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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48> 부산 시절 더욱 빛난 금사향

‘증류수로 걸러낸 목소리’로 닦아준 전쟁의 피눈물

  • 이동순 가요평론가
  •  |   입력 : 2022-05-01 19:28:21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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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가수 데뷔 후 전쟁 발발
- 군예대 소속으로 위문공연 생활
- 특유의 맑고 고운 음색으로 호평
- 이국적인 분위기의 ‘홍콩아가씨’
- 아이들도 따라부를 정도로 인기

1950년대 초반 부산은 전쟁을 피해 내려온 피란민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이는 대중가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육군 군예대 시절 군복을 입은 가수 금사향(앞줄 가운데).
대중연예인은 대구와 부산 두 곳으로 나뉘어 머물렀다. 한 곳에만 정착한 것이 아니라 대구와 부산을 왕래하며 현지 레코드사에서 노래를 취입하느라 바빴다. 생계 유지를 위한 활동이기도 했지만, 전쟁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작사가 손로원만 하더라도 대구 칠성시장 부근 움막집에 살며 부산을 자주 왕래했다.

전쟁 시기 대중연예인을 기록한 사진을 보면 군복을 입고 있는 특이한 장면을 보게 된다. 육군 군예대의 사진을 보면 우선 낯익은 사람으로 뒷줄 중앙의 코미디언 구봉서가 보인다. 그의 군모에는 계급장이 없다. 앞줄 왼쪽에는 가요황제 남인수가 앉아 있다. 앞줄 중앙에 앉은 작고 귀여운 여성이 보인다. 그녀가 바로 ‘홍콩 아가씨’ ‘님 계신 전선’ 등을 불러서 크게 히트시켰던 가수 금사향(琴絲響· 1929~2018)이다.

본명은 최영필(崔英弼), 해방 직후 상공부의 영문 타이피스트였던 처녀. 1946년 럭키레코드사 주최 전속가수선발에 뽑혀 데뷔했고, 첫 작품은 ‘첫 사랑’이다. 그 어떤 군더더기도 없는 맑고 고운 음색과 창법 때문에 ‘증류수로 걸러낸 목소리’란 평을 들었다.

그의 예명은 태평레코드사 전속작곡가였던 고려성 선생이 지어주었다. ‘거문고 줄로 짜낸 고운 음성’이란 뜻이다. 당시 이들 대중연예인은 제주도 모슬포의 제1육군훈련소 군예대 소속 연예인으로 군부대 위문공연에 바쁘게 출연하고 있었다. 군예대 대장은 작곡가 박시춘 선생이다. 군예대 활동을 하며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음반 취입에 몰입했다. 대구에는 오리엔트, 부산에는 주로 서구 아미동의 도미도레코드였다.

도미도레코드 대표 한복남은 유난히 맑고 고운 금사향의 성음에 주목했다. 즐겁고 명랑한 노래를 만들어 전쟁에 시달린 민중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그런 기획 속에서 제작 발표된 것이 ‘홍콩아가씨’(손로원 작사·이재호 작곡·1954)이다. 전쟁과 홍콩은 전혀 무관하다. 다만 홍콩의 의미는 이국적 풍물, 이색적인 테마로 관심을 끌어서 잠시나마 이국의 정취에 젖으며 위로를 얻도록 하는 배려에서 기발하게 선택된 이미지였다. 전쟁 시기 현실은 황폐하고 침울했지만 노래의 이국적 분위기 속에 잠시 젖었다 나오는 것도 작은 격려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기획 의도는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부산시내 거리와 다방에서는 종일 이 노래만 줄곧 흘러나왔다. 아이들도 국제시장 거리에서 이 노래가사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 이 한 곡으로 도미도레코드사는 엄청난 수익을 얻었다. 덕분에 금사향의 숙소 앞은 새벽 4시부터 전방 위문공연에 데리고 갈 지프나 트럭이 매일 대기했다. 흔들리는 자동차 안에서 인조 속눈썹을 붙이고 화장을 했다고 한다.

사실 가수 금사향의 실력은 ‘홍콩아가씨’보다 3년 앞선 1951년 대구에서 발표한 ‘님 계신 전선’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당시 부산역, 대구역 광장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장병이 앉아서 불안한 얼굴로 대기 중인 광경이 흔했다. 그들을 환송하는 가족들은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울면서 배웅했다.

태극기 흔들며 님을 보낸 새벽정거장 기적도 울었소/ 만세 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날 /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 용감하게 싸우시나 님이여 건강하소서(‘님 계신 전선’의 가사)

사실 이런 가요는 피눈물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런 환송을 받으며 떠난 장병들이 무슨 고지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1990년대 중반 대구의 한 산사음악회에서 필자는 다리가 불편한 금사향 여사의 손을 잡고 무대로 인도했다. 이 노래를 부를 때 금사향 가수는 품에서 작은 태극기를 꺼내어 흔들며 낭랑하게 불렀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았다. 필자가 이끌어가는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 주최로 서울역의 작은 회의실에서 금사향 여사의 삶과 노래를 회고하는 행사를 열어 초대했을 때 진행자는 잠시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분의 명랑성과 순발력, 재치와 낙천성을 지닌 매끄러운 언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큼은 젊은 시절 그대로였다. 천직으로서의 가수가 대중을 위해 과연 무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환히 일깨워주었다.

1937년, 가수 남일연이 부른 ‘눈물의 경부선’(박영호 작사, 이용준 작곡)이란 노래가 있다.

구름다리 넘을 때 몸부림을 칩니다 / 금단추를 매만지며 몸부림을 칩니다 / 차라리 가실 바엔 맹서도 쓸 데 없다 / 아 부산 차는 떠나갑니다

금사향은 부산 피란 시절, 이 노래의 가사 일부를 고치고 제목을 ‘눈물의 부산차(釜山車)’로 바꿔 재취입했다. 원곡의 ‘금단추’가 ‘붉은 입술’로 바뀌고, ‘쓸 데 없다’를 ‘왜 남겼소’로 바꾼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남일연 노래만큼 슬프고 처연한 느낌을 생생히 살려냈다. 사실 이 노래는 환도 전후 부산역 부근 기막힌 이별 장면에 대한 수용과 포착이었던 것이다.

금사향 여사의 기억력은 참으로 비상하고 총명하다. 어릴 때 들었던 구전가요를 모두 가사와 곡조까지 기억하고 있다. 부산 KBS TV의 ‘가요일번지’ 프로에 출연해서 직접 소개했던 구전가요는 우리를 탄복시킨다. 그녀가 소개했던 구전가요 하나를 여기에 올린다. 가사의 절절한 이별과 애타는 사랑의 표현은 시인 김소월의 절창 ‘진달래꽃’을 떠올리게 한다.

궂은비는 이렇게도 쏟아지는데 / 붙잡아도 뿌리치고 배웅도 싫다하시고 / 칠십 리 구불고개 떠나가는 님이시여 / 치마를 벗어주니 우산 대신 받고 가세요/ 가다가 젖거들랑 음~~ 짜서 받고 가세요

영혼이 아름다웠던 가수 금사향. 체구는 작았지만 부피와 영향력은 거인처럼 크고 우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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