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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50> 현인의 ‘피난일기’

“북진통일 그날 오기를 …” 귀향 꿈꾸던 실향민들 목놓아 부르던 곡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5-29 19:24:16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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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시기 월남실향민이 바랬던
- ‘북진통일’ 등장 노래 두곡 내놔
- ‘굳세어라 금순아’ 인기와 달리
- 히트 못 쳤지만 중요 작품 평가

- 현인, 박시춘 설득에 성악 접고
- 환난 겪은 민중에 모든 역량 쏟아
- 전쟁 고통·상처 씻고 희망 전해

1950년대 초반 6·25전쟁 시기 부산 노래에는 뜬금없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북진통일(北進統一)’이 그것이다.
부산 영도대교 초입에 건립된 현인 노래비.
북진통일론은 분단 체제를 선택한 이승만 정부가 고안해낸 새로운 자기당위론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이 공허한 북진통일론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정권의 존립과 정체성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이 북진통일론을 상투적으로 내세웠고, 미국은 그때마다 이를 견제했다. 북진통일론은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던 이승만 정부가 정권유지 차원에서 내세웠던 정책적 선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온 월남실향민 대다수는 이 북진통일론을 열렬히 지지했다. 민중의 갈망 속에서 북진통일론은 상당히 수용적이었다. 거기엔 잃어버린 고토(故土)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복귀에 대한 맹목적 감상주의도 거기에 한몫했다.

북진통일론과 관련된 감상주의적 인식이 대중가요에도 스며들었다. 1953년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제작 발매된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 3절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보인다.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 안고 춤도 춰보자’

부산 영도출신의 가수 현인(위)과 피난일기 LP판(아래).
부산 영도구 영선동 출생의 가수 현인(본명 현동주·1919~2002)은 북진통일론이 등장하는 노래를 두 곡이나 취입했다. ‘굳세어라 금순아’와 ‘피난일기’(천상률 작사, 백영호 작곡, 현인 노래, 유니온레코드·1953)가 그것이다. 전자는 크게 대중들의 반응을 얻었으나 후자는 별반 히트를 치지 못했다. 아무도 이 노래를 기억조차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 노래 가사와 곡조에는 처연한 피란민의 삶과 애수 생활고 고립감 타향살이와 절박한 적응의 과정, 부산이라는 피란지 터전에 대한 기대와 희망 따위가 촘촘히 반영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6·25전쟁과 부산 피란시절의 애환을 다룬 전형적인 가요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창살을 치니/ 어린 자식 잠 못 드는 베갯머리에/

오늘밤도 북진통일 그날 오기를/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나는 빌었소



정처 없이 흘러온 곳 낯선 항구에/ 갈매기 떼 바라보며 단봇짐 놓고/

찬 서리에 시달리어 살아온 삼년/ 경상도가 인심 좋아 정이 들었소

원한 맺힌 내 고향을 찾아볼 길은/ 피난살이 외로워도 서러울소냐

허리띠를 졸라매어 희망을 안고/ 고향하늘 바라보며 힘차게 사오

-현인의 ‘피난일기’ 전문-



현인은 1938년 경성제2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우에노음악학교로 유학을 떠나 음악을 전공했다. 일제말 징병을 피해서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악극단 활동을 하다가 해방과 더불어 서울로 돌아왔다. 1947년부터 해방조국의 첫 레코드사인 고려레코드가 문을 열고 이어서 럭키레코드, 아세아레코드 등이 창립을 할 때 작곡가 박시춘을 비롯한 가요계 원로들은 종래의 슬픈 음색, 축 늘어지는 단조 계열의 창법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지만 해방조국의 민족국가건설 분위기에 어울리는 탄력적 음색과 창법을 지닌 가수를 찾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박시춘은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적절한 주인공을 찾았다. 프랑스 샹송과 이탈리아의 칸초네를 부르고 있던 가수 현인이었다. 박시춘은 마침내 그가 원하는 가수를 찾았다며 무릎을 쳤다.

현인은 성악가의 자존심을 버릴 수 없다며 버텼지만 마침내 박시춘의 설득과 권유를 받아들여 ‘신라의 달밤’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럭키서울’ 등의 대표곡을 연달아 럭키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다.

6·25전쟁이 일어난 뒤 남쪽으로 피란 내려온 두 사람은 여전히 손발을 맞추어 ‘굳세어라 금순아’와 ‘전우야 잘 자라’를 히트시켰고, ‘인도의 향불’ ‘꿈속의 사랑’ ‘서울야곡’ 등을 연속으로 발표했다.

이 모든 가요작품들은 전쟁의 고통과 상처에 시달리던 민중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놀라운 에너지로 작용했다. 가수 현인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환난을 겪던 민중을 위해 쏟아 부었고, 현인으로 말미암아 민족사의 힘든 구간을 살아가던 동시대 주민은 크나큰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피란민의 절박한 삶과 시간을 다룬 노래들로서는 ‘함경도 사나이’(손인호) ‘경상도 아가씨’(박재홍) ‘한 많은 대동강’(손인호) ‘꿈에 본 내 고향’(한정무) ‘이별의 부산정거장’(남인수) ‘에레나가 된 순희’(한정무) ‘고향의 그림자’(남인수) ‘청춘등대’(손인호) ‘추억의 영도다리’(윤일로) ‘피난길 고향길’(원방현) ‘꿈에 본 대동강’(박재홍) 등 다수가 있다.

여기에 우리는 가수 현인의 노래 ‘피난일기’란 특별한 작품 하나를 새로 헌정하려 한다. 그만큼 가수 현인은 부산가요사의 영원한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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