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니다’ 통일·정착 기여 등 업적
- ‘경사의 길 한글과 함께 60년’ 출간
- 비매품으로 역사 자료 남겨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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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학자 봄내 류영남 박사가 고교 교사 시절 만든 교재 연구 자료. 육일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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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18일 자 ‘국제신보’(현재의 국제신문)에 스무 살 청년 류영남(사진)은 “~읍니다, ~습니다를 ‘~습니다’로 통일하자”는 기고를 처음으로 올린다. 그는 1962년 교단에 첫발을 디딘 젊은 교사였다. 그의 노력은 이어진다. 1965년 ‘새교육’, 1966년 ‘부산 교육’, 1972년 ‘국제신보’, 1984년 ‘부산 한글’, 1984년 ‘한국어문교육학회’에 이르기까지 ’읍니다’는 쓰지 말고 ‘습니다’로 통일하자는 의견을 담은 학술연구와 기고를 그는 줄곧 실었다.
1989년 3월 1일 정부는 새 어문 규정을 시행한다. 표준어 규정에서 ‘읍니다’를 버리고 ‘습니다’를 쓰기로 했다. 한글을 사랑한 교사 류영남의 연구·제언은 26년에 걸친 노력 끝에 열매를 맺었다. 부산한글학회장·부산국어교육학회장을 지낸 봄내 류영남 박사가 13일 ‘경사의 길 한글과 함께 60년’(육일문화사)을 냈다. 이 책에는 한글 사랑, 우리 글 바로 쓰기, 국어교육, 뜻깊은 인문·예술·교양 활동에 관한 귀한 역사·자료·사례가 그득하다. 지역이 기억해야 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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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니다’로 통일하자는 류 박사의 제언을 처음 담은 1963년 10월 18일 자 국제신보. |
나비잠(갓난아기가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자는 잠), 보굿(굵은 나무의 비늘같이 생긴 껍데기), 엉그름(진흙 바닥이 마르면서 넓게 벌어진 금) 같은 사전 속 우리말을 깨우려고 그는 애썼다. 1995~2004년 9년간, 한글날을 기념해 동래고·여명중에서 우리말 바로쓰기 경시대회를 열고 간행물을 냈다. ‘축전’·‘축제’의 뿌리를 분명히 따져 ‘요산문학제’를 ‘요산문학축전’, ‘이주홍문학제’를 ‘이주홍문학축전’으로 바로잡는 데도 큰 힘을 보탰다.
봄내 류영남 선생은 또한 ‘우리글을 바르게’(1961)를 시작으로 ‘말글밭’(1994), ‘깁고 더한 말글밭’(2005) ‘한글학회 부산지회 30돌’(1995), ‘부산한글 50년’(2015) 등 책도 10여 권 지었다. 그는 전 경남여고 황순조 교장과 친분이 있었는데, 황 교장은 ‘잊힌 부산 출신 독립투사’ 서영해 선생의 아내였다. 그 인연을 소중히 간직해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초대 주프랑스 대사였던 서영해 선생의 공적을 재조명하는 데 다리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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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남 박사 |
또 경남 고성군 개천면 최계락 시비를 비롯해 많은 학교·공공기관·비석의 글씨를 썼다. 경남여고 내성고 가야여중 센텀중 등의 명판이나 동래고 한국과학영재고 등의 교훈비, 향파 이주홍 탄생 100주년 문학비 등에 새긴 글씨가 그가 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산 중구 보수동에 ‘검정다리 기념비’를 세우려던 중구청의 뜻을 보완해 ‘검정다리 추억비’라는 한결 친근한 이름을 짓고 글씨도 썼다.
이 책에서 우리글·우리말을 바르게 쓰도록 돕는 사례는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다. 136쪽에 고교 교사 시절 남긴 교재연구 자료사진이 있는데 교육에 들인 그의 정성을 느끼게 한다. 지은이는 이 책을 ‘비매품’으로 냈다. 책 맨 뒤 ‘비매품’으로 쓸 자리에 이렇게 우리말로 풀어 썼다. ‘책 팔지 않음’. 1943년생 원로 학자 봄내 류영남의 우리말글 사랑은 끝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