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엄창록 실화 바탕으로 제작
- 코로나로 작년말 개봉 미뤄져
- “대선에 맞춰 만든 영화 아니야”
- ‘불한당’ 변성현 감독과 새 작품
- 선거판서 뭉친 김운범·서창대
- 수단의 정당성 두고 갈등 그려
- “남 앞에서 얘기하는 성격 못 돼
- 목포연설 촬영 스트레스 컸죠”
지난해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 역할을 맡아 다시 한번 ‘믿고 보는 배우’의 위상을 확인한 설경구가 실존 인물을 연기한 ‘킹메이커’(개봉 1월 27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킹메이커’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면서 시작되는 드라마를 그린 작품이다. 1960~1970년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판의 여우라 불린 엄창록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설경구가 김 전 대통령을 묘사한 김운범을, ‘기생충’ 이후 첫 영화 출연인 이선균이 엄창록에 해당하는 서창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소신과 열정을 가졌으나 네 번 낙선한 정치인 김운범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뜻을 같이 하는 서창대를 만나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하고, 야당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서는 등 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승리에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이 동반되어야 하는 정치인 김운범과 승리를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선거 전략가 서창대는 결국 갈라서게 된다. 두 인물을 통해 과연 정당한 목적을 위해 과정과 수단까지 정당해야 하는지, 아니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납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는 3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점이기도 하다.
‘킹메이커’는 원래 지난해 연말에 개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개봉이 연기돼 설 연휴를 앞둔 대통령선거 40여 일 전에 개봉했다.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난 설경구는 “‘킹메이커’가 대선에 맞춰서 만든 영화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대선에 맞춰서 개봉을 하려고 했던 영화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대선 이후에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다고 해서 이렇게 개봉일을 잡게 됐다”며 영화가 지닌 진정성에 주목해주길 바랐다.
■‘킹메이커’의 시작 ‘불한당’
 |
| 영화 ‘킹메이커’에서 소신과 열정을 가진 정치인 김운범 역을 맡은 설경구. 김운범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로, 설경구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킹메이커’를 이야기하려면 ‘불한당’을 촬영한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변성현 감독에게 ‘불한당’과 함께 원 플러스 원처럼 같이 받은 시나리오가 ‘킹메이커’다. 사실 그때는 정치 이야기고 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변 감독이 김운범 역할을 해야 된다고 말했는데, 일단은 ‘불한당’에 집중하자며 계속 피했다”는 것이 설경구의 이야기.
그런데 ‘불한당’은 개봉 이후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팬덤을 이룰 정도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았다. 당시 설경구는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새롭게 연기를 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고, 그 좋았던 기억이 ‘킹메이커’까지 이어지게 됐다.
“‘불한당’을 하면서 변 감독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또 작품마다 장르가 다른 영화를 연출하는 그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이번 작품을 하면 어떤 색깔의 작품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 ‘불한당’의 인연은 변 감독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친구들이 많았던 ‘불한당’ 팀과 촬영하는 것이 즐거웠고, 이 팀과 다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한당’ 팀 그대로 스태프들을 모으며 하고 싶다고 제가 먼저 제안했다. 다행히 시간이 다 맞아서 ‘불한당’의 주요 스태프가 다 모일 수 있었다. 그래서 변 감독님도 저도 ‘불한당’ 때보다 수월하게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설경구는 변 감독에게 이선균을 서창대 역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2018년 봄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방송 중이었는데 극장 장면에 영화 ‘박하사탕’이 나오더라. 정말 우연히 그 장면을 보고 이선균 씨를 추천하게 됐다. 그것도 인연이면 인연인 것 같아서. 이선균 씨가 맡은 서창대 캐릭터가 참 중요하다. 김운범은 그냥 큰 판을 깔아주고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이고, 그 안에서 서창대가 감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
 |
|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과 존재도 이름도 숨겨진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치열한 선거판에 뛰어들며 시작되는 드라마를 그린 ‘킹메이커’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실존 인물을 연기한 많은 배우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인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부담감이다. 그 인물을 그대로 묘사하면 모방이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개성을 살려 연기하면 왜곡이라는 말이 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모두가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을 연기할 때는 그 부담감이 가중되는데, 그것을 이겨내고 연기해야 하는 것이 배우의 숙명이다.
이미 ‘역도산’과 ‘자산어보’에서 실존 인물을 연기한 바 있는 설경구에게도 김운범 역은 만만치 않았다. “알다시피 김운범이라는 캐릭터는 돌아가신 DJ가 모티브가 됐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극 중 캐릭터 이름이 그대로 ‘김대중’이어서 너무 부담이 되니 이름을 좀 바꿔달라고 했다. 그래서 김운범이 됐는데, 연기할 때는 그나마 조금 부담을 덜었는데 영화가 공개되는 순간이 오니 관객들이 어떻게 보실지 부담스럽다.”
이름을 바꿨다고 해도 모두가 아는 인물이고, 어쩔 수 없이 김 전 대통령이 연상되기 때문에 배우로서 걱정이 되긴 했을 것이다. “대선 후보라는 거창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 이전에 인간 김운범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출세욕, 권력욕 때문에 대권에 도전한 인물이 아니라 그냥 김운범이라는 사람 그 자체에 더 집중했다. 처음부터 큰 인물로 보이려고 했다면 저도 불편하고 보시는 분들도 불편했을 것이다.”
설경구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긴 해도 DJ가 연상되는 겉모습은 걷어내자는 마음을 먹었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본 리딩을 하면서 사투리는 이 정도면 됐으니까 DJ를 따라 하기보다는 제 식대로 연기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연기하면서는 연상되는 분이 있으니까 중간에서 타협하게 됐다.”
극 중 김 전 대통령을 가장 많이 떠올리게 하는 장면은 1967년 총선을 앞둔 목포 연설 장면이다. “목포 연설 장면은 원신 원커트로 풀샷부터 클로즈업까지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이어서 신경 써야 할 것이 여러 가지였다. 원래 제 성격이 남들 앞에서 막 얘기하고 설득하는 편이 아니라서 촬영 한두 달 전부터 스트레스가 심했다. 한여름에 야외 세트에서 찍어서 엄청 더웠지만 덥지 않은 척해야 했다. 두 번 영화를 봤는데 그 연설 장면은 볼 때마다 쑥스럽다.”
■연기 인생 30년의 행복
대학교 4학년 때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연극 ‘심바새메’로 처음 무대에 선 설경구는 내년에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났는데,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일까.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연극은 ‘지하철 1호선’이다. 연극을 4년 정도 했는데 ‘지하철 1호선’을 원년 멤버로 2년 동안 했으니까 저랑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작품이다. 영화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박하사탕’이다. 그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저한테 줬던 작품이다. 30년이란 경력이 쌓이다 보니 이제 그런 어설픈 모습이나 카메라 앞에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떨리는 모습을 표현하지 못할 거 같다.”
30년 가까이 오로지 배우의 길만 걸어오면서 설경구에게 연기란 무엇일까. 연기를 하면서 그는 행복할까.
“어느덧 촬영장에 있는 게 삶이 돼버려서 그 안에 희로애락이 있는 것 같다. 연기가 잘 됐을 때는 애처럼 이제 폴짝폴짝 뛰고 싶고, 안 풀리면 죽고 싶다. 결국 스스로 풀어야 되는데 정말 암담하고 진짜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연기 그 자체가 보람이고, 성취감이고, 좌절이고, 슬픔이다. 연기에 그런 복합적인 게 있어서 여전히 행복하다.” 그의 다양한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연기를 보는 우리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