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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박동훈 감독

경비복 입고 수학문제 푸는 최민식, 상상만 해도 흥분됐었죠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2-03-08 19:38:54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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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일하는 탈북 천재수학자
- 수학 약한 명문고 학생 만나
- 삶의 진리 찾아가는 과정 그려

- “시나리오 전문 용어 많았지만
- 쉽고 귀여운 방향으로 연출
- 신인 김동휘 당찬 모습 매력적
- 근성 있는 조윤서 발견 기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학창 시절 가장 어려운 과목이 수학이다. 대학 진학을 위한 필수 과목이지만 ‘시험지의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벽을 느끼게 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박동훈 감독. 쇼박스 제공
그런데 난해하기만 한 수학이 영화에서는 인생의 깨달음을 주거나 우정을 나누는 매개체로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감동을 준 영화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 ‘무한대를 본 남자’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수학의 정답보다 그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소중함을 인생에 빗댄 영화가 등장했다. 박동훈 감독이 첫 상업영화에 도전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9일 개봉)’가 그것이다.

영화는 신분을 감추고 고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나며 벌어지는 감동 드라마다.

지난 7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박 감독은 “요즘은 안 되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시대인 것 같다. 수학 문제를 푸는 과정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일수록 주변을 둘러보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자들이 ‘수학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발견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 아닌가. (우리 영화를 통해) 그런 가능성을 한 번 찾아보는 것도 꽤 괜찮은 시간일 것”이라고 영화에 담긴 포기가 아닌 희망의 메시지도 강조했다.

■낙담한 아이에게 전하는 격려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이 수학을 포기한 학생 한지우(김동휘)를 만나며 벌어지는 감동 드라마를 다룬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쇼박스 제공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 문제를 게임을 하듯 즐겁게 풀었던 박 감독은 고교에 진학해 루트를 보면서 수학을 포기했다. 그런 그에게 이용재 작가가 집필한 리만 가설, 피타고라스 정리 등 수학 전문 지식이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쥐어졌다. 그는 “수학을 소재로 했다고 해서 굉장히 딱딱할 줄 알았다. 그런데 참 예의 바른 글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낙담한 아이가 있는데 부모나 어른이 그 아이의 이야기를 천천히 다 들어주고 문제점이나 해결 방안을 같이 소통하면서 찾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결국 그 아이가 환하게 웃고 용기를 얻는 장면이 그려졌다”며 “그 장면이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 연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출적인 면에서는 수학이 주는 딱딱함과는 반대로 예쁘고, 귀엽고, 즐겁고, 친절한 것들로 채워서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촬영이나 조명 콘셉트도 그런 기준에 맞췄다. 특히 조명은 공간에 따라 느낌을 달리해 영화를 보는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박 감독은 “영화의 메인 공간 이학성과 한지우가 수학으로 교류하는 과학관 B103이라는 공간은 가장 돋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암 대비를 높여 보다 입체적인 공간으로 구성했고, 어두우면서도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어떤 기분 좋은 이벤트가 벌어질 듯한 공간처럼 보이길 바랐다. 대비 효과를 주기 위해 교실은 색채감이 부족한 무채색의 화이트톤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학관 B103은 학교에서 용도 폐기된 오래된 물건이 오밀조밀하게 쌓여있어서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세트 미술은 이학성과 한지우 사이에 벌어질 작은 기적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상한 나라’의 의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주연 배우 최민식(오른쪽)과 김동휘. 쇼박스 제공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제목을 들으면 과연 ‘이상한 나라’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영국 작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실은 루이스 캐롤이 소설가이기 이전에 수학을 전공한 수학자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박 감독은 “엘리스는 체셔 고양이도 만나고 토끼 굴에 들어가는 등 신비로운 탐험을 한다. 우리 영화 안에서 한지우는 신비한 시간, 신비한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면서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명문 자사고에 다니지만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고액 과외를 받지 못하며 수학이 약점인 한지우가 탈북 천재수학자 이학성을 만나서 펼치는 모험을 뜻하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또 하나의 의미는 정치적인 목적이 아닌 자유롭게 수학 공부를 하고 싶어 이상한 나라 북한에서 탈출한 이학성이 수학이 대학 입시를 위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이상한 나라 한국에 왔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N포 세대니 수저 계급론 등 포기를 종용하거나 암시하는 새로운 조어가 계속 만들어지는 이상한 나라 한국의 수포자 고교생과 한국보다 더 괴상하고 괴이한 나라 북한에서 못 버티고 내려온 수학자의 이야기라고 봤다”고 했다.

‘이상한 나라’는 이렇게 중의적인 의미를 지녔는데, 재미있는 설정은 극 중 이학성이 수학 7대 난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리만의 제타함수에서 두 근 사이의 거리가 u일 확률을 나타내는 식과 양자역학에서 두 입자의 에너지 차이가 r일 확률을 나타내는 식은 일치하는데, 21세기에 들어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체셔 고양이를 예로 드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이상한 나라’라는 제목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절묘하게 엮인다.

■최민식과 두 신인배우

박 감독이 그려내고자 했던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한국 영화 대표 배우 최민식과 두 명의 신예 김동휘 조윤서가 함께했다. 먼저 이학성 역으로 3년 만에 관객과 만나는 최민식은 박 감독이 오래전부터 흠모해왔던 배우다. 그는 “최민식 선배의 대사나 몸짓을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팬이었다. 그런데 이 분이 경비복을 입고 랜턴을 비추며 학교 안을 돌아다니고, 고교생 앞에서 수학의 아름다움에 대해 설파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흥분이 되더라. 그래서 제안을 드렸는데 수락해주셔서 감격스러웠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25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한지우 역을 맡은 김동휘는 당찬 모습이 매력적인 배우다. 박 감독은 “오디션장에 최민식 선배도 함께했는데, 위축되지 않고 대사를 하더라. 또 촬영장에 자신에 맞게 대사를 수정해 오기도 하더라. 신인 배우가 먼저 수정해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왜 수정을 했느냐고 하니까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런 성격이 한지우 캐릭터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차고 심지 있는 김동휘를 칭찬했다.

그리고 박 감독이 이번 영화를 통해 ‘발견’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배우로 한지우의 같은 반 친구인 박보람 역의 조윤서를 꼽았다. 그는 “관객에게 빠른 시간 내에 박보람의 성격을 알려줄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거의 캐스팅 마지막,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조윤서를 보는 순간 박보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첫 리딩 때 속으로 ‘유레카’라고 외쳤다”며 조윤서를 눈여겨봐야 할 배우라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조윤서는 극 중 최민식과 함께 원주율을 음계로 옮긴 ‘파이(π) 송’을 피아노 연주한다. 오디션에서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했던 그녀는 이 장면을 위해 한 달간 연습실을 빌려 하루에 7시간씩 매일 연습한 끝에 직접 연주해내는 근성을 보였다. 이들 외에도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박병은과 박해준이 각각 담임선생과 새터민 지원본부의 지부장 역을 맡아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의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개봉하기 때문에 더욱 부담을 갖고 있는 박 감독. “유쾌한 에너지와 활력을 받아 갈 수 있는 영화”라는 그의 말처럼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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