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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대한민국, ‘난중일기’에 통합의 길 있다

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 <0> 필자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3-04-02 20:17:33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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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연구 매진한 이순신 전문가
- ‘의역 난중일기’ 주1회 본지 연재

-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싸우고
- 오롯이 나라를 위해 죽은 장군
- 내면 근원의 가치를 탐구하면
- 갈등 사회 해결할 열쇠 찾을 것”

문어포(問語浦)는 봄기운에 휩싸여있었다. 휘파람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새도 함께 노래했다. 새소리가 하도 선명하게 울려 이 작은 포구에 사람 발길이 드묾을 짐작했다. 관심을 많이 끌고 번잡한 곳이라면 새들이 이처럼 많이 깃들지는 않을 듯했다. 찾는 이가 적음을 확실히 알게 해주는 풍경은 문어포 동백이었다. 일행 가운데 여행 경험이 많은 이가 놀라며 말했다. “이곳 동백은 지심도 동백보다 훨씬 인상 깊네요.”

지난달 25일 국제신문 취재진은 경남 통영시 한산도의 문어포를 찾았다. 그곳에 1979년 세운 한산대첩기념비가 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한산도에 드나들 때면 높은 언덕 위로 보이는 왠지 익숙한 바로 그 기념비다. 한산도 선착장에서 가깝지만, 막상 가려면 섬 길을 둘러 둘러 가야 해 찾는 이도, 잘 아는 사람도 적다. 문어포에서 이순신 장군을 생각했다. 왠지 익숙하지만, 우리가 막상 잘 모르고 제대로 본받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휘파람새 우는 소리가 들렸고 동백은 붉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간 진중 기록인 ‘난중일기’(국보 제76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를 남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경남 통영시 정량동 이순신 공원 전경이다.
■ 의역(意譯)하는 마음

취재진은 지난달 24, 25일 통영 일대를 돌았다. ‘이순신 전문가’ ‘40년 동안 이순신 장군을 공부하며 우리 사회에 장군의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부산·여수·서울 여해재단 고문)이 내준 ‘숙제’ 때문이었다.

국제신문은 사단법인 부산여해재단(이사장 이용흠)과 공동으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집필하는 ‘의역(意譯) 난중일기-이순신 깊이 읽기’를 오는 10일부터 매주 월요일 연재한다. 취재진의 통영행은 이 기획연재를 위해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여정이었다.

지난달 28일 부산 연제구 연산동 사단법인 부산여해재단 사무국에서 김 전 재판관을 만났다. 여기에 사단법인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이사장 이영활)도 함께 있다. 기획연재 준비 과정에서 가진 세 번째 만남이었다. “저희는 통영 시내 한 바퀴 돌고 한산도 들어가서 제승당에서 참배하고 문어포 한산대첩기념비에도 다녀왔습니다.” 인사드리자 김 전 재판관은 환한 표정으로 반겨주었다. 그에게 물었다. “어떤 뜻에서 ‘의역 난중일기’를 준비하셨는지요?”

‘난중일기’를 의역한다 함은 ‘김종대의 눈과 철학’으로 새롭게 보고 바로잡을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는 뜻이다. 그는 40년 전부터 이순신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2002년 ‘이순신 평전’을 쓴 뒤로, 이를 바탕으로 끝없는 노력으로 고치고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이어가며 ‘내게는 아직도 배가 열두 척이 있습니다’ ‘여해 이순신, 너라야 세상을 화평케 하리라’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를 개정판 형태로 펴냈다.

부산·여수·서울에 여해재단을 출범해 이순신학교를 열어 우리 사회에 이바지하는 ‘작은 이순신’을 양성해왔고,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중추가 되어 지역사회에서 이순신 선양사업을 펼쳤다. 그가 답했다. “먼저, 큰 틀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 우리에게는 아직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
“한국 사회의 분열에 큰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는 “대한민국이 성립된 이래 바람직한 의미의 통합을 이룬 적이, 통합된 국민이 아울러 지지를 보낸 그런 시대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짚었다. 반공 vs 공산 대립으로 남과 북은 갈라졌고, 남한에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반공이 민주나 다양성의 가치를 흡수해버렸으니 민주주의 안에서도 독재가 가능했다. 이후 이념 색채가 어느 정도 덜해지면서 경제 발전 등에 치중했는데, 요새 와서 보니 또 이념 대립 탓에 나라가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분열된 사회는 국민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걸 극복하는 방법이 뭘까요? 어디 있을까요?” 여기서 그 이름, 이순신이 나온다. “우리를 오롯이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죽어간 어떤 사람을 발견해 그 사람 내면의 근원 가치를 찾아내고 그걸 약으로 만들어 오늘의 우리가 복용할 수 있다면 이 갈등하는 사회가 좀 건강해지리라 봅니다. 이것이 제가 ‘이순신 사업’을 하는 근원 목적이죠. 그러니까 이순신의 근원 가치를 연구하고 찾아내서 널리 펴고 공유하는 일이 급합니다.”

여기서 ‘난중일기’(국보 제76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가 나온다. “‘난중일기’는 민족과 나라를 절멸의 위기에서 기적처럼 구한 이순신 장군이 7년에 걸쳐 진중 생활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그 속 글씨 한 자, 한 자에 이 지도자의 근원 가치를 캐낼 수 있는 가르침이 무수하게 박혀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최고의 보물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런 기획에 국제신문이 함께해 뜻깊다”고 말했다.

■ ‘난중일기’가 있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 ‘난중일기’는 일기다. 모든 일이 급박하고 엄중하게 돌아가는 진중에서 개인의 ‘필기체’로 써 내려간 기록이다. 물론 장수가 전쟁 상황을 기록한 ‘일지’ 성격도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일기를 남에게 내보일 것을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는다. ‘난중일기’에서도 공무의 기록과 ‘나만의’ 언어는 섞인다.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지만, 번역한 사람마다 달리 옮긴 대목도 많고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우며 일관된 논리가 서지 않는 번역도 적지 않습니다.” 김 전 재판관은 “‘난중일기’는 한문에 능하다고 해서 제대로 번역해낼 수는 없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의 복잡다단하고 격렬했던 삶, 평정을 잃지 않고 고요했으며 때로 휘몰아쳤던 내면을 통으로 깊이 알아야만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쟁 양상을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그러자면 당시 조선과 동아시아 상황까지 파악해야만 한다.

요컨대 이순신 그 자체가 되어 장군처럼 살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난중일기’는 좀체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난중일기’ 의역에 나서기로 결심한 동기·배경·목적이다. 의역은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리어 번역함 또는 그런 번역”이다. 김 전 재판관은 “나는 평생 이순신을 공부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널리 펴려고 노력했지만, 역사나 한문 전공자도 아니다. 의역에 나서기로 마음먹었지만 두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 맥락 알고 깊이 읽어야

그는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었다. 예컨대 이렇다. 정유년(1597년) 일기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선전관 박천봉이 유지(有旨·임금의 명령)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8월 7일 만들어진 공문이었다. 영의정(류성룡)은 경기 지방으로 나가 순행 중이라 한다. 곧 잘 받았다는 장계를 썼다. …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치니 심회가 매우 편치 않았다.” 이 대목만 읽어서는 온전한 뜻과 장군의 심회를 짐작하기 어렵다.

“장군이 받은 선조의 유지는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합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전황과 아군-적군 장단점을 잘 아는 이순신 장군으로서는 받기 힘든 영이죠. 대체 누가 이런 명을 건의했는가, (존경하고 신뢰하는) 영의정 류성룡은 이런 명이 내려오기까지 무엇 하고 있었나.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알고 보니 류성룡은 그때 경기도에 출장 가 있어서 조정에 없었습니다. 장군은 답서를 쓰지요. ‘신에게는 아직 배가 열두 척 있습니다’는 유명한 답서입니다.” 이 맥락을 읽으면 그날 밤 수루에 앉아 고심한 장군이 보인다.

김 전 재판관은 “온 힘을 다해 연재에 임할 것이다. ㈔부산여해재단·이순신학교(교장 남송우) 등과 힘을 합쳐 이 기획연재의 독자 클럽을 운영하며 더 많은 분과 공감하고 교류하는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고 다짐했다. 

※㈔부산여해재단·국제신문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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