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에 한 번씩 총 54차례 교류
- 그 중 두 차례 좌초 사고 당해
- 쾌속선 다시 뜨며 추도제 재개
- 초량왜관硏, 추모비 조성 모금도
- 양국 불상 문화재 갈등은 여전
“성신교린(誠信交隣) 정신으로 험한 바닷길을 가시던 중 참으로 안타까운 일을 당해 비통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선조님 공덕에 힘입어 두 나라는 우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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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대마도 미우다 해변에서 제7회 문위행 외교사절 순국 추도제가 열리고 있다. |
강석환 부산초량왜관연구회(이하 연구회) 회장은 지난 17일 일본 나가사키현 대마도 미우다 해변에 마련된 제례 상 앞에서 고유문(告由文)을 낭독했다. 조선 후기인 1703년과 1766년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일본 대마도로 가는 외교사절에 참여했다가 바다에서 악천후로 사고를 당해 불귀의 혼이 된 조상의 넋을 기린 것이다.
■3년 만에 재개된 추도제
이날 연구회가 거행한 행사는 ‘제7회 문위행 외교사절 순국 추도제’다. 문위행은 1632년부터 1860년까지 조선 조정이 일본의 대마도주에게 파견한 외교사절이다. 이들은 조선에서 도쿄(에도)로 보내진 통신사와 별도로 파견됐다. 조선 후기 대마도주는 조선-일본 간 외교·무역을 대행하며 연간 8차례 부산(동래)으로 사절을 파견해 초량왜관(현 부산 중구)에서 조선 국왕에 대한 외교 의례를 했다. 이에 조선에서도 문위행을 3년에 1차례씩 총 54차례 파견해 대마도주와 선린 외교를 유지했다. 이런 가운데 1703년 2월 문위행 사절의 배가 대마도 와니우라 항 근처에서 강풍을 만나 좌초돼 정사 한천석을 비롯한 112명이 숨졌다. 1766년에는 사절의 배가 부산진에서 출발해 오륙도를 지나자마자 좌초돼 정사 한태익 등 93명이 순국했다.
두 사고는 묻힐 뻔했으나 1995년 대마도 측이 와니우라 앞바다가 보이는 히타카츠 한국전망대에 ‘문위행역관사순란지비’를 세우면서 관심을 받았다. 이후 연구회는 2016년부터 해마다 비석 앞에서 추도제를 지냈으나 2021년 코로나19 창궐로 3년간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추도제를 했다. 그러다 올해 대마도행 팬스타 쓰시마 링크 쾌속선 운항이 재개되면서 연구회 회원 25명이 이날 대마도 추도제를 다시 가진 것이다.
그간 제례 장소였던 한국전망대는 현재 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올해 추도제는 비를 피해 미우다 해변 앞 휴게 공간에서 치렀다. 강 회장은 “문위행 첫 사고 날에도 바다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당시 돌아가신 분들 중 항해를 도운 일본인 4명이 있었다. 그들의 넋도 함께 기렸다”고 설명했다. 연구회는 두 번째 사고가 난 오륙도 앞바다 근처에 추모비를 세우기 위해 모금 중이다. 강 회장은 “600만 원가량 모금됐는데,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시민의 관심을 당부했다.
이날 연구회를 맞은 나가도메 후미히코 호슈 연구회 사무국장은 “대마도 행사가 재개돼 다행이다. 덕분에 한일간 민간 교류가 계속 원활하게 이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후미히코 사무국장은 대마도 민속 역사 분야 향토 사학자인 나가도메 히사에 씨의 아들이다. 히사에 선생은 조선 초 40여 차례 대마도에 파견돼 한일 문화 교류에 이바지한 조선 외교의 거장 이예 선생의 행적을 연구해 그 공적이 새겨진 비문이 대마도 원통사 앞에 세워지는 데 기여했다.
■한일간 문화재 반환 갈등 여전
연구회 일행은 이틀간 문위행·통신사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는 유적지를 방문했다. 지난해 4월 개관한 쓰시마 박물관과 2021년 10월 개관한 조선통신사 역사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 자료와 한일 교류에 힘쓴 일본 유학자 아메노모리 호슈의 업적을 살폈다. 고찰 간논사(관음사)에서는 여전히 한국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한일 문화재 반환 갈등의 파장이 여전한 것을 알 수 있었다.
2012년 10월 절도단이 이 절에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 밀반입한 뒤 이듬해 1월 적발됐는데, 국제 협약 등에 따라 반환 절차가 이뤄지다가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14세기 왜구에 의해 약탈당한 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불상 안쪽에서 발견된 관음상 제작 결연문의 발원자 명단에는 심혜 혜청 등 승려와 김용 김동 똘이 같은 고려 백성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16년 부석사 측이 불상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 법원은 불상 소유권이 각각 부석사·간논사에 있다고 다른 판단을 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불상이 위작이라는 전문가 감정 결과가 제시되면서 ‘가짜’ 불상을 간논사에 돌려주고 문화재 반환 논란의 주도권을 우리 정부가 다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추모 기행에 참여한 문연순 씨는 “사건 당시 불상 감정 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위작으로 판단했다. 불상을 몇십 년간 만들어 온 이완규 선생도 사진을 보고 가짜 요소는 다 갖췄다고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강 회장은 “결국 엉터리 문화재 반환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후 일본 정부에서 한국의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관련 기관이 문제의 불상을 제대로 재감정해 논란을 종식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문화 교류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마도=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