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서 건너온 녹두전분 국수
- 1970년대 주요 식재료로 편입
- 볶음·조림요리서도 감초 역할
- 韓 전통 궁중음식이었던 잡채
- 中日 음식문화 영향 받아 진화
- 당면칼국수 면발 씹는 맛 일품
- 포만감 오래가 실용성도 갖춰
- 비빔당면, 어묵 채 등 고명 단출
- ‘빨리빨리’ 부산사람 기질 닮아
당면만큼 다양한 음식에 주·부재료로 널리 쓰이는 식재료도 드물 것이다. 부산에서 발달한 비빔당면을 비롯해 전 국민의 잔치 음식 잡채, 짜장 소스 듬뿍 올린 중국집 잡채밥 등이 대표적인 당면 음식이라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부재료로서다양한 음식의 감초 역할 또한 톡톡히 하는 것이 당면이다. 불고기전골 만두전골 등 전골 요리나 갈비탕 감자탕 등 탕류나 찌개 요리, 낙지볶음 돼지두루치기 등 볶음요리, 찜닭 생선조림 등의 조림 요리 등에 입가심이나 식사용 ‘국수 면’으로, 심지어 만두나 순대, 김말이 등의 음식에 ‘속 재료’로도 그 주연급 지평을 넓힌 지 오래다.
■ 전면에 등장한 당면
 |
| 비빔당면은 미리 삶아놨다가 주문과 함께 바로바로 장만해 내놓는 점 또한 매력이다. |
이처럼 우리 음식 속에서 당면의 두드러진 활약은 그만큼 당면의 실용적인 측면을 우리 민족이 제대로 간파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당면은 언제 우리 음식문화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당면은 말 그대로 ‘중국(唐)에서 건너온 국수(麵)’이다. 옥수수전분을 쓰는 우리와는 달리 주로 녹두 전분으로 면을 뽑아 쓴다. 300여 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펀쓰(粉絲)’라는 이름으로 개발된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로 약 100년 전쯤 된다.
원래 중국 사람들이 들여와 중화요리의 식재료로 활용했고, 그 기술을 익힌 일본인이 국내 생산을 시작했으며, 1920년대에는 사리원에 최초로 우리나라 사람 양재하가 광흥공창이라는 당면 공장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생산해 일본에까지 수출한다. 이후 일본도 본토에서 당면을 생산해내는데, ‘봄비처럼 가는 국수’라 하여 ‘하루사메(春雨)’라는 운치 있는 이름으로 유통되었다. 100년 전 동아시아 삼국 모두가 조리해 먹던 국수가 당면이었다.
■ 한·중·일 합작이 낳은 음식
 |
|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당면 묶음. |
이 당면으로 최초 만들어진 우리 음식이 지금의 잔치 음식 ‘잡채’이다. 원래 우리의 전통적인 잡채 요리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 나물을 채 썬 것과 소고기 등 육고기를 함께 참기름 등에 볶아낸 전통 궁중음식 중 하나였다. 말 그대로 ‘여러 가지가 섞인(雜) 나물(菜)을 볶아낸 음식’이다.
그러던 것이 그즈음에 기존 잡채에 중국 당면을 섞고 일본간장으로 간을 하여 버무린, 지금의 잡채가 탄생한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후로 우리 땅에는 중국 사람들과 일본인, 조선인들이 함께했다. 이즈음에 중국에서 당면이 들어오고, 일본 사람들의 실용적이면서 감칠맛 좋은 일본식 장류, 그리고 우리 본연의 음식이 어우러진 것이 지금의 잡채의 원형이다.
그렇게 이 땅에서 동아시아 삼국의 음식문화가 혼재해 탄생시킨 것이 우리네 잔치 음식인지금의 잡채라는 것. 그렇게 우리나라 식재료로 편입한 당면은 이후 우리 음식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며 정착한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한국전쟁 이후 ‘밀’은 무상 원조물자로, 저렴한 수입 가격으로, 쌀을 대신하는 값싼 식량이 된다. 이후 밀가루를 중심으로 한 분식 문화가 발달했고, 정책적으로도 쌀 대신 혼분식을 주식으로 유도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조성된다.
특히 1970년대는 분식이 장려되고 혼식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식당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시간 별로 쌀밥을 내지 못하게 법으로 정해 두었고, 학교에서도 혼식을 유도하기 위해 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까서 일일이 검사하던 때였다. 일명 ‘혼분식 장려 운동’이다. 벌써 50년이 훌쩍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이다.
■ 갈비탕·설렁탕에도 퐁당
 |
| 당면과 칼국수가 어우러진 당면칼국수. |
그 시절 국민 대다수가 절미운동에 참여했고, 식당마다 혼분식 메뉴를 개발해 팔았다. 한식 메뉴인 갈비탕이나 설렁탕에 지금처럼 당면과 국수가 들어가게 된 것도 바로 이즈음, 이런 연유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국수를 중심으로 한 밀가루 음식과 당면을 중심으로 한 전분 음식이 우리 한식에 당당히 편입하게 된다. 이런 시대적 요구와 환경이 중국의 국수, 당면을 우리 음식의 주요 식재료로 적극 활용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분식 문화에 비교적 일찍 적응한 부산은 당면을 다양한 음식의 부재료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본연의 국수 음식으로도 개발할 정도로 창의적이고 실용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비빔당면과 당면 칼국수이다. 당면은 당시 값이 비교적 싼 데다 쫄깃한 식감과 쉬 퍼지지 않는 성질 때문에 부산 사람들 성정과 잘 어우러지는 안성맞춤의 식재료였다.
부산의 당면은 밀가루 음식과 함께 상호 보완재로 발전하게 된다. 밀가루 음식은 부드럽고 술술 잘 넘어가기는 하지만 쉬 퍼져, 부산 사람들이 선호하는 쫄깃한 식감에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그 대안으로 잘 퍼지지도 않고 쫄깃한 식감에 한 그릇 술술 잘 넘어가는 당면이 밀가루 음식의 보완재로 널리 인기를 얻게 된다.
■ 비빔당면·당면칼국수와 부산
그 대표적인 음식으로 칼국수에 당면을 섞은 당면 칼국수가 있다. 칼국수 면발과 당면이 어우러지면서 쫄깃쫄깃 꼬들꼬들 씹는 맛이 일품인 부산의 특별한 칼국수이다. 부산 사람이 당면 칼국수를 선호하는 첫 번째 이유는 칼국수와 비교해 포만감이 오래가고 든든하다는 실용성 때문이었다. 또 칼국수와 당면이 함께 제공되기에 부드러운 감칠맛과 쫄깃한 식감을 그릇을 내려놓을 때까지 계속 즐길 수 있기에 맛의 다양성이 빛나는 음식이다.
또 하나, 부산 사람들의 기질이 잘 반영된 음식 중 하나가 비빔당면이다. 잘 퍼지지 않기에 미리 삶아놓고 준비해 두었다가 주문과 함께 바로 장만해 주는 방식, 즉석에서 바로 비벼 먹는 음식이 비빔당면이다. 부산 사람들의 ‘빨리빨리’ 식사법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다.
오로지 당면과 부산 식재료인 어묵 채, 정구지(부추), 단무지 등 고명도 단출하다. 그런데도 한 그릇 후루룩하고 나면 오래도록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효용이 크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면 위에올리는 매운 양념의 얼얼한 맛과 패스트푸드 형태 바쁘게 먹고 가는 식사 형태가 평소 화끈하고 급한 부산 사람들의 기질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 사람을 닮은 부산의 소박한 서민 음식이자 부산에 와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식 도시로서 아주 중요한 요건 중에는 지역 음식의 유래와 역사적 고찰, 지역민과 지역 음식의 유대감, 음식문화화의 노력이 있다. 이를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콘텐츠나 스토리텔링 또한 중요하다. 부산의 향토음식, 비빔당면이 그길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