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둥이 귀족·사기꾼 성직자
- 희극 캐릭터 활용해 당대 비판
- 종교 세력이 압박·음해했지만
- 후원자인 루이 14세가 막아줘
- “희극, 유쾌한 웃음 뒤 교훈으로
- 악덕한 인간 결점 교정하는 것”
- 풍자에 인색한 한국사회 겹쳐
1673년 2월 17일,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극장. ‘상상으로 앓는 환자’ 4회를 관람한 관객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은 몰랐다. 막이 내려간 후 무대 뒤에서 큰 소동이 일었다는 걸. 이튿날 파리 연극계가 술렁거렸다. 어제 ‘상상으로 앓는 환자’에 출연한 거물 주연배우가 공연 후 쓰러져 집으로 옮겼는데 그만 숨졌다는 급보가 돌았기 때문. 연극배우·극작가·연출가·극단주, 1인 4역으로 종횡무진 살아온 51세 몰리에르는 세상이란 거대한 연극판에서 홀연 육신을 빼냈다.
사제 없이 임종을 맞았다. 종교계와 불화한 냄새. 장례에도 사제가 오지 않을 게 분명한 상황이다. 부인 아르망드 베자르가 남편 후원자인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에게 청원을 넣었다. 장례를 교회식으로 지내도록 도와 달라고. 국왕이 명령을 내렸다. 장례는 야밤에 사제가 2명만 참석해 치렀고, 고인은 파리 교회 묘지인 페르 라세즈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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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0년 파리 극단들을 묶어 세운 프랑스 국립 극장(코메디프랑세즈)은 ‘몰리에르의 집’으로도 불린다. 1790년 고전 연극이 공연되는 장면. 파리 청년 귀족들은 최고 상석인 무대 위쪽에서 관람하는 걸 자랑으로 여겼다. |
■ 종교인·귀족 등에도 거침없는 풍자루이 14세 치하는 고전 연극이 정점에 올랐던 때였다. 몰리에르는 코르네유·라신과 어깨를 견준 연극계 유명인이었는데 마지막 가는 길이 거칠었다. 작품 성향이 그 이유를 말해 준다. 말년 희극은 정치색이 짙었다. 종교인·귀족·의사 같은 사회 강자도 꼬집었다. “당신들은 위선 허세 편견 협잡이 가득해!” 풍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은 몰리에르가 싫었다. 저자는 웃음으로 세상에 경종과 즐거움을 안겼는데도.
‘성체회’란 종교 세력, 유독 몰리에르를 몰아세웠다. 대표작 ‘타르튀프’가 자신들을 모욕한다고 여겨서였다. 이 작품은 1664년 5월 12일 ‘열락의 섬 축제’에서 첫선을 보여 갈채를 받은 5막 희극. 독신자가 득실대는 성체회만 빼고 말이다. 그들은 이 희극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루이 14세를 압박해 더는 공연 못 하게 막아 1승. 몰리에르는 반격한다. 극본을 수정해 5년 만인 1669년 공연·출판 권리를 손에 쥐었다. 역전승이었다.
1665년 초연한 ‘동 쥐앙’도 종교계 반발로 15회 공연에 그쳤다. 이 희극은 몰리에르 사후 4년째인 1677년에 공연이 재개됐다. 1666년 몰리에르는 지병인 폐병이 도졌다. 이 와중에 발표한 희극이 도무지 세상과 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상이 등장하는 5막 ‘인간 혐오자’다. 몰리에르 3대 희극인 ‘타르튀프’ ‘동 쥐앙’ ‘인간 혐오자’는 가시밭길을 걸어 세상으로 나왔다. 독특한 연극 캐릭터를 앞세운 채.
‘타르튀프’는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음흉한 사기·협잡꾼, 독실한 신앙심으로 위장해 선한 이를 후려치는 포식자다. 먹잇감은 아집 강한 파리 귀족인 오르공. 타르튀프에게 감쪽같이 속아 그를 자기 집에 들여 융숭히 모신다. 타르튀프는 하녀가 가슴 섶이 느슨하면 여미라고 호통치며 고결한 척 본성을 속인다. 실제로 당시 성체회 회원들은 가정에 들어가 ‘성령 지도사’로 군림해 사회 위세가 컸다. 몰리에르는 타르튀프란 위선자 캐릭터를 창조해 성체회 회원들을 풍자 도마에 올렸다.
귀족계층도 풍자 대상이다. 오르공은 우물 안 귀족. 그의 어머니인 노부인 페르넬 역시 아들처럼 타르튀프를 두둔하는 헛똑똑이다. 오르공 부인인 엘미르, 집안 하녀인 도린이 야무지다. 그들은 타르튀프 정체를 진작에 알아차렸다. 오르공에게 위험을 경고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사악한 타르튀프에 오르공은 된통 당한다. 재산을 타르튀프에게 내주는 패착을 두는 바람에 알거지가 된다. 타르튀프는 배은망덕하게 일가를 거리로 내몰고, 오르공을 반역죄로 고발까지 해 감옥에 보낼 태세다. 마지막 5막, 관객은 타르튀프란 폭주 기관차가 어떻게 세워질지 주시한다. 몰리에르는 그 역할을 국왕에게 맡김으로써 자신이 딛고선 정치 디딤돌을 보여준다. 힘을 키우려는 루이 14세는 띄우고, 그를 반대하는 성체회를 가라앉혔다.
■ “희극 역할은 악덕 교화” |
| 성직자 복장을 한 타르튀프. |
희극 ‘동 쥐앙’에 나오는 주인공은 중세 유럽 민담 속 바람둥이 귀족 ‘돈 후안’이 모델. 원 서명이 ‘동 쥐앙 혹은 석상의 잔치’다. 석상(石像)은 동 쥐앙 손에 죽은 기사를 기리기 위해 주민이 세운 조각상이다. 이 석상 기사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동 쥐앙에게 저녁 식사에 와 달라고 청하지만, 신을 우습게 아는 동 쥐앙은 놀라지도 않는다. 신성을 모독하는 동 쥐앙이니 여성은 쾌락 대상일 뿐이다. 수녀가 되려는 엘비르를 꾀어내 결혼하자마자 등을 돌린다. 엘비르 오빠들은 동 쥐앙에게 책임지라고 다그치지만 동 쥐앙에게는 씨알도 안 먹힌다. 그 와중에 시골 처녀 둘을 동시에 유혹하고, 아버지마저 속아 넘기는 파렴치니까. 동 쥐앙은 자신이 이렇게 된 데에는 비열한 세상도 책임이 있다고 항변하지만, 결국 온몸이 불타는 천벌을 받는다.
희극 ‘인간 혐오자’에서 몰리에르는 사회 악덕들을 신랄하게 까발렸다. ‘타르튀프’나 ‘동 쥐앙’처럼 ‘인간 혐오자’에서 창조한 캐릭터는 파리 지성파 귀족 ‘알세스트’다. 그는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단정 짓고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염세주의자. 세상은 사기 배신 불신 비굴 아첨 자만심 허세에 물들었다. “모든 사람을 증오한다”는 독설을 입에 달고 그는 모순된 행동을 한다. 20대 파리 여성 귀족인 ‘셀리멘’에 눈이 멀었기 때문. 그녀는 알세스트가 증오하는 인간 표본인데도 극진히 사랑한다. 셀리멘은 눈앞에서 칭찬한 사람을 돌아서면 험담하고, 남성들에게 아양을 떨면서 ‘어장 관리’하는 질 나쁜 여인.
이런 애정 행각은 들통이 나 사귀던 남성들은 모두 셀리멘을 떠난다. 알세스트는 실상을 알고도 참아오다 그녀가 외톨이가 되자 자신과 시골로 함께 가 살자며 감싼다. 도시 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셀리멘은 이 호의를 거절하자, 알세스트는 증오감을 표시하며 홀로 시골로 가려 한다.
몰리에르가 날이 선 희극으로 세상과 맞섰던 이유는 뭘까. 절실하면서도 당당한 그 심경이 ‘타르튀프’ 서문에 나온다. 여기서 그는 희극이 갖춘 역할을 밝히며, 성체회처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을 꼬집는다. “만일 희극 역할이 인간 악덕을 교화하는 데 있다면, 어째서 (거기서 벗어나는) 특권을 누리는 인간들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몰리에르는 그런 상황은 국가에도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희극이 보이는 효용은 이뿐만 아니다. 진지한 도덕을 권장할 때 아름답게 묘사하기보다는 따끔한 풍자가 훨씬 낫다. 사람들을 나무랄 때도 마찬가지. 풍자가 결점 까발리기보다 효력이 크다. 결점이 드러나 웃음 대상이 되면 그 대상자는 치명타를 맞으니까. “사람들은 비난은 쉽게 감내하지만, 조롱에는 그러지 못한다. 못된 사람이 될지언정 결코 우스꽝스러운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한다.”
몰리에르는 희극을 오해하는 세상을 쏘아본다. “희극은 그저 유쾌한 교훈을 통해 인간 결점을 교정하는 독창적인 시”이기에 “그걸 규제하는 건 부당하다”고 외쳤다. 그는 희극을 존중했던 그리스 시대, 삶에 질서가 잡혔던 로마 집정관 시절을 떠올린다.
몰리에르 희극을 읽다 보면 풍자에 인색한 우리 사회가 겹친다. 일반인이야 풍자 대상이 될 리 없지만 유명인은 각오해야 한다. 아쉽게도 풍자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2022년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윤석열차’) 파동이 그랬다. 풍자에 정색하고 반격하는 경직된 반응이 잇따랐다. 표절 논란이 가세하고, 정치논쟁이 들끓는 후유증을 앓았다. 풍자에 여유롭게 대응하는 사회는 아직 멀었다는 말이 나온다. 풍자에 너그럽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포기해버리면 우리 정신 연령은 유치 단계에 머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