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세에 英 측량선 ‘비글호’ 승선
- 호주·태평양·인도양 등 대장정
- 일거수일투족 꼼꼼히 관찰·기록
- 비망록 18권 등 많은 자료 모아
- 지구서 살아온 생물 역사 곳곳
- 화산·지진 등 여러 경험담 담겨
- ‘생물 스스로 발달’ 믿게 된 저자
- 20년 뒤 걸작 ‘종의 기원’ 집필
“호주여, 안녕! 너는 한창 크는 아이이고 분명히 언젠가는 남반구를 지배하는 왕자가 될 것이다. 사랑받을 정도로 무척 크고 야심만만하지만, 존경받을 만큼 위대하지는 않다. 난 슬퍼하거나 후회하지 않으면서 너의 해안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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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4년 5월 말 마젤란 해협에 들어선 비글호를 파타고니아 원주민들이 배를 타고 나와 맞이하고 있다. 장신 종족인 이들은 비글호에 초대받았는데 물물 교환을 원했다. |
1836년 3월 14일 호주 킹 조지 협만을 떠난 다윈, 그 소감을 일기에 이렇게 썼다. 27세 청년, 생각이 깊고 미래 보는 눈이 밝다. 그는 모국 영국이 개척한 호주가 넓은 땅을 가진 해양국으로서 상업과 무역을 일으켜 장차 남반구에서 강국이 되리라 내다봤다. 오늘날 호주는 다윈 예측대로다.
하지만 이 글은 다윈이 탄 비글호가 태평양을 건널 때 뱃전에 얌전하게 부딪히던 작은 파도 같다. 23년 후인 1859년 다윈이 일으킨 거대한 해일에 비하면. 그가 펴낸, 적자 생존한 생물이 진화한다는 걸작 ‘종의 기원’을 읽은 이들은 해일을 올라탄 듯 현기증을 느꼈다.
■ 청년 과학자 다윈의 탐사기
다윈은 사실 20년 전 비슷한 현기증을 일으켰다. 과학 탐사기로 유명한 ‘비글호 항해기’(1839년)를 펴냈을 때 그랬다. 이 고전에서 걸어 나온 ‘종의 기원’은 세상 사람들이 생물에 가진 통념을 바꾸어 버렸다. 그런 기념비적 성과를 이룬 여정, 청년 과학자가 흘린 땀과 눈물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반짝인다.
이 과학서, 제국주의 시대를 미화한 그림자도 보인다. 비글호는 순수한 과학 탐사선이 아니라 영국 해군 소속(HMS) 측량선이었다. 그때만 해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해외에 식민지를 세우고 덩어리 부를 가져갔다. 그러자면 오대양 육대주 해안선과 항구, 주요 섬에 얽힌 정보는 필수. 세계를 지배하려는 열강 욕망이 비글호에 실렸다. 다윈은 그렇지 않았다.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무력을 경계하는 인도주의자였다.
비글호를 타기 전 다윈 상태는 별로였다. 명문 케임브리지대를 막 졸업했건만 진로가 안갯속이었다. 맥 빠졌던 그를 숨통 트게 해준 건 비글호 승선. 이 배는 1차 탐사(1826~1830년) 뒤 미진했던 남아메리카와 마젤란해협 일대 조사를 보강하려고 다시 돛을 올렸다. 길이 27m, 500t급 범선. 22세 다윈은 피츠로이 함장에게 말벗이 되고, 모든 여행 비용을 직접 내야 하는 비공식 박물학자였다.
1831년 12월 27일 비글호가 데번항을 떠났다. 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 타히티섬, 뉴질랜드와 호주, 인도양 킬링 군도와 모리셔스섬, 세인트 헬레나섬과 어센션섬을 찾았다. 인종 인문 탐사도 값졌다. 안데스산맥을 넘고 페루 리마를 봤다. 비글호와 함께 다윈은 1836년 10월 2일 영국으로 돌아왔다. 2, 3년간을 점쳤던 탐사 기한이 만 5년에서 두 달 25일이 모자랐으니 글자 그대로 대장정이었다.
방대한 자료가 쏟아졌다. 지리 지형 지질 광물 해양 대기 동식물 고고학 유물, 방문 지역 문화 풍속. 여기서 비망록 18권, 기록지 1700여 장, 알코올 표본 1500여 점, 마른 표본과 화석 3900여 점, 5년 치 일기를 얻었다. 탐사에서 돌아온 지 3년째인 1839년 5월 드디어 ‘비글호 항해기’가 나왔다.
그는 이 여행기를 쓰면서 생물은 스스로 발달할 수 있다(‘핀치새 부리 변화’)고 믿었다. 맬서스 ‘인구론’을 읽곤 “사람처럼 다른 생물도 힘이 약해 먹이를 못 구하면 멸종한다”는 학설을 굳혔다. 진화론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결정타는 생물학자인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다윈에게 보낸 편지. 그는 다윈과 의견이 같았다. 두 사람은 1558년 8월 린네 학회지 2권 9호에 논문으로 공동 발표한 후 이듬해 11월 다윈이 ‘종의 기원(자연선택에 따른 종의 기원에 관하여)’을 책으로 펴냈다. 초판 1250권이 발매한 당일에 죄 팔렸다. 그만큼 논란도 따랐다.
■ 이색 풍물과 알찬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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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5년 2월 20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칠레 콘셉시온 성당이 무참히 부서졌다. 다윈은 이 지진을 직접 겪고 피해 현장을 둘러봤다. |
‘비글호 항해기’는 3판(1860년)이 가장 널리 읽힌다. 1832년 1월 6일 닿은 첫 기항지 생자고섬(케이프 데 베르데 제도)에 대한 기록이 1장, 마지막 21장은 1836년 10월 2일 아조레스 군도를 떠나 영국 플리머스항에 도착해 여행을 마무리하는 내용이다.
180여 년 전 쓴 여행기이지만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육지에 내린 다윈은 눈이 두 쌍이다. 호기심 넘치는 여행자이자 탐구심 끓는 과학자이니까. 이색 풍물에 독자는 빨려든다. 예나 지금이나 벼락 맞은 집을 본 이는 드물다. 다윈은 몬테비데오에 정박했을 때 그런 기회를 잡았다. 라플라타강 부근 민가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갔다. 벼락이 초인종 전선을 타고 거실 벽을 쳤다. 벽면 일부가 폭약이 터진 듯 부서졌고, 파편이 튀어 맞은편 벽을 거세게 때렸다. 이 대목은 어디서나 벼락은 어쨌든 피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3장 ‘말도나도’)
과학자로서 들려주는 해설이 알차다. 5장 ‘바이아블랑카’를 보자. “몸집이 큰 초식동물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우거진 큰 숲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먹을 식물이 빨리 자라는 게 더 필요하다는 부언. 숲이 울창하면 초식동물이 몸을 숨기기 쉬워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초식동물은 떼를 이루는바 반드시 숲이 필요한 건 아니다. 대형 초식동물은 되레 숲속에선 움직임이 느려져 먹잇감이 될 위험이 더 커진다. 생물이 지구에서 살아온 생생한 역사를 되새겼다.
북미 오지에서 다윈은 지질학자로서 소중한 체험을 한다. 14장 ‘칠로에섬과 콘셉시온:대지진’이다. 1835년 1월 19일, 칠레 칠로에섬에서 오소르노 화산이 용암을 분출하는 장면을 망원경으로 봤다. 다윈은 몰랐지만 이날 비슷한 시간대에 두 곳에서 화산이 불을 뿜었다. 서로 2700마일 떨어진 아콩카과 화산(아르헨티나)과 쿠세기나 화산이 연이어 터졌다. 2월 20일에는 발디비아 마을에서 2분간 지진을 겪었다. 가라앉는 얇은 얼음장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기분이었다고 썼다.
“큰 지진은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연상해온 것을 일시에 파괴한다. 단단함을 상징하는 땅이 우리 발아래에서 액체를 덮은 얇은 껍데기처럼 움직이는 모습은, 몇 시간 전엔 없었던 이상한 불안감을 마음속에 심어 놓았다.” 3월 4일 콘셉시온과 탈카와노에 들러 대지진과 지진성 해일(쓰나미)이 일으킨 참상을 두 눈으로 봤다.
그 뒤로도 여러 번 지진을 다뤘다. 예를 들어 강진 때 방문이 닫힌 게 더 안전할까? 정반대다. 방문이 열렸으면 실내 인원이 재빨리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다. 문이 닫혔다면 지진 발생 후 문짝이 뒤틀려 문을 못 열어 건물에 갇혀 불상사를 당한다. (16장 ‘칠레 북부와 페루’)
외국 여행 중 경험한 포복절도한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한 추억. 아르헨티나 콜로라도강에 갔을 때 일이다. 암말 수백 마리가 귀를 곧추세우고 콧구멍을 물 위로 내놓은 채 일제히 강을 건넜다. “나는 지금껏 그 광경보다 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암말들이 양서류 떼 같았기 때문이다. 암말에 대해 해박한 지식도 덧붙인다. “원정 군인들에게 암말 고기는 유용한 양식이지요. 암말 고기를 식량으로 쓰면 행군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집니다. 짐을 지지 않은 암말이 하루 100마일씩 며칠을 계속 달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4장 ‘네그로강에서 바이아블랑카까지’)
‘운칠기삼(運七技三, 7할은 운이고 나머지는 노력)’이란 말을 듣는다. 이 고전 속에선 못 이룬 자를 위로하거나, 패자가 자위할 때 쓰는 표현으로 읽힌다. 그 대신 ‘꺾이지 않고 이뤄내려는 마음’이란 문구가 떠오른다. 열정이 없으면 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서평가·세상관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