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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119> 이상헌의 춤 비평집 ‘처음 추는 춤’

춤 비평가가 된 미술학도 “몸짓의 메시지, 문자로 남기고 싶었죠”

  •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  |   입력 : 2021-11-28 19:39:23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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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사랑해 ‘잡독’하던 소년
- 미대 재학때 무용과 친구 만나
- 춤판 매력 빠져 비평가의 길로

- 사진 한 장 없이 글만 담은 책
- 부산 젊은 춤꾼들의 열정부터
- 삶의 현장 속 춤 상상하게 해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5, 6학년 여학생들이 강강술래 공연을 했다. 무용학원에 다니던 몇 몇은 어설픈 여자 아이들 속에서 빛났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운동회가 끝나고 난 뒤 필자는 ‘춤은 나하고 거리가 멀구나’하고 생각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몸치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운동회 당일은 기분 좋은 긴장감과 뿌듯함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춤은 필자에게 ‘보는’ 것이었지,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고 시절에도 춤을 추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공연복과 분장용 화장품만이 늘 신기한 구경거리였을 뿐이다. 왜 춤을 추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직접 티켓을 사서 본 춤 공연도 몇 번 되지 않는다. 춤의 세계는 필자에게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가족이나 지인을 춤꾼으로 두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자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헌 씨의 춤 비평집 ‘처음 추는 춤’을 읽었을 때, 저만치 있던 춤 세계가 다가왔다. 이상헌 비평가를 명륜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친구 따라 접하게 된 춤판

부산 동래구 명륜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상헌 비평가.
춤 비평가이며 공연기획자인 이상헌 씨는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래구 일대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닌 터라 골목골목을 환하게 알았죠. 그런데 너무 많이 변해버렸어요. 옛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그는 잠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상헌은 그림을 잘 그리고 책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선생님이 큰 국제 아동 미술대회 공모전에 냈는데 대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내가 그림을 잘 그리나 보다 싶어 기분이 좋았죠. 그때 받은 큰 트로피는 동생과 총싸움 하다가 망가뜨리고, 상장도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요. 열병을 심하게 앓은 후 다리가 불편해진 몸이라 그랬는지, 앉아서 그림 그리고 책읽는 걸 좋아했어요. 교육자이신 부모님 덕분에 집에 책이 많았어요. 방바닥에서 천장까지 벽면 가득한 책장이 있는 방에서 잤는데, 아래 세 단이 제가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요. 자려고 누웠다가 손만 뻗어도 책이 있었어요. 아래칸 책을 다 읽고, 자라면서 점점 윗칸의 책을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도서관에서 살았는데, 책을 빌릴 때 뒷표지에 붙어있는 이용자카드에 제 이름을 적는 게 좋았어요. 아무도 안 읽은 책을 찾아 이름을 가장 먼저 적는 재미에 빠져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잡독’이었죠. 그 책읽기가 대학 때도 그 이후에도 공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이용자 카드에 첫 번째로 이름적어 넣기. 어린 이상헌은 그때 얼마나 신이 났을까. 옛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춤 비평가가 된 사연이 궁금했다. “부산대 미술학과에 입학하면서 무용학과 친구들과 친해졌어요. 교양과목을 들어야 했는데, 쉽고 재미있고 학점 따기 쉬운 과목은 재빠른 학생들이 모두 선점해버리고, 남은 과목인 ‘교양논리학’을 듣게 됐어요. 나처럼 게으른(?) 예술대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틈에 끼었지요. 그때 만난 무용학과 친구들을 따라 태어나 처음으로 춤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뒷풀이를 가더라구요. 춤이 뭔지는 몰랐지만, 공연 후 뒷풀이 술자리는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미술은 혼자 하는 작업인데, 춤 공연은 공동작업이니까 그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계속 함께 다녔죠. 졸업할 때쯤 그 친구들이 졸업발표회 무대세트에 쓸 소품 제작을 부탁해왔어요. 그걸 계기로 무대미술 디자인을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 제작 시스템을 알게 되고, 공연예술이론을 공부하고…. 춤을 자꾸 보니까 보이더군요. 30여 년 보았습니다.” 미술학도가 춤판을 바라보게 된 사연은 흥미로웠다. 그는 2017년 한국 춤비평가회 비평 신인상 공모를 통해 춤 비평을 시작했다.

■문자로 기록하는 춤

처음 추는 춤- 이상헌/소요-you/2021
‘처음 추는 춤’은 춤 비평가로서 이상헌의 첫 책이다. 필자로서도 처음 접하는 춤 비평집이다. 그것도 부산의 춤판이야기, 거리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춤의 기록이다.

현장의 분위기와 춤꾼의 몸짓은 이상헌의 기록에서 서서히 되살아난다. 춤꾼과 관객의 호흡도 연상된다. 어떤 내용을 춤에 담았는지, 그 춤을 통해 세상을 향해 외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춤 비평집이라서 사진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한 장도 없다. 처음에는 좀 의아했지만, 문자로만 기록된 춤과 비평은 읽는 사람을 오히려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책을 보면서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위안부, 5·18 희생자,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위무하는 춤은 아픈 역사를 다시 되살려준다. 문자기록으로 더듬어 보는 역사와 춤으로 보는 역사는 어떻게 다를까. 한번 보고 싶다. 무대에서 추는 것만이 춤인줄 알았는데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 투쟁의 현장에서도 춤은 추어지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부산의 젊은 춤꾼들의 이름을 많이 만났다. 그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했다. 식지 않은 열정으로 춤추고 있는 그들이 고마웠다.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가족과 동료의 환호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가 잦아들면 안무자는 아쉬움의 긴 후유증을 겪고, 그 후유증을 또 다른 창작으로 극복한다.” 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가족과 다정한 벗들 말고 순수한 관객들이 찾아준다면, 안무자도 춤꾼도 공연 후의 아쉬움이 조금은 덜할 것이다. 이왕 춤 비평집과 악수했으니, 부산의 젊은 춤꾼들 공연도 보러가야겠다.

이상헌은 “국제신문이 제게 춤 비평 지면을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2018년 6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격주로 ‘이상헌의 춤 이야기’를 썼지요. 일간지의 춤 칼럼은 파격이었습니다. 이후에 지면이 조금씩 늘었습니다. 지역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절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책에는 국제신문에 실렸던 글을 비롯해 다른 지면에 소개됐던 글도 함께 수록했다. 부산 춤판, 부산 춤꾼들의 뜨거운 몸짓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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