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지렁이에게도 슬픔은 있다. 큰아들은 좌익운동하다가 죽고 작은아들은 국군으로서 죽었다. 눈꺼풀이 처진 건 너무 울다가 보니 눈 언덕이 부어서 그렇다. 슬픔을 견디다가 보니까 지렁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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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태종대 전망대 앞에 설치된 모자상. 자살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나림의 고백은 애잔하다. “수갑을 차인 채 서울의 감옥으로 떠날 때, 예낭의 바다와 산과 거리가 어쩌면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출감한 병든 눈으로 예낭을 돌아보았을 때 그 바다와 산과 거리가 어쩌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예낭! 나는 이 항구도시를 한없이 사랑한다. 열다섯 관의 육체를 팔아 한 근의 쇠고기를 사 먹는 여성들도 있고 자기의 인격을 팔아선 스스로의 돼지를 살찌우는 남성들도 있다. 사람보다 나은 쥐와 사람보다 못한 쥐도 있고 벼룩에도 낯짝이 있고 빈대에도 체면이 있다.”
“파도소리는 지구의 맥박이 뛰는 소리다. 그 맥박이 빈혈된 나의 심장에도 뛴다. 고개를 돌리면 자질구레한 골목골목, 부스럼 딱지 같은 지붕의 중락이 보인다.”
예낭은 부산이다. ‘예낭 풍물지’란 부산 어머니의 재, 어머니의 기록이다. 예낭 어머니의 무한헌신이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나림은 ‘예낭 풍물지’에서 예낭의 ‘심장’인 예낭의 ‘어머니’들을 추모한다. 나는 예낭을 ‘禮郞’으로 쓰고, 자식에 대한 무한헌신으로 읽었다. ‘너 죽는 날 나는 죽는다’. 이게 어머니다. 내일의 기적을 위해 오늘의 슬픔을 견딘다. 나림은 어머니 생일잔치를 부산에서 열었다.
예낭 부산은 어머니들이 만든 도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도시의 가치와 매력을 정확히 모른다. 예낭 사람은 동상 하나도 세워주지 않았다. 태종대에 가면 모자상이 있다. 예낭 어머니의 상징물이다. 자살 방지용으로 세운 동상이고,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림은 모자상이 생기기 전에 ‘삶을 견디지 못한 예낭 어머니들의 슬픈 사연’을 숙고한 듯하다.
‘예낭 풍물지’는 문화적 가치가 있다. 문화 도시에 ‘예낭 풍물지’와 ‘예낭 어머니 동상’은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예낭 풍물지’는 부산 정신의 교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