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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자서전 ‘약속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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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 / 버락 오바마 자서전 /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7월 발간
지독히 현실적이었던 이상주의자의 회고
부산 중구에 있는 동네책방인 문우당서점에 얼마 전 갔다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자서전 ‘약속의 땅’을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제일 잘사는 나라를 다스렸던 사람의 거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동네서점에서 맞닥뜨린 게 좀 뜻밖이긴 했다. 919쪽이라는 벽돌 두께에 주눅도 들었는데, 어쨌든 펼치긴 펼쳤다. 거기서, 한때 미국 대통령이라는 직업(job·대통령직에 관한 오바마 자신의 표현)을 가졌던 ‘지독히 현실적인 이상주의자’를 만났다. 벼락 같은 만남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다. 버락 오바마는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그러니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거나 설명하려 드는 건 쓸데 없는 짓이겠고, ‘약속의 땅’에 이 지독힌 현실적인 이상주의자가 직접 써내려간 미국 대통령이라는 직업에 관한 체험·반성·자랑·철학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우리도 대선의 계절 아닌가.
먼저 ‘약속의 땅’이라는 자서전에 관한 버락 오바마의 마음가짐이다.
“고백건대 나 역시 이 책을 쓰기 위해 재임기와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을 반추하며 스스로 묻곤 했다. 링컨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고 부른 것에 호소함으로써 미국을 우리가 약속받은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내가 본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는 데 너무 주저하지 않았는지, 말이나 행동을 너무 조심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14쪽)
이렇게 번민하며 말하는 사람의 글이라면, 끌린다. 그다음은 오바마가 말하는 자기 성격인데, 연설과 표현의 귀재인 그가 실은 예민하고 내성적인 소년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내성적인 분들은 알겠지만, 사람 성격의 바탕은 잘 안 바뀐다. 아래와 같다.
“나는 행동보다 사변을 좋아했다. 내성적인 면, 심지어 수줍음은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자란 탓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깊은 자의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나는 거절당하거나 한심해 보이는 것에 예민했다. 게으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심지어 나의 천성인지도 모르겠다.” (31쪽)
중국 춘추전국 역사를 여러 번 읽다 보면, 한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깨닫게 된다. 간단하다. ‘천하를 도모하거나 세상에서 뜻을 펼치는 일은 혼자 할 수 없다. 절대로!’이다. 정치 초년병 오바마가 탁월한 선거전문가 데이비드 액설로드를 영입할 때 한 말이 그런 점에서 인상 깊다.
“데이비드 액셀로드에게는 다른 수법을 썼다. 기자 출신 언론 컨설턴트 액스(액셀로드)는 영리하고 강인하고 능숙한 광고 제작자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액스에게서-그의 작업 도구인 온갖 여론조사 데이터와 전략 메모, 논점들의 이면에서-스스로를 단순한 용병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 동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보았다. 나는 선거 공학을 들먹이기보다는 가슴에 호소하기로 했다.” (70~71쪽)
조금씩 성숙해지는 과정도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듣는 쪽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귀를 기울일수록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다.… 괜찮은 일자리가 없어서 외지로 나가는 청년들, 학비를 댈 수 없어서 졸업을 앞두고 중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77쪽)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한 당내 경선의 토론에 데뷔해 그가 받은 점수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액셀로드의 관전평과 오바마의 반응을 보자.
“토론이 끝나고 액스가 조심스럽게 관전평을 내놓았다. 그가 말했다. ‘문제는 모든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그게 핵심 아닌가요?’ 액스가 말했다. ‘아뇨, 버락. 그건 핵심이 아니에요. 핵심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예요. 당신의 가치, 당신의 우선순위. 사람들은 이것들을 알고 싶어 해요.’…내가 말했다. ‘완전 엉터리네요.’ 그가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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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국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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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은 드디어 미국 대통령이 됐다. 오바마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이다. 책 전반에 걸쳐 오바마는 아래와 같은 질문을 자기에게 끝없이 던진다. 일종의 이상인데, 그 가까이 가기 위해 지극히 현실적인 노력을 감행한다.
“이 의문들은 앞으로 몇 달간 거듭거듭 제기될 한 가지 질문의 변주였다. 내가 어떤 대통령이 되려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선거운동 기간에 절묘한 수를 쓴 나는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막무가내식 정치를 끝내겠다고 약속하여 무당파와 심지어 일부 온건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도 …. 하지만 각 사람에게 내가 말한 것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진실이었다.” (286쪽)
그런 그가 처한 정치 상황은 아래의 토로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유치한 불평은 백악관 주인이 누구이든 어느 주요 법안에서나 으레 뒤따랐다. 인적 구성이 더 다양하고 권위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는 등의 여러 이유 때문에 민주당이 특히 불평이 많았는데, 그들은 본질이 아닌 곁다리에 매달리는 데서 거의 변태적인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이 불만 중 일부가 언론에 새어 들어가 기자들이 몇 마디의 지엽적 발언을 여권 내 알력으로 침소봉대하면….”(339쪽)
다음은 이 책에서 만난 인상 깊은 명문 여럿 가운데 하나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서 해외 파병 군인이 입원한 병원에 간 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훗날 대통령 임기가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뉴욕타임스’가 나의 군병원 방문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서 전 행정부의 국가 안보 관료 한 사람은 그 행동의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최고사령관이 할 일은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부상병을 만나고 다니면 명료하고 전략적이어야 할 대통령의 판단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에게 연락하여 내가 월터 리드와 베세즈다에서 돌아오는 길에서만큼 명료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 대통령이라는 지위 때문에 나의 결정을 더 큰 대의로 어떻게든 정당화할 수는 있다 해도 스러지거나 산화한 목숨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 그때만큼 명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26쪽)
재선을 통해 임기 8년을 채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첫 임기 4년을 담은 이 책에서 그는 ‘대통령직’에 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여러 차례 한다. 현실 속에서 이상을 응시했던, 직업이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면모가 드러나 몇 개 인용하는 것으로 책 에세이를 맺는다.
“대통령 임무의 90퍼센트는 물려받은 문제와 예상치 못한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임을 되새겼다.” (450쪽)
“이것이 대통령직의 본질임을 나는 깨달아갔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임을. ” 500쪽)
“나는 의연히 대처하려고 애썼다. 무엇 하나 계획대로 정확히 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직의 본질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 631쪽)
“대통령은 언제나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미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은 접시 여러 개를 돌리는 서커스 단원 같아.”)(719쪽)
우리의 대통령선거가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