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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품 90% 부산항 집결…분유부터 재봉틀까지 총망라

상지건축과 함께하는 오 부산-유산과 미래 <3> 구호·재건의 도시 부산

  • 전성현 동아대 사학과 교수
  •  |   입력 : 2023-09-24 18:33:58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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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회복’ 인도적 차원 이면
- 미군 전쟁 수행 도움 되기 위해
- 민사 차원서 진행된 구호 활동
- 식량 등 총 6억 달러치 들여와

- 동래에 韓 최초 국립재활센터
- 전쟁으로 장애 얻은 아이 치료
- 영도 등 주택 2000채 짓기도

장면 1. 1951년 9월 24일 부산항에 정박해 있던 미해군 병원선 리포즈(REPOSE)호에서 내려 부산의 한 고아원을 방문한 간호장교 엘리자베스 로블레시와 헤이즐 소렌슨이 고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였다. 750 병상과 564 좌석 규모인 병원선 리포즈호는 한국전쟁 당시 주로 해군 승무원과 전투 사상자 등을 한국과 일본으로 후송했다. 부산항에 정박할 때는 피란민과 고아에게 음식과 옷을 주고 의료 처치 및 파티 등 구호 활동도 했다. 이날 리포즈호는 아이스크림도 제공했는데, 병원선에 있던 40갤런의 아이스크림이 모두 소진됐다.


사진 1
장면 2. 1952년 6월 4일 부산항에 정박 중이던 미 해군 경항공모함 바탄이 미국에서 기증받아 운반해 온 헌 옷들을 해군 트럭에 실어 부산 시내 여러 시설에 전달하는 장면이다. 중령 랄프 W. 아른트가 미국 자선단체 케어(CARE)가 보낸 헌 옷을 중구 용두산 자락에 위치한 새들원에 전달하며 한 남자아이에게 직접 옷을 주고 있다(사진 1). 헌 옷은 메리놀 자매 의료원에도 전달돼 피란민에게도 나눠졌다.

장면 3. 동래의 국립재활센터에 근무하는 호주 물리치료사 패트릭 더간이 장애를 입은 두 어린이의 근육 강화 운동을 돕는 장면(사진 2)이다. 동래에는 한국 최초 국립재활센터가 개소했다. 더불어 어린이 특별관이 유엔한국재건단 자금과 유엔 본부에 수천 명이 기부한 1만4000달러로 만들어졌다. 어린이 특별관에서는 전쟁 사고 소아마비로 장애를 입은 아이 50명이 현대적 장치로 치료받았다.

장면 4. 1954년 유엔한국재건단의 자금과 미군대한원조(AFAK) 프로그램에 따른 건축자재 보급, 그리고 한국군의 노동력을 통해 동래에 주택이 건설되는 장면(사진 3)이다. 부산은 피란민 증가와 일련의 화재로 거주할 공간이 태부족했다. 수천 명 피난 이재민은 군이 제공한 텐트에서 살거나 철로를 따라 지은 판잣집, 쓰지 않는 석탄창고에서 지냈다. 유엔한국재건단은 동래와 영도에 2000채의 주택 건설에 들어갔고, 그 가운데 동래 지역에 50채의 주택이 건설되는 현장이다.

■재건과 도움이 시작된 곳

사진 2
대한민국은 전쟁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차 목적이었다. 한국 정부는 일부의 국민(피란민)과 함께 부산으로 이전해 ‘피란 수도’를 형성했다. 더불어 부산은 북한의 무력 침공을 격퇴하기 위해 필요한 병력·물자를 보급하는 병참기지로 활용됐다. 전쟁 내내 200만 명의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군인과 수많은 전쟁 물자가 부산항으로 드나들며 전선으로 오고 갔다.

하지만 후퇴와 반격, 다시 후퇴와 교착으로 이어지는 일진일퇴 전투로 파괴되고 피폐해진 땅과 사람을 군사적이든 인도적이든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한국 정부가 부산으로 수도를 이전한 것도 국민과 국토에 대한 구호·재건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인적, 물적 토대를 갖추지 못했다. 전적으로 유엔과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구호와 재건의 시작과 중심이 된 공간적 토대로 부산은 그만큼 중요했다.

‘한국의 민간인에 대한 구호와 지원’은 1950년 6월 27일 안전보장회의결의안 1511호에 기반했다. 7월 11일 다시 안전보장이사회는 그 책임과 권한을 통합사령부에 부여했다. 유엔사령부는 주한 미 8군의 책임하에 민사 작전의 형태로 ‘질병, 기아, 그리고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민간 원조 기관으로 유엔보건복지파견대를 거쳐 1950년 12월 10일 유엔민사원조사령부(UNCACK)를 설치했다.

민간인에 대한 구호와 지원은 이처럼 유엔의 결정에 따라 미군의 책임하에 민사 작전으로 진행됐다. 유엔 결의안은 ‘평화 회복’이라는 인도적 차원이었지만, 책임과 권한이 유엔사령부에 있는 이상 미군의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민사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다. 유엔민사원조사령부는 본부와 지부를 설치하고 민간 구호 업무에 돌입했다. 본부는 구호물자가 집중되는 부산의 임시중앙청(현 부산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두고 피란민이 가장 많은 경남의 구호를 위한 지부를 부산수산학교(현 부경대)에 두었다. 그렇게 구호의 시작과 중심은 부산이었다.

■국제 항만 갖춘 ‘생명선’

사진 3
유엔은 기존 유엔한국임시위원회를 폐지하고 ‘통일 한국’ 수립에 이바지할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를 설립해 종전 이후 ‘한국의 구호와 회복’을 위한 계획을 추진했다. 1950년 12월 1일 유엔은 총회 결의안 410(V)호를 통해 다시 그 사업 수행기관으로 유엔한국재건단(UNKRA)을 설립했다. 통일 한국을 대비한 안전 조건의 보장 조치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가, 재건 등 구호와 회복은 유엔한국재건단이 각각 맡았다.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는 하야리아 기지에, 유엔한국재건단은 중앙동 별도 청사에 설치됐다. 다만 유엔한국재건단 활동이 유엔민사원조사령부 업무와 중복돼, 유엔사령부와 협정을 통해 인력·물자·자금에서 협력하는 한편 ‘재건’에 집중했다.

한국의 구호와 재건을 담당하며 부산에 설치된 두 기관은 정전협정이 체결돼 각각 이전하게 되는 1953년 10월 1일과 1954년 4월까지 구호와 재건 프로그램을 집행했다. 전시 긴급구호 차원에서 진행된 ‘한국에서의 민간구호(CRIK)’는 약 6억 달러 상당 구호 물자와 자금을 토대로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구호물자 수급·배급에 집중되었다. 전체 약 6억 달러 중 4억 5000만 달러가 구호 차원에서 유엔민사원조사령부에 의해 집행됐는데 거의 전부 구호물자였다.

1억5000만 달러 정도가 재건 차원에서 유엔한국재건단에 의해 집행됐는데 이 또한 재건에 필요한 원조 물자가 많았다. 원조 물자는 모두 항구를 통해 수입·배급됐다. 그 대부분이 부산항을 통해서였다. 전쟁 초기 구호물자 입항과 배급을 위한 교통망을 갖춘 항구는 부산항과 마산항뿐이었다. 이후 인천항과 군산항도 활용됐다. 하지만 여전히 60~90%가 부산항으로 입수·배급되었다. 구호·원조를 집행하는 두 기구가 부산에 있고, 전쟁 피해에서 가장 안전한 부두와 철도를 갖추고 있었기에 구호와 재건은 부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페니실린부터 곡식까지

한국전쟁 발발 뒤부터 1953년 9월 30일까지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원조 물자는 상당히 다양했다. 식료품이 가장 많았다. 유엔한국재건단에 의해 대량의 양곡이 들어온 것을 제외하고도 개별적으로 쌀 콩 밀 보리 등 곡물은 물론 설탕·소금· 생선·간유·효모·초콜릿·통조림(고기 생선)·해산물·보존식·다목적음식·식품패키지·유아용식품·마른 과일·캔우유· 분유·빵 등 다양했다.

의복류와 침구류도 많았는데, 의류와 헌 옷·아동복·속옷·신발·면(직물)·홑이불·누비이불·담요·털실패키지(털실과 바늘)·재봉틀 등이었다. 임시 주거와 관련한 천막·기둥·텐트. 비누와 세탁 세제 등도 많았으며, 교육용품인 학교 책장과 서랍장, 학용품 패키지(연필과 공책)·복사기·법률서적 등도 입수됐다. 의료용품도 야전 병원(병원선)을 비롯해 의료 및 병원 지원품까지 다양했다. 페니실린·증류수·비타민 캡슐(알약)·알콜·에테르·백신·혈액·혈청·설파제·의약품·아황산염 펄프·의료서적·의료용 표본· 메파크린 테이블 등이었다.

산업 원자재는 석탄·유류·천연고무·목재 등이었다. 특이하게 염소와 돼지는 물론 부화기 등도 도입됐는데, 농업 등 산업 부문 재건 관련 물자였다.

국가도 다채로웠다. 역시 미국의 비중이 가장 컸지만, 여러 유엔 회원 및 비회원국에서도 유입됐다. 유럽 남미 호주, 이란 레바논 인도 파키스탄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베트남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까지 30개국이 넘었다.

■대한민국 ‘다시 시작’

비정부 기구와 개인에게서 온 지원이 있었다. 한미재단 케아(CARE) 세이브더칠드런 등 구호 자선단체와 유니테리언 루터교 가톨릭 퀘이커 제칠일 안식교 장로교 등 수많은 국가의 종교기관, 콜럼비아 상업회사, 일본 음식연합회 등 기업과 개인도 포함됐다. 또한 국제노동기구, 국제난민기구, 유네스코, 유엔국제아동구호기금,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해 국제적십자 연맹과 그 산하 수많은 나라 적십자협회도 나섰다.

피란 수도 부산과 부산항은 대한민국 구호와 재건의 시작이며 중심이었다. 이를 토대로 대한민국은 위기에서 벗어나 이제는 원조하는 나라로 변했다. 대한민국의 위기 극복과 전후 복구가 부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부산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 공동기획 : 국제신문, 상지건축

*‘오! 부산’ 강연 일정

blog.naver.com/osangj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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