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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25> 홍혜문 소설집 ‘나는 안미자 입니다’

“잘 모르는데 글 쓸 수 있나요, 해저터널 공사 관찰하다 쫓겨도 났죠”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2-02-27 19:45:04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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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후반에 시 배우다 소설 입문
- 글 쓰다 막히면 일하며 작품 구상
- 식당일·생선장사 안 해본 일 없어
- 인물 묘사 위해 빠짐없이 알아야
- 현장 찾고 공부하며 생생함 살려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드러난다. 모르는 분야를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혜문의 소설집 ‘나는 안미자입니다’를 읽었을 때, 이 작가는 소설 쓰는 일 외에 또 무슨 일을 했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해저터널 공사현장이 배경인 소설도 있고 주인공의 직업이 광고디자이너, 화가, 전화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을 하는 심리상담사, 투자회자 직원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심지어 지리산의 삼성궁을 찾아가는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도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홍혜문 소설가를 경남 함안에서 만났다.
경남 함안 악양둑방길에서 만난 홍혜문 소설가.
■늘 소설에 닿아있던 삶의 체험

홍혜문은 경남 함안 윤산마을에서 태어났다. 교육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 부산에서 몇 년을 살았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홍혜문은 유년시절의 안락동과 해운대 풍경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현재는 마산에서 사는데, 고향 윤산마을에 집필실을 두고 있다.

집필실에서 남강 둑방길은 멀지 않다. 소설집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작품을 탈고한 후면 저녁 하늘길을 올려다보며 자전거를 몰고 나선다. 둥글게 이어지는 남방 둑방길을 따라 달려보기로 한다. 어둠이 배어들면서 주변의 사물은 경계선을 잃는다. 달빛이 비친 산과 강, 나무가 둑 아래 하천에 검은 그림자로 비친다.”

자전거를 타는 작가를 보고 싶어 둑방길로 향했다. 홍혜문 소설가는 둑방길에 도착해 차 뒷좌석에서 자전거를 꺼냈다. 분리돼 있던 앞바퀴를 조립하는 손길이 익숙했다. 그는 함안 악양둑방길, 의령 남방둑방길을 차례로 안내했다. 황금이삭을 키워낸 후 지금은 운기조식 중인 텅 빈 겨울 들판, 매서운 칼바람을 맞는 갈대들이 춤추는 둑방길 위에 햇살이 빈틈 없이 내려왔다. 땅과 하늘, 그 사이에 햇빛과 바람이 있었다. 그 비어있음이 마음 가득 들어왔다. 달빛이 내리는 풍경을 보려면 한 번 더 발걸음 해야겠다.

교육학을 전공하던 대학시절의 그에게는 예쁜 추억이 하나 있었다. “좋아했던 남학생이 지나갈 때면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는 척 했어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기도 했지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필자와 그는 마주보며 웃었다. 그는 결혼 후 30대 후반에 마산 가톨릭여성회관에서 열리는 시창작교실에 다녔다. 시를 배우러 가서 만난 시교실 친구들은 그에게 “너는 소설이 더 어울려. 소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이 반짝이고 있어”라며 소설 쓰기를 권했다. 그 무렵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쓴 시를 합평 시간에 낭송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 울었다. “그 시는 형식은 시였지만, 내용은 서사구조가 있는 이야기였지요. 나중에 그 시는 소설로 다시 태어났어요.”

2000년에 문학행사에서 박경리 선생을 직접 만난 일은 홍혜문에게 ‘소설’이라는 큰 세계를 깊이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그때 박경리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작가는 글 쓰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고요. 거대한 파도처럼 제 존재를 흔드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쓰고,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떨어지고…, 그러다가 지치면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달려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하루 12시간씩 라면도 끓이고요. 재래시장 도로변 가로수길에서 생선장사를 한 적도 있어요. 눈이 내리는 겨울 날 비단처럼 반짝이던 고등어가 생각나네요. 고급 한식 요릿집 주방일을 할 때는 자기 그릇을 소리 내지 않고 빨리 씻어내느라 땀을 쏟기도 했습니다. 글 쓰기에 지쳐 달려간 그 현장에서 어느새 소설 배경을 떠올리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했죠.” 그의 ‘삶의 체험현장’은 늘 소설에 닿아있었던 모양이다.

홍혜문은 2006년 ‘경남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2016년 ‘문학나무’ 신인상과 2020년 제6회 창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썼던 작품 중에서 가려 뽑아 엮은 ‘나는 안미자입니다’는 그의 첫 소설집이다.

■공사현장에 가는 소설가

나는 안미자입니다- 홍혜문 /북인 / 2022
소설 주인공들의 직업과 행동 반경 묘사는 작가가 실제로 그 일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홍혜문은 그것에 대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이건 잘 모르면서 썼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하고, 직접 가봅니다. 모르는 건 쓸 수가 없으니까요.”

소설집에 수록된 ‘해저터널’에서는 수심 40m의 깊은 바다 속에서 콘크리트 함체 18개를 이어 붙이는 작업이 펼쳐진다. 첨단기술로 만들어지는 해저터널을 소멸과 죽음의 공간인 병원과 대위법적으로 배치하면서 현실과 그 이면의 서사를 구성해 나간다. 또 다른 소설 ‘버킷’에서는 주인공인 그래픽 디자이너의 손이 ‘굴착기의 버킷’이라는 금속과 ‘아버지의 손’이라는 핏줄, ‘마우스’라는 컴퓨터 기계-기술력을 동시에 가진 복합적 손으로 의미를 지닌다.

“제가 모르는 분야는 책과 인터넷으로 공부합니다. 공사장에 구경(?)도 갔어요. 가덕도 해저터널 현장에 가까이 가서 오래 바라보고 있다가 현장 담당자에게 ‘위험하니까 나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쫓겨나기도 했지요. 굴착기가 어떻게 그 엄청난 힘으로 움직이는지 알고 싶어 관련 책을 10번 읽었는데, 그 정도 읽고 나니까 ‘유압의 작동 원리’를 알겠더라고요.”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마음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열정은 뜨겁게 느껴졌다. 소설 주인공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직업과 업무까지 알아야 한다는 그의 소신은 소설을 더 생생하게 한다. 현실감이 느껴진다. 홍혜문의 소설처럼 지금도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마지막 상황까지 내몰리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운명과 맞서고 있을 것이다. 홍혜문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문인으로서 지닌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제 글을 읽어준다는 건 그 사람이 자기 시간을 투자하는 거잖아요. 그 시간에 대한 보답이 제 글이고요. 감사한 마음으로 늘 깨어있는 작가가 되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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