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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26> 거문도 삼치

1m는 돼야 삼치 대접…회로 곰국으로 거문도 겨울밥상은 넉넉하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11-14 19:00:39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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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죽어 선상서 빙장해 유통
- 산란 전인 겨울 기름지고 맛나

- 뱃살 등살 꼬릿살 두껍게 썬 회
- 집집마다 곁들이는 양념장 달라
- 집장에 찍고 갓김치 싸면 별미

- 부속물로 끓여낸 미역국은 구수
- 소금간만 한 삼치국 겨울보양식

몇 해 전 삼치잡이 배에 동승한 적이 있다. 끌그물이나 정치망이 아니라 낚시로 삼치를 잡는 배였다. 주로 몸길이가 1m가 훌쩍 넘는 대삼치를 전문으로 잡는 어선이다. 어선 후미에 설치한 낚시 장대에 반짝이는 은박지의 가짜 미끼를 달아 망망대해를 빠르게 달리며 삼치를 유인하는 것이다. 삼치는 빠르게 움직이는 먹잇감을 즐기기에 삼치가 좋아하는 멸치, 메가리(전갱이), 고등어처럼 바다 상층부를 빠르게 움직이면 먹이인 줄 알고 가짜 미끼를 덥석 문다. 미끼를 향해 쫓아오는 삼치는 마치 어뢰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물을 물고 늘어진다.
먹음직스럽게 장만한 삼치회 한 상 차림(왼쪽)과 삼치를 넣어 끓인 미역국. 전남 순천의 와온 해변에서 싱싱한 삼치로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다. 최원준 제공
곧이어 장대가 크게 휘어지며 삼치가 바다 위로 힘차게 솟구치는데, 그 장쾌하고 역동적인 몸짓은 참으로 장관이다. 배에 끌려 올라온 삼치는 갑판을 부술 듯이 우당탕우당탕 제 몸을 뒤틀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펄떡인다. 그러고는 이내 제 성질에 못 이겨 죽어버린다.

그래서 삼치는 활어 상태로 조리해 먹을 수 없는 생선 중 하나다. 배에 올라오자마자 바로 죽어버리기에 잡는 즉시 빙장 해서 유통한다. 이른바 ‘끌낚시’, 어부들은 ‘끌발이’라는 어로법으로, 낚싯대를 달고 배를 끌어서 고기를 유인하는 어로법이다. 주로 참치나 삼치 등 빠르게 유영하는 녀석들을 잡을 때 소용된다.

■역동성 넘치는 바다의 폭군

수산물 시장에서 만난 삼치.
삼치는 농어목 고등엇과에 속하는 어류다. 온대성 어류로 우리나라 모든 바다에서 잘 잡힌다. 10~2월쯤 연안으로 와 4~6월에 산란한다. 산란 전인 이즈음이 가장 기름지고 맛이 좋아 제철로 인정받는다. 성장 속도가 빨라 부화한 지 1년 정도 지나면 몸길이 50㎝, 몸무게 1㎏ 정도로 크고, 3년 정도 지나면 몸길이 1m에 몸무게 5㎏까지 자란다. 살이 기름지고 맛이 좋아 회를 비롯해 구이, 조림, 매운탕 등으로 해 먹는다.

녀석들은 성질이 흉포해 바다의 폭군이라 불린다. 그만큼 이빨도 아주 날카롭다. 잘못 다루면 손을 베기 십상이다. 한 번 문 사냥감은 절대 놓치는 법이 없고 단번에 먹이를 해치울 정도로 역동적이다.

한때 남해안 갈치낚시를 즐겨 했는데, 한 번 출조하면 대마도 근처 공해까지 갈치어군을 쫓기도 한다. 전동릴낚시로 심해 200여m까지도 낚싯줄을 내려 갈치를 낚는데, 5지(갈치 너비가 손가락 5개 정도 크기, 10㎝ 이상) 크기의 씨알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5지 크기의 입질을 받고 낚싯줄을 올리다 보면 중간 수심에서 낚싯줄에 저항을 느낄 때가 있다. 그때 낚시를 올려보면 영락없이 갈치 몸통이 반토막 나 있거나 심지어 대가리만 남아있을 때도 있다. 잘린 부위를 보면 칼로 단번에 벤 것 같은 흔적이 남아있다.

대부분 갈치 떼를 보고 몰려온 삼치들의 소행으로, 삼치는 갈치 멸치 정어리 전갱이새끼 등을 먹이로 하는데, 이들을 따라 이동하기에 그렇다. 특히 5지 짜리 낚시 갈치는 백화점에서 아주 비싸게 팔리기 때문에 반토막 난 갈치를 보며 속 쓰린 전문 낚시꾼들이 더러 있기도 했다.

■와온 해변에서 만난 삼치 한 상

얼마 전 ‘한국음식문화포럼’의 전라도 모임 참석을 위해 순천 여자만 와온해변을 찾았다. 와온해변은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도착하니 하늘은 물론 물 빠진 갯벌의 물골까지 빨갛게 노을이 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바다 밥상’을 잘 차리는 식당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였다. 주인장이 거문도 사람이라 이즈음의 대표 식재료인 삼치로 한 상 거하게 차려낼 요량인 것이다. 거문도 주변 바다는 삼치의 고향이다. 이곳에는 크기가 1m 정도 되는 대삼치를 낚시로 잡기에 삼치가 크고 신선하며 맛있기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에 의해 양질의 삼치가 대량으로 수탈된 해역이기도 하다. 한때 ‘대삼치 한 마리 값이 쌀 한 가마니 값’이라 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거니와, 인근 나로도에는 아주 큰 삼치 파시가 설 정도로 삼치어업이 성행하던 곳이다. 이 때문에 거문도 사람들은 삼치가 최고의 밥이고 최고의 반찬이었다. 삼치회를 먹을 때도 집마다 먹는 방법이 달라, 같은 삼치라도 각기 다른 맛이 날 정도이다. 찍어 먹는 양념장 또한 된장 막장 집장 초장 제각각이다. 이처럼 다양하게 조리하고 다양하게 먹는 삼치는 거문도의 집밥, 소울푸드 중의 하나이다.

■‘집장’에 찍어 먹고 미역국 끓이고

주인장이 삼치 음식을 하나씩 낸다. 우선 삼치회. 대삼치 한 마리를 두툼하게 썰어냈다. 삼치는 살이 무르면서도 지방을 넉넉히 품고 있기에 1, 2㎝ 정도로 두껍게 썰어 먹어야 제맛을 볼 수가 있다. 대삼치회를 찍어 먹는 양념장이 속속 준비된다.

우선 대삼치 전용 양념장. 맛을 보니 집장(집에서 담근 조선장. 전라도는 그렇게 부른다)에다 상큼한 식초에 참기름 한 방울을 넣고, 파와 마늘, 청양초 등을 올렸다. 이 양념장은 이 집 주인장 친정에서 주로 먹어왔던 방식이란다.

집장에다 고추냉이를 찍어서도 먹어 보라며 맑은 집장과 고추냉이를 따로 올렸다. 그리고 달콤하면서 바다향 물씬 나는 김도 한 보시기 오르고, 잘 담근 갓김치와 시원한 식감의 갓물김치 또한 한자리 차지한다. 뱃살, 등살, 꼬릿살…. 부위별로 양념장에, 집장에, 고추냉이에 찍어 먹고, 김에 싸 먹고 갓김치, 갓물김치 등으로도 싸 먹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섞어가며 찍어 먹고 싸 먹으며 대삼치의 절묘한 맛을 만끽하는 것이다.

한참을 먹고 있자니 삼치 부속물로 끓여낸 ‘삼치 미역국’이 올라온다. 거문도 지역 돌미역으로 끓여낸 것이다. 거문도에는 삼치와 미역이 많이 생산돼 삼치 철이 되면 함께 나는 미역과 함께 수시로 ‘삼치 미역국’을 끓여 먹는다고. 미역의 들큰하고 시원한 맛에 삼치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지며, 한 술이 두 술이 되고 두 술이 세 술이 되면서, 이윽고 냄비가 바닥이 날 때까지 숟가락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진하고 시원한 맛에 매료되는 시간이다.

■훈훈하구나, 삼치국

한참을 삼치 요리로 입 호강을 하는데, 집안 어른들 겨울 보양식으로, 또 삼치 음식의 밑 국물로 쓰이는 삼치국을 한 그릇 내어준다. 삼치와 소금 간 이외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원액인데 마치 곰국처럼 뽀얗다. 맛도 거의 곰국이다. 한 그릇 마시면 건강해질 것 같은 맛.

대삼치 곁을 차지하고 있는 뿔소라회도 싱싱하기 이를 데 없다. “꾸적회도 한 점 드씨요.” 전라도에서는 뿔소라를 ‘꾸적’이라 부른다. 제주도에서는 ‘구젱기’라 부르기도 한다. 꼬들꼬들한 맛이 아주 괜찮다. 그 외에도 ‘갑오징어 숙회’ ‘가리비찜’ ‘돌게장’…. 이맘때 바다가 주는 모든 해산물이 밥상 위에 올랐다. 철썩철썩~. 밥상 위가 바로 싱그러운 바다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여자만 갯벌 사이로 난 물골로 바닷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멀리 작은 어선 한 척 불빛 한 점 피우고 지나간다. 오호라 겨울 한편 여자만 어둠 속에서 어화(漁火) 한 떨기 피어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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