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북 출신으로 서울서 악단 활동
- 6·25 터지자 월남해 부산에 터전
- 데뷔곡 ‘함경도 사나이’ 등 발표
- 150여 작품 중 50곡이 피란테마
- 안정적인 고음·감정 표현력 으뜸
가수 손인호(1927~2016)가 남긴 노래는 무려 150곡이 넘는다. 특이한 점은 자신의 노래는 절반가량이고 나머지 노래는 대개 리바이벌 곡이다. 음색과 창법의 특징에서 보면 손인호의 노래는 애절함과 처연함이 애간장을 끊어내는 슬픔의 극치로 이끌고 간다. 그것을 절규(絶叫)의 창법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가요황제 남인수와 비교한다면 고음역까지 올라가면서도 안정성과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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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건립된 ‘해운대 엘레지(1958년 발표)’ 노래비를 바라보는 가수 손인호의 생전 모습. |
손인호가 부른 노래의 가사를 주의 깊게 음미해보노라면 피란, 혹은 피란민 테마가 50편이 넘는다. 대부분 부산(釜山)이라는 특정한 공간성을 배경으로 피란살이가 보편적 핵심 소재이자 중심무대로 설정이 되고 있다.
그는 평북 창성에서 출생했고 본명은 손효찬이다. 유소년 시절 이웃마을 벽동으로 옮겨가서 살았다. 그곳은 압록강을 막아서 만든 수풍댐 상류지역이다. 댐의 완공으로 거주지가 수몰되자 손효찬이 11살 되던 무렵 가족은 만주 신징으로 이주했다. 8.15광복을 맞아 고향마을 부근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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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손인호의 대표곡을 수록한 LP앨범. |
1946년 관서콩쿨대회에 출전해서 최고상을 받았는데, 이때 심사위원 중 누군가가 월남해서 가수가 되기를 은근히 권유했다. 서울로 옮겨와서는 김해송이 이끌던 KPK악단 전속이 되어서 노래를 불렀다. 윤부길이 이끌던 ‘부길부길쇼’단에도 멤버로 참가해 공연했다. 하지만 그의 전업은 노래보다 수입이 좋았던 영화녹음기사였다. 무려 4000편가량의 영화가 손인호의 손을 거쳐서 녹음이 되었다. 틈틈이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6·25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내려와 피란생활을 시작했다. 이 무렵 친하게 지내던 작곡가 나화랑으로부터 ‘함경도 사나이’란 노래의 취입을 권유 받았고, 이것을 손인호란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 노래는 손인호의 데뷔곡이라 하겠다. 1954년에는 작곡가 박시춘에게서 ‘나는 울었네’ ‘숨 쉬는 거리’ 등 두 곡을 받아 음반을 발표했는데 그 중 ‘나는 울었네’가 크게 히트했다.
이런 프로필을 보더라도 손인호는 피란 테마 노래를 집중적으로 부르기에 매우 적절한 가수였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북에서 남쪽으로 월남해 내려온 실향민이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고향, 다시 되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 애달픔을 그보다 절절하게 담아내는 음악인은 드물었다. 송달협 최남용 한정무 김광남 등도 피란 테마를 불렀지만 손인호는 이 피란살이 테마 노래에서 단연 으뜸이자 선구적 가수였다.
손인호가 남긴 피란 테마, 실향민 테마 가요작품을 손꼽아 본다면 ‘간곳마다 괄세더라’ ‘갈매기 사랑’ ‘깨어진 사랑’ ‘꿈이었네’ ‘나그네 밤 열차’ ‘넋두리 365일’ ‘눈물의 한탄강’ ‘돌아가자 남해 고향’ ‘동백꽃 일기’ ‘마음의 부산항’ ‘물새야 왜 우느냐’ ‘미련의 항구’ ‘밤 항구’ ‘번지 없는 내 고향’ ‘부산은 내 고향’ ‘북방 하늘’ ‘빼앗긴 사랑’ ‘이별의 부산항’ ‘한 많은 대동강’ ‘한 많은 이북 고향’ ‘함경도 사나이’‘해운대 엘레지’ ‘휴전선아 말해다오’‘흙냄새 고향’ 등이다.
‘간곳마다 괄세더라 타향살이 내 신세 / 낸들 어이 고향이야 없으랴만은 / 못가는 내 사정을 못가는 내 설움을 / 아 그 누가 그 누가 / 알아주나 달래어주나’로 펼쳐지는 노래 ‘간곳마다 괄세더라’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뿌리박지 못하고 부유적(浮游的) 삶을 간신히 지탱하며 부지해가는 피란민의 애환을 읽어낼 수 있다.
‘기적도 목이 메어 슬피 우는데 / 타향에 버림받고 떠나가는 이 내 몸 / 정든 사람 정든 고향 어데 두고 나는 여기 왔던가 / 낯 설은 정거장에 불빛만 섧다’는 가사의 ‘나그네 밤 열차’에서도 동일한 피란민 테마의 전개 구조이다.
‘십년이면 산천도 변한다는데 / 어머님도 내 고향도 안녕하신지 / 오늘도 한자 두자 적어본 편지 / 구름에 부쳐보나 바람에 날려보나 / 머나먼 이북고향 번지 없는 내 고향’을 토해내는 ‘번지 없는 내 고향’에서는 두고 온 북녘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괄세 받는 사람들’과 유사한 서사구조를 지닌다. ‘부산은 내 고향’의 노랫말에서는 피란살이 속에서 흠뻑 정든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게 된 실향민의 내면 풍경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당시 피란민에게 부산은 은혜의 공간, 재생의 터전이 아니었던가?
‘잘 있거라 나는 간다 갈매기 항구야 / 천추의 한이 맺힌 타관살이 푸대접에 / 세세년년 흘렀더냐 청춘마저 흘렀더냐 / 송아지 앞세우고 피리 불던 내 고향 / 찾아간다 잘 있거라’. ‘미련의 항구’에서는 피란살이를 청산하고 고향으로 떠나게 되는 홀가분한 심정을 담고 있다. 인내와 끈기를 통한 상상적 극복과 승리감의 획득이 담보되고 있다.
‘여수(旅愁)의 부산항구’에서는 부산 타향살이와 잊을 수 없는 고향을 상호 대비시키는 극명한 묘사로 풀어낸다. ‘이별의 부산항’에서는 피란살이 3년을 청산하고 떠나는 실향민의 가슴 속에서 송도 해운대 오륙도 영도다리 부산항 등 부산지역의 손꼽히는 명소를 일일이 헤아리며 되새긴다. ‘이별의 성당고개’에서는 부산에서 실향민으로 살아가며 옛 고향 시절의 첫사랑을 떠올리는 전개가 담겨져 있다. ‘타향은 타향’은 부산 피란살이에서 애써 정을 붙여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고향은 더욱 간절하게 떠오른다는 반전기법으로 펼쳐낸다. ‘한 많은 대동강’은 평양 출신으로 부산까지 피란 내려온 실향민이 고향의 명소인 대동강 모란봉 부벽루 등을 떠올리며 서도소리 수심가(愁心歌)의 가락까지도 회상하는 애타는 그리움을 실어서 그려낸다. 그런 공감과 호소력 덕분에 이 노래가 히트곡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자나 깨나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실향민 가수 손인호의 넋은 삼엄한 비무장지대를 훌쩍 넘어 평북 고향집 부근을 홀로 뜬구름처럼 서성이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