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171, 148.
이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올해 7월 현재 부산시교육청 산하 초·중·고등학교 개수이다. 부산 최초 근대학교인 개성학교가 1896년 개교한 뒤 약 130년 동안 623개가 되었으니, 그 증가세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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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학교 개교식(영주동, 1896년). 봉래초 남쪽으로 약 150m 가량 떨어진 코모도호텔 언덕 아래의 주택가 지역이다. 개성고(부산상고) 역사관 제공 |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던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전대미문의 국난을 겪었지만, 한국이 세계 톱10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7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와 같은 ‘초고속 성장’의 비결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중앙통치체제, 신분제 완전 철폐, 빨리빨리 문화, 민주화, 교육열 등 여러 분석을 내놓는다. 필자는 그중 교육열과 균등한 교육기회 제공이 ‘초고속 성장’에 가장 큰 불쏘시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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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학교 금수취록(1896년). 학교운영 기금을 모으기 위해 일본제일국립은행에서 발행한 당좌수표이다. 이 자료는 ‘근대학교의 출발’이라는 희망과 ‘일본의 우리나라 경제침탈’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부산박물관 제공 |
항구도시 부산은 대한민국 경제성장과 세계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부산 근대교육의 뿌리를 찾는 일은 꽤 유의미한 작업이며, 부산 시민과 반드시 공유해야 할 중요한 스토리텔링 콘텐츠이다. ‘개성학교 금수취록’은 학교운영 기금을 모으기 위해 1896년 발행한 당좌수표이다. 이는 이 학교가 부산 근대학교 제1호임을 증명해 주며, 한편으로 부산에서 근대학교의 첫발을 내딛는 작업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1895년 당시 서울에는 관립중학교 등 4개 중등교육기관과 8개 관립소학교, 각 관찰부 소재지에 13개 공립소학교가 설립됐다. 이와 비교할 때 ‘개항장 부산’은 갑오경장 이후에도 근대교육의 수혜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개성학교는 1896년 3월 중구 영주동 코모도호텔 아래 주택가 지역에 둥지를 틀었는데, 옛 개성학교 터를 알리는 표지석은 봉래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다. 표지석에는 “이곳은 1895년 부산경무관 박기종 외 4인이 출연하여 ‘개물성무(開物成務)’의 설립정신으로 개성학교를 세운 곳이다. 1923년 서면으로 이전했으며,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고, 봉래초 개성중 개성고(부산상고)의 모태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학교설립자 박기종은 구한말 외부참서관 벼슬을 지냈으며 민간철도 부설 운동의 선구자였다. 이내옥 배문화 이명서 변한경 등 4명과 함께 총 3000원(당시화폐기준)을 공동출자하여 학교를 건립했다. ‘개물성무(開物成務)’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며,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세상의 일을 이룬다는 의미로 개화사상의 중요한 원천이 된 용어다. 봉래초와 개성중학교는 개성학교(부산상고)에서 갈라져 나온 자매학교이며, 서면의 부산상고(1923~1989년)는 롯데백화점(서면점) 자리에 있었다. 개성학교 졸업생 - 박재혁(독립운동가) 양성봉(부산 초대시장) 금수현(음악가) 김지태(기업인) 김응용(야구선수) 등 - 그들의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부산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다.
구한말 부산 근대학교 건립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부산지역 선각자들이 뜻을 모아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고 눈앞에 전개되는 국제사회로 이 나라를 끌어올리는 기초작업은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며 학교를 건립한 배경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오는 11월 부산교육역사체험관(가칭)이 감천문화마을 근처 옛 감정초등학교 부지에 건립된다고 한다. ‘근대교육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개성고등학교역사관~롯데백화점(서면, 부산상고 옛터)~봉래초등학교~개성학교 옛터~박기종기념관을 둘러보는 답사프로그램을 상상해 본다. 답사에 참여한 시민이 선각자들의 교육정신을 공유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오늘날 누구에게나 열린 교육기회는 당신들의 혜안과 고결한 희생에서 비롯되었고, 당신께서 뿌린 씨앗은 세계 도처에서 ‘한류’라는 꽃으로 만발하고 있다고.
※1895년 5월 관보(제50호)에 따르면 인천항외국어학교지교는 1895년 5월 설립경비로 1535원의 예산 지출이 있었다. 이를 고려하면 개성학교는 1500원을 설립비용으로 쓰고, 추가 각출한 금액으로 학교를 운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