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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한번으로 저녁 식사가 뚝딱…의존적 삶에 익숙한 우리 이야기

사라진 저녁- 권정민 그림책 /창비 /1만5000원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2-12-29 19:54:3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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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배달음식으로 떼우는 주민
- 살아있는 돼지가 ‘배송’되자
- 힘 합쳐 대처하는 모습 그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탄 배달 라이더들을 그린 권정민 작가의 그림. 창비 제공
권정민의 그림책 ‘사라진 저녁’을 펼쳤다. 첫 그림은 아파트 현관이 빼꼼 열린 모습. 복도엔 내다 놓은 생활 폐품이 조금 쌓여 있고, 이 집에 사는 사람의 손만 나와 문 앞에 놓인 배달 음식을 집는 장면이다. 어? 이 그림은 내 이야기다. 두 번째 그림엔 아파트 현관 그림이 세 개 그려져 있다. 위쪽 두 개 현관에선 집주인들이 문 앞 배달 음식을 확인하는 중이다. 맨 아래에선 배달 라이더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현관에 배달 음식을 놓기 직전이다. 어? 이 그림은 우리 이야기다.

세 번째 그림은 더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그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배달 라이더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인데, 주민은 한 사람도 없고 배달 라이더들만 탔다. 요즘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우리 삶을, 우리 사는 세상을 문득 환기해주는 건 예술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이야기는 그 뒤부터 펼쳐진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파트에 뜻밖의 ‘물품’이 배송된다. “요리도 안 된 저녁이 배달된 거야.” (본문 중) 여기서 ‘요리도 안 된 저녁’은 살아 있는 돼지 한 마리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배달 음식을 좋아하고 음식 배달을 자주 시킨다. 근데 가만. 어느 집은 족발, 그 윗집은 감자탕, 그 옆집은 돈가스, 그 아랫집은 보쌈, 그 곁 집은 김치찌개…. 모두 돼지고기를 활용한 음식이다. 배달 요청은 너무 많고 돼지고기 들어간 음식이 정말 다양하다 보니, 어느 날 이 아파트엔 ‘요리도 안 된 저녁’이 배달된 듯하다.

자! 주민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호기롭게 직접 음식을 장만하겠다고 나선다. 그러자니 조리도구부터 재료와 전문지식까지 전부 다 휴대전화를 또 검색해 ‘배송’시켜야 했다. 주민은 과연 목적을 이룰까? 우리 삶을 절묘하게 표현한 그림액이다. 보는 이의 관점·경험에 따라 영화 ‘돼지가 있던 교실’(2008년)부터 ‘나의 비거니즘 만화’(2020)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우리 삶이 풍요롭고 편리해진 듯하지만, 얼마나 연약하고 다른 이에게 의지하며 서로 이어져 있는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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