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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메디치 가문이 꽃피운 예술…르네상스 교과서 같은 도시

박선정 소장의 달리 인문여행 <9> 피렌체

  •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  |   입력 : 2023-03-05 19:31:23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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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업 등으로 부 축적한 가문
- 문화·예술 투자로 도시 부흥
- 소유한 작품 모두 국가에 기증
- 영원한 피렌체 유산으로 남겨

- 르네상스 보고 ‘우피치미술관’
- 도시 상징과 같은 ‘두오모 성당’
- 골목 곳곳서 단테 흔적도 느껴

피렌체는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인페르노’의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그 광장에서 시작해보자. 두오모에서 아르노강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여러 갈래의 골목이 만나는 넓은 터가 나오는데 그곳이 ‘시뇨리아 광장’이다. 원래는 피렌체 공화정 정치의 상징으로 시작된 곳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거치면서 한때는 권력 다툼의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곳이고, 또 한 때는 권력에 대항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이 공개 처형당하면서 흘린 피로 얼룩졌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만들어내는 평화 화합 예술의 공간이 되었다.
조토의 종탑에서 내려다 본 피렌체 두오모 성당. 두오모 성당은 피렌체의 상징으로 불린다. 브루넬레스키의 돔 지붕으로 유명하다. 현재 로마 산 피에트로, 런던 세인트 폴, 밀라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다.
■메두사를 물리친 페르세우스

광장 왼쪽으로 코시모 1세의 기마상과 넵튠의 분수가 보이고 그 옆으로 탑이 있는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보인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지만 과거에는 메디치 가문의 저택이었던 ‘베키오 궁전’이다. 맞은 편에는 세 개의 아치가 아름다운 열린 회랑이 있다. 14세기 말 의회와 시민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만든 ‘로찌아 데이 란치’(란치의 회랑)다. 그러나 이후 메디치 가문을 지키는 용병들의 휴식공간으로 사용되다가 코시모 1세에 의해 야외 조각전시관으로 바뀌었다. 조각은 모두 15개다. 당대 최고의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들로서 현재까지 3개를 제외하고 모두 진품이다. 그중에서도 앞줄 제일 왼쪽의 조각상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메두사를 물리친 페르세우스’다. 모두 대리석인데 혼자만 청동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16세기 최고의 금속 공예가인 벤베누토 첼리니가 만든 작품으로, 페르세우스가 살아서 걸어 움직일 것만 같다. 게다가 그의 손끝에 매달려 있는 메두사의 잘려진 목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많은 시민이 모이는 이곳 광장에 왜 이렇게 끔찍한 조각을 세웠을까. 그 이유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예술과 권력 투쟁에는 밝았던 코시모 1세가 세상과 적들에게 던지는 경고 메시지인 것이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면서도 예술의 힘을 알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현시대의 피렌체 시민은 메디치가가 유산으로 물려준 예술의 또 다른 힘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다빈치·미켈란젤로 만나다

바디아 피오렌티나 수도원 성당 입구에 있는 조각상. 현대 조각가 티모시 슈말츠의 작품이다. 수도원 성당에는 ‘길 잃은 단테’ 조각상도 있다.
정쟁의 공간에서 화해의 공간으로 거듭난 시뇨리아 광장을 지나면 양쪽으로 U자 모양의 길쭉한 건물이 나타난다. 르네상스 예술의 보고인 ‘우피치미술관’이다. ‘우피치’는 ‘오피스’ 즉 사무실이라는 뜻으로 메디치 가문의 예술적 파트너였던 조르조 바사리가 주군의 행정업무를 위해 만든 건물이다. 한동안 상류층만의 예술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1765년 공식적으로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이곳에는 보티첼리의 주요 작품을 비롯하여 다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정과 세례자 요한’과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카라바조의 ‘메두사’ 및 최초의 페미니스트 화가라 불리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역시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메두사’는 흉측한 외모가 어떻게 잔인한 처벌일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고 단정 짓는 우리를 향한 원망 가득한 그녀의 눈빛이 관람 내내 마음에 남는다.

■선각자 메디치 가문

작금의 피렌체는 은행업으로 세계적인 갑부가 되었던 메디치 가문이 일으켜 세운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 예술의 ‘르네상스’ 역시 메디치가와 더불어 이곳에서 시작되고 꽃을 피웠다. 그러기에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교과서와도 같은 도시다. 르네상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의 둥근 지붕부터가 그러하다. 처음 설계와는 달리 타 도시와의 경쟁과 자존심의 결과로 점점 더 덩치가 커진 대성당은 마침내 지붕을 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지붕 없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도시의 숙원사업이자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멋지게 해 낸 인물이 브루넬레스키다. 그리고 이것이 르네상스 예술의 산종(dissemination)이 된다. 그에게서 선 투시 원근법을 배운 마사초가 피렌체 중앙역 앞에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벽에 ‘삼위일체’를 그린다. 원근법이 살아 있음으로써 입체감을 드러내는 르네상스 회화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그림이다.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마사초의 화법을 이어간 인물은 그의 화법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운 수도사 출신의 필리포 리포다. 이것은 다시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로 잘 알려진 산드로 보티첼리로 이어지고. 결국 그 뒤를 잇는 르네상스의 거장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에 이르러 인체의 완벽한 재현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 피렌체와 메디치가 있었다. 그들이 종종 보여준 권력에 대한 욕망과 사사로운 과욕 등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지만 메디치 가문이 물려준 문화적 유산과 그 영향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특히 후손이 없었던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가 내린 결단은 가히 위대하다. 그녀는 메디치가 소유한 모든 예술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피렌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조건을 명시함으로써 영원히 피렌체의 유산으로 남겼다.

■아르노 강과 베키오 다리

보물섬과도 같은 우피치 미술관을 나오면 건물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 보인다. ‘아르노 강’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오래된 다리가 하나 보이는 데 ‘베키오 다리’다. ‘오래된’이라는 뜻의 ‘베키오’가 이름이라는 데서 아르노 강을 건너는 가장 오래된 다리임을 알 수 있다. 원래는 강물로 핏물을 씻기 편리해 다리 위에는 식육점과 생선가게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우피치에서 이 다리를 건너 언덕 위 피티 궁전에 이르는 메디치 가문만의 통로인 ‘바사리 통로’를 만들면서 다리 위 가게들은 모두 냄새가 나지 않는 보석상으로 바뀌었다. 보석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베키오 다리를 건너고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걸었을 아름다운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그곳에 피티 궁전이 있다. 피렌체에 르네상스를 꽃피운 코스모 1세가 아내를 위해 마련한 궁전이다. 궁전을 둘러본 후 다시 길을 따라 내려와 다리를 건너지 않고 아르노 강 옆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나지막한 언덕길이 나온다. 그 길 끝에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이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전망과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기에 오후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서 있다. 한 곳을 응시하며 서 있는 아름다운 관광객들을 보고 있다가 불현듯 이곳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만난 도나텔로의 조각상 ‘마리아 막달레나’가 떠오른 건 왜일까.

■피렌체 상징 ‘두오모’

미켈란젤로 광장 언덕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도심에 대한 한 줄 감상은 ‘역시나’다.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 두오모 성당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꽃봉오리처럼 피어 있는 붉은 색 쿠폴라와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성당 외형, 조토가 설계한 사각형 기둥 모양의 종탑과 육각형의 산 조반니의 세례당은 모두 세 가지 색깔의 천연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각각의 건축가도 다르고 지어진 해도 다르지만 하나의 건축물처럼 조화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테의 숨결을 느끼다

미켈란젤로 언덕을 내려와 석양이 지는 이국 거리에서 길을 잃은 듯 이리저리 걷다 보면 문득 골목길 여기저기 벽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동판에 새겨놓은 이태리어로 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속 문장들이다. 단테는 어릴 적 만난 베아트리체를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시인이자 철·문학가이며, 정치적 격동기 속에서 추방을 당한 채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당대의 정치가다.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4대 시성(詩聖)인 그다.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나는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단테의 도시 한가운데서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신곡’ 지옥편의 첫 문장을 읊조리며 걷다가 문득 낯선 골목 집 앞에 멈췄다. 오래된 문 틈새로 벤치에 웅크린 채 누워있는 검은 사람 형체가 보였기 때문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수도원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인 줄 알았던 것은 사람 크기의 조각상이다. 천으로 온몸이 덮여 있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조각상 아래의 동판에 글이 새겨져 있다. “내가 헐벗고 있다. 내게 옷을 좀 다오.”(I was naked and You clothed me.)

역사 예술 문학 철학, 그리고 인간애, 이 모든 것이 함께 살아 어우러져 있는 이곳, 피렌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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