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벽에 눌어붙은
낙서를 지운다
세상을 굴러오다
덕지덕지 앉은 허울
한두 줄 서늘한 시가
쓰윽 싸악 지워준
매직 지우개는 초미세 사포처럼 작용하는 무독성 멜라민 폼 블록으로 여러 종류의 얼룩을 물만 묻혀도 손쉽게 제거해 주는 마술 같은 스펀지이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되는 방법은 과거를 되짚어 반추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앞만 보고 아등바등 달려오느라 자신도 모르게 덕지덕지 쌓여온 허울. 원망과 상처로 눌어붙은 마음속 얼룩은 잔상처럼 늘 흔적을 남긴다.
시인은 일상생활 속 사물에 접근하여 그것의 속성을 잡아내고 시적 대상에 자신의 삶을 뭉근하게 녹여내며, 매직 지우개 같은 존재가 바로 시작(詩作)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 가족, 이웃, 그리고 세상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상생하기 위해서 마음속 응어리진 얼룩을 녹이고 지워주는 도구 하나쯤 지니고 있다면 마주하는 내일이 한층 아름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