 괴이한 일이다.
10월29일[11월30일] 맑음.
가리포첨사, 이진만호가 돌아갔다. 경상수사(권준) 웅천현감(이운룡) 천성보만호 (윤홍년)가 함께 왔다.
▶을미년 (1595년) 11월
왜인들이 항복하면 기꺼이 받아들여 술도 먹이고, 왜인을 투항시킨 우리 군사들에겐 상을 내린다. 청어 팔아 군량을 마련해야 하는 궁핍한 사정이 눈물겹다. 견내량 지역은 그가 항상 예의주시하며 정탐했고 특히 적장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바로 장수를 보내 정탐케 한다.
그 밖에 장수들 불러 의논하고 지시하며 진지로 오고 가는 장수들을 일일이 기재하는 일상은 이달에도 계속된다. 어머니의 평안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진지를 벗어날 수 없는 그에겐 변함없는 큰 기쁨이다.
11월1일[12월1일]
새벽에 망궐례를 올렸다. 느지막이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가 나갔다. 함평, 진도, 무장의 전선을 내어보냈다. 김희번이 서울에서 내려와서 조정의 조보(朝報:소식지)와 영의정의 편지를 가져와 바쳤다. 원균의 답서도 가져왔는데 지극히 흉악하고 거짓되어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천지간에 이 사람처럼 흉패하고 망녕된 사람이 또 있을까? 투항해 온 왜인들에게 술을 먹였다. 오후에 방답첨사와 활 7순을 쏘았다.
11월2일[12월2일] 맑음.
곤양군수 이국일이 보러왔다.
11월3일[12월3일] 맑음.
황득중이 들어와서 “왜선 두 척이 청등(거제 사등면 청곡리 청포마을로 추정)을 거쳐 흉도(거제 동부면)에 이르렀다가 해북도(거제 둔덕면 해간도)에 와서 불을 지르고 돌아갔는데 돌아간 방향은 춘원포쪽이다”고 전하고는 새벽에 지도(紙島)로 돌아갔다.
11월4일[12월4일] 맑음.
새벽에 이종호, 강기경 등이 들어와서 봤다. 변존서의 편지를 보니 조카 봉, 해 형제가 본영에 왔다고 했다.
11월5일[12월5일] 맑음.
남해현령 금갑도만호 남도포만호 어란포만호 회령포만호 및 정담수가 보러 왔다. 방답첨사 여도만호를 불러 이야기했다.
11월6일[12월6일] 맑음.
송희립이 들어왔다. 베어 놓았던(10월25일 일기 참조) 띠풀 400동과 칡덩쿨 100동을 실어 왔다.
11월7일[12월7일] 맑음.
하동현감이 교서와 유서에 숙배했다. 경상수사(권준)가 경상순찰사(서성) 있는 곳에 갔다가 돌아왔다. 미조항첨사와 남해현령도 왔다.
11월8일[12월8일] 맑음.
새벽에 조카 완과 종 경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늦게 김응겸, 경상도순찰사의 군관 등이 왔다.
11월9일[12월9일] 맑음.
여도만호 김인영이 들어왔다.
11월10일[12월10일] 맑음.
새벽에 경상도순찰사 군관이 돌아갔다.
11월11일[12월11일] 맑음.
새벽에 임금의 탄신 축하례를 올렸다.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다. 주부 변존서, 이수원, 이원룡 등이 왔는데, 그편에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고 다행이다. 저녁에 이의득이 와서 봤다. 금갑도만호 회령포만호가 나갔다.
11월12일[12월12일] 맑음.
발포 가장(假將)으로 이설을 정하여 보냈다.
11월13일[12월13일] 맑음.
도양장에서 추수한 벼와 콩이 820섬이었다.
11월14일[12월14일] 맑음.
11월15일[12월15일] 맑음.
아버지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홀로 앉아 옛날을 추억하노라니 그리움에 마음을 달랠 길 없다.
11월16일[12월16일] 맑음.
투항해 온 여문련기(汝文戀己), 야시로(也時老) 등이 와서 왜인들이 도망가려 한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우우후를 시켜 잡아다가 그 주모자 준시(俊時) 등 2명을 골라내어 목을 베었다. 경상수사 우후 웅천현감 방답첨사 남도포만호 어란포만호 녹도만호가 왔는데, 녹도만호는 바로 떠났다.
11월17일[12월17일] 맑음.
11월18일[12월18일] 맑음.
어응린이 와서, 소서행장이 그 부하들을 데리고 바다로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전했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전령하여 바다와 육지로 정탐을 계속하게 했다. 늦게 하응문이 와서 군량을 계속해 대는 일에 관해 보고했다. 조금 있으니 경상수사와 웅천현감 등이 와서 의논하다가 갔다.
11월19일[12월19일] 맑음.
이른 아침에 도망갔던 왜놈이 제 발로 와서 현신했다. 밤 10시쯤에 조카 분, 봉, 해와 아들 회가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이다. 하응문이 돌아갔다.
11월20일[12월20일] 맑음.
거제현령 영등포만호가 보러 왔다.
11월21일[12월21일] 맑음.
북풍이 종일 불었다. 새벽에 송희립을 보내어 견내량에 있는 적선의 상황을 조사하게 했다. 이날 저녁에 이종호가, 곡식과 바꿔오기 위해 청어(碧魚) 1만3240두름(1두름은 20마리를 엮은 것)을 받아 갔다.
11월22일[12월22일] 맑음.
새벽에 동지 하례로 북향하여 임금께 숙배했다. 늦게 웅천현감 거제현령 안골포만호 옥포만호 경상우후 등이 왔다. 변존서와 조카 봉이 함께 떠났다.
11월23일[12월23일]
맑으나 바람이 크게 불었다. 이종호가 하직하고 나갔다. 이날 견내량을 순찰하라고 경상수사를 정하여 보내고자 했으나, 바람이 몹시 사나워 떠나지 못했다.
※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