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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59> 한국통사(韓國痛史)-박은식(1859~1925)·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신채호(1880~1936)

평화 탈 쓴 국제사회…자강·자립 못하면 ‘구한말 데자뷔’

  • 서부국 서평가
  •  |   입력 : 2023-02-09 19:20:52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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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통사

- 뼈아픈 근대사 세밀한 기록
- 안중근·장인환 의사 열전도

# 조선상고사

- 중화사상·사대주의 경계
- 삼국역사 등 바로잡기 애써

지금도 우리나라 주변국인 일본·중국·러시아·북한은 분쟁을 일으킨다. 그럴 때 나라를 위해 싸웠던 선열이 떠오른다. 가까운 역사에선 백암(白岩) 박은식(朴殷植),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다. 한국인으로서 정신을 가다듬어야겠다면, 두 분이 쓴 한국통사(1915년)와 조선상고사(1948년)를 읽는 게 좋겠다. 우리 처지를 재확인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니까.
백암은 ‘한국통사’ 3편 56장에서 안중근 의사가 191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 권총 3발을 모두 맞혀 사살한 장면을 자세히 그렸다. 안 의사는 이날 6발을 쏘았다. 4탄은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 5탄은 총영사 비서관 모리, 6탄은 철도총재 다나카를 맞추었다. 백암은 안 의사가 거사 후 라틴어로 “대한국 만세”를 세 번 외쳤다고 썼다. 1978년 박영선 화백 역사 기록화.
■ ‘태백광노(太白狂奴)’의 비장함

한국통사(3편 114장)는 망명한 백암이 중국 상하이에서 지은 우리 근대사이다. 1864년 흥선대원군 섭정(攝政, 12세인 조선 26대 왕 고종을 대신해 나랏일을 봤다)이 글머리다. 105인 사건(일제가 윤치호 선생을 포함한 한국인 105명에게 유죄를 선고)을 마지막 글로 다뤘다. 그 사건이 1911년 일어났으니 우리 근대 역사 47년을 훑었다.

3편 58장 ‘일본의 한국 병합’은 통사(痛史) 중 통사다. 합병 늑약 1~8조를 실었고, 홍범식 이범진 이만도 황현 같은 자결 열사들을 기렸다. 이어 총독부 관제와 명단(을사오적 포함), 일제가 내린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민족 반역자들의 이름을 적었다.

들어가는 글에 백암의 필명이자 또 다른 호인 ‘태백광노(太白狂奴)’가 보인다. ‘태백산(현재 백두산)이 자리 잡은 곳에서 태어났거늘 나라 잃어 미쳐버린 노예’라는 뜻이다. 한 대목이다. “…나라는 형체, 역사는 정신이다. 한국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은 보존하는 게 어찌 불가능하겠는가.” 백암 심경이 짚인다. “정신이 보존돼 사라지지 않으면 반드시 형체는 부활할 때가 온다.” 국권을 되살리는 의지를 강철처럼 세웠다. 상하이에서 간행된 이 책, 국내에 반입돼 필사본으로 읽혔다.

1편은 한반도 지리와 도시·유적, 상고사·조선사를 더듬었다. 2편(1~51장)부터가 근대사, 뼈아픈 역사다. 흥선대원군 섭정(1장),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 남연군(흥선대원군 부친) 분묘 도굴 사건(미국 상인 오페르트가 자행), 신미양요, 명성황후 일가 득세(흥선대원군 퇴진), 조일수호조규 체결, 임오군란, 흥선대원군 복귀, 청·일 군대 국내 주둔, 갑신정변, 흥선대원군 환국, 동학란, 명성황후 시해, 청일 전쟁, 의병 봉기, 아관파천, 외국인의 철도부설권 침탈(마지막 51장)이 숨 가쁘게 이어진다.

세밀한 기록이다. 백암이 직접 보고 들은 내용도 많으니까. 냉정하게 분석하고 반성한 대목은 독자가 역사를 이해하는 눈을 밝혀준다. 국제 정세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지 백암은 그 중요성을 잘 보여줬다. 외세가 우리 강토와 정신을 좀먹는 과정, 국내 무리가 외세와 결탁하는 비열한 현장, 조정 대신들이 보이는 무기력과 무지에 독자는 숨이 막힌다. 백암은 외친다. “흥선대원군이 강행한 지나친 통상 거부 정책,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외척·외세 의존 정치가 통사를 빚어냈다.”

안일에 젖어, 먹지 않으면 먹히는 국제 정세에 휘둘렸다. 우리가 자력 자강을 이룬 나라였다면 어림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잘 꾸려가는 길은 한결같다. 백암 한탄이 깊다. “안으로 정치를 닦고, 밖으로는 외교를 잘하며, 문약(文弱)을 떨쳐내고 무강(武强)으로 변화시키고, 요해처(要害處)를 단단히 방어해야 하거늘….” 지금 한국이 맞은 국내외 현실에도 적중한다.

마지막 3편은 대한제국 성립을 1장, 열사 120명이 옥에 갇힌 ‘105인 사건’을 61장으로 짰다. 일제가 우리 입법 사법 행정권을 빼앗고, 정치 문화 경제 국방 경찰 전반을 손에 넣었다. 광산 어업 벌채 포경권과 개성 인삼까지 훔쳤다. 제일은행권을 강제 발행하고 통신기관을 주물렀다. 일인에게 황무지 개간권을 쥐여줬고, 일본 선박은 우리 항구를 제 안방처럼 들락거렸다.

을사늑약 전후로 열사 자결이 잇달았다. 주영서리공사 이한응, 시종무관장 민영환, 원임의정대신 조병세, 참판 홍만식, 경연관 송병선, 학부주사 이상철, 평양진위대 김봉학, 중국인 반종례. 헤이그 특사 이준은 울분으로 숨졌다. 군대 해산 후 참령 박승환이 목숨을 버렸다. 일제가 양민을 학살한 사례는 차마 읽기가 힘들다(51장). “…어느 지방에서는 추격한 의병을 찾아내지 못하자 일본 병사들이 우리 양민 수백 명을 땅에 반쯤 묻은 뒤 장검으로 풀 베듯 목을 친 뒤 서로 쳐다보며 웃어댔다.”

3편 뒷부분은 일제 원흉 처단을 보여줬다. 일제 앞잡이인 미국인 스티븐슨을 죽인 장인환 전명운, 권총 탄환 세 발로 이토 히로부미를 거꾸러트린 안중근 의사, 이완용과 데라우치를 각각 살해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이재명과 안명근 열사가 나온다.

■ 한국인 정신 벼린 ‘단재 사관’

일본 러시아 중국이 물고기로 상징된 조선을 낚으려 하고 있다. 프랑스 삽화가인 조르주 페르디난도 비고가 그린 풍자화(1887년, 고종 24년).
단재는 1931년 ‘조선사’라는 제목으로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 1948년 초판본으로 낼 때 책 제목을 ‘조선상고사’(12편 47장)로 바꿨다. 기존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한국인 정신을 벼리는 ‘단재 사관(史觀)’을 펼쳤다. 한국 고대사를 바로잡는 데 애썼다. 잘못투성이 사료에서 인용돼 잘 살펴봐야 한다는 시각. 고려 정치가·학자인 김부식(1075~1151)이 쓴 ‘삼국사기’가 그렇다.

중화사상과도 싸웠다. 중국 역사서가 특히 위작이 많으니 경계하랬다. “그들은 자기네에 유리하게 다른 나라 역사까지 거리낌 없이 뜯어고친다. …위략(魏略)은 서양 백인종인 대진(大秦, 로마)까지도 중국인의 자손이라고 기록한, 중국의 병적인 자존심을 가장 잘 나타낸 글이니….”(3편 1장 삼조선 총론). 지금도 그들은 김치를 자기네 고유 음식이라고 우긴다.

역사에 스민 ‘사대주의 노예근성’을 집어 올렸다. 전한 역사가 사마천(기원전 145?~90?) ‘사기’를 노려봤다. 가짜 기록을 끌어와 쓸 수밖에 없었으니. 열전 중 조선 편(55)도 믿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1762~836)은 역사서도 여러 권 냈다. 여기서도 중화주의 냄새가 난다며 안타까움을 보였다.

유교 윤리관을 좇아 인물과 역사를 재단하는 문제를 들여다봤다. 고구려 정치가이자 장군 연개소문(?~665)을 빛과 그림자로 나눠 바라본다. “혁명을 이룬 큰 인물이다.” ‘빛’에 해당한다. 옹호가 따른다. “후대가 임금을 죽인 신하로 업적은 무시한 채 깎아내리는 건 크게 원통하다.” 고구려가 강성할 때 그 강역이 얼마나 넓었는가 꼼꼼히 다뤘다. 반면 후임을 제대로 못 만들어 나라를 망친 건 ‘그림자’. 신라가 외세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썼다. 지도층 골수에 스민, 중국을 받드는 사대주의 노예근성이 파국을 불렀다.

그는 사실(事實)이 역사로 온전히 기록되기가 어렵다는 사관을 받들었다. 같은 왕조에서도 전대 역사가 바르게 기록되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새 나라가 들어설 때도 그렇다. 하물며 이민족 역사를 왜곡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이를 걸러내는 게 역사가에게 지워진 책무. 훈몽자회 처용가 훈민정음 삼국유사 같은 고서에서 고대사 진실을 찾으려 애썼다. 오랜 망명 생활은 녹록잖았다. “해외로 나간 후로는 책 한 권 얻기가 어려웠다. 10년을 두고 삼국유사를 보았으면 했지만, 또한 얻어 볼 수 없었다.”

백암과 단재가 보여준 공통된 항일 시기 민족사관은 ‘자강(自强) 자립(自立)’, 두 낱말로 요약된다. 단재는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며 국가 앞엔 존망이란 두 선택지가 놓였을 뿐이라고 믿었다. 21세기, 국제사회는 평화를 내세우나 그 초석은 자강과 자립이다. 그걸 가지지 못한 국민은 난민으로 전락하는 게 국제 사회 현실이다. 이 두 고전은 그런 점에서 일찍 쓴 현대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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