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양산보가 조성한 원림
- 기라성 같은 선비들 드나들던 곳
- 소박한 광풍각 툇마루 앉아보니
- 벽오동나무 바람에 손 흔들고
- 시냇물마저 천자문 외우는 듯
여행은 세계의 확장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과 낯선 세계에 대한 설렘이 공존했던 시간을 펼쳐놓고 삶의 추수를 생각했다. 낯선 곳에 중심을 옮겨놓고 내가 걸은 길을 가늠해 보았다.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발품을 비춰보는 새벽. 요람부터 무덤까지 가야 하는 도정, 어디까지 가야 반환점일까 헤아리다 놓친 시간이 많았다. 여정이 끝나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지 않은 이 일탈이 짧기만 하다. 낯선 세상과 마주친 내 감성의 무딘 촉이 벼려지려는 찰나에 끝나는 이 아쉬움은 또 다른 여행을 부추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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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풍각에 앉아 흐르는 냇물을 바라보면 모두의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편안해진다. 전남 담양군 소쇄원의 광풍각 전경. |
여행은 가는 곳마다 치유 공간을 마련해두고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멀리 떠나보니 늘 곁에 있어 당연한 존재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여정, 낯선 공간에서 귀한 것이 보였다. 이 낯섦은 설렘과 동의어다. 낯섦과 설렘은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여행 전날의 벅찬 순간에 서본다. 여덟 번째 ‘시 둘레길’. 소쇄원과 애국지사 전명운을 보러 전남 담양으로 가는 내내 기쁨으로 지치지 않았다. 무딘 내 서정의 촉이 가을걷이 끝난 벼 뿌리 근처 두아(豆芽·콩을 물이 잘 빠지는 그릇 따위에 담아 그늘에 두고 물을 주어 자라게 한 것)로 돋아났다.
■ 광풍각에 앉아
소쇄원(瀟灑園·전남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은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지은 원림이다. 양산보는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을 향했던 뜻을 버리고 후학을 가르치며 노후를 보내기 위해 소쇄원을 지었다.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그의 유훈으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현재 소쇄원에는 제월당과 광풍각 그리고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인 대봉대 초정이 남아있다. 소쇄원은 양산보의 은일한 생활을 위해 지었지만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서하당 김성원, 송강 정철 등 당대 기라성 같은 선비가 드나들었던 교류의 장이다. 특히 김인후(1510~1560)는 양산보와 사돈지간이자 교우로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소쇄원 48영’(1548년)을 남겼다.
窓明籤軸淨(창명첨축정) 창 밝으니 방안의 첨축들 한결 깨끗하고
水石暎圖書(수석영도서) 맑은 수석엔 책들이 비춰 보이네
精思隨偃仰(정사수언앙) 정신 들여 생각하고 마음대로 기거하니
竗契入鳶魚(묘계입연어) 오묘한 계합 천지조화의 작용이라네
- 김인후, ‘소쇄원 48영’ 중 제2영 枕溪文房(침계문방·시냇가의 글방에서 )
나는 ‘소쇄원 48영’ 중 ‘제2영 枕溪文房(침계문방)’이 노래한 광풍각으로 갔다. 겉치레 하나 없는 광풍각은 나를 괴롭히는 파란만장을 덥석 받아주었다. 달달 들볶던 긴장을 풀고 길을 끌고 온 신을 벗고 툇마루에 올라앉았다. 맞은편 대봉대 초정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쳤다. 내 갈색 바람을 읽은 벽오동 나무가 손을 흔들었다. 광풍각 시냇물마저 선비 글 읽는 소리에 귀가 열려 천자문을 줄줄 외웠다. 그 시냇물 소리가 내 귀에 고이지 않고 빠져나갔다.
나는 그 물의 등에 업혀 강으로 나갔다. 올릴 돛도 내릴 닻도 없는 내 시는 5대양 6대주를 떠돌까? 엉성한 그물을 던져놓고 대어를 기다리는 이 역설.
■ 제월당 마당을 거닐며
제월당(霽月堂)은 양산보의 사적 공간으로, 그 벽면에는 ‘소쇄원 48영’을 새긴 현판이 걸려있다. ‘소쇄원 48영’은 소쇄원의 아름다운 사계를 노래했지만 그 이면에는 스승 조광조를 잃은 양산보의 슬픔과 인종을 잃은 김인후 자신의 아수라를 잠재우기 위한 시가 아니었을까? ‘제42영’ 櫬澗紫薇(친간자미·산골 물에 핀 백일홍’을 통해 그의 내면세계를 짐작해보았다.
世上閒花卉(세상한화훼) 세상엔 무성히 자란 꽃이라도/ 都無十日香(도무십일향) 도무지 열흘 가는 향기 없다네/ 何如臨澗樹(하여임간수) 어찌하여 산골 물가의 배롱나무만은/ 百夕對紅芳(백석대홍방) / 백일 내내 붉은 꽃을 대하게 하는고(전문).
제월당 마당 가에서 백일홍 몸피 툭툭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는 낙향한 신하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자신의 죄를 씻고 거듭나고자 하는 수양의 자세로 보자, 내 몸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우후죽순 돋아났다. 이 죽순이 자라 나를 위리안치시켰다. ‘소쇄원 48영’을 저울대 삼아 내 시를 달아보았다. 바닥을 치는 눈금 한 치나마 끌어올릴 수 있을까? 끊임없이 자기를 수양하는 배롱나무에게 배우는 한 수, ‘제42영 櫬澗紫薇(친간자미)’에 다짐을 얹고 힘껏 눌렀다. 마음속 깊이 새긴 음각, 음화 한 폭을 가슴에 새기고 초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 봉황 기다리는 초정 대봉대
초정의 지붕 아래에는 대봉대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대봉대’는 손님을 봉황처럼 모신다는 뜻 외에도 봉황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 양산보에게 봉황은 인종과 같은 성군 아니었겠는가? 나도 이 대봉대에 앉아 나의 봉황을 기다리며 마음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瀟灑園中景 (소쇄원중경) 소쇄원의 빼어난 풍경이 어우러져 / 渾成瀟灑亭 (혼성소쇄정) 모두 소쇄원의 누정을 이루었네/ 擡眸輪颯爽 (대모륜삽상) 눈 들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側耳廳瓏玲 (측이청롱령) 귀 기울이면 구슬 굴리는 물소리 들려라.
-김인후 ‘소쇄원 48영’ 중 제1영 小亭憑欄(소정빙란·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하여’ 전문
‘제1영 小亭憑欄(소정빙란)’에서 화자는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구슬이 구르는 소리로 듣는다. 내 귀에는 자갈의 울음으로 들릴까? 소쇄원 입구의 대나무와 제월당 주변 백일홍은 선비의 곧은 기개와 신하의 우국충정을 뜻한다. 초가지붕을 얹은 대봉대는 사치와 겉치레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사방이 열린 초정 아래 누워보니 먹지 않고도 배가 고프지 않을 것 같았다. 겉치레에 빠진 내 삶을 더듬어보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 담양의 애국지사 전명운
1. 어화 우리 동포들아 열심 애국 힘을 써서 2. 닛지말아 닛지말아/ 충군애국 닛지말아
四千년의 신성동방/ 신셰계에 빗내보셰 일심하셰 일심하세/ 나라위해 일심하셰
사농공샹 동력하면/ 대한뎨국 자연부강 건곤감리 태극기를/ 디구샹에 놉히날려
자유독립하고 보면/ 세계상에 뎨일일셰 만세만세 만만세로/ 대한독립 어셔하셰
-전명운, ‘뎐씨 애국가’ 1908. 4. 1. ‘공립신보’
담양을 갈 때 나는 마지막에 내 본(本)이 있는 향교리 1번지를 들르곤 한다. 재실과 시조 묘에만 가곤했는데 이번에는 ‘뎐씨 애국가’ 노래비와 죽암 전명운(1884년~1947) 의사 흉상이 눈에 들어왔다. 전명운 의사는 1908년 장인환 의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기차역에서 친일파 미국인 외교관 스티븐스를 저격했다. 그는 스티븐스를 저격한 뒤 어깨에 총상을 입은 채 병상에서 ‘뎐씨 애국가’를 썼다고 한다. 이 애국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역시, 이곳에 와서야 이 ‘뎐씨 애국가’를 알게 돼 부끄러웠다. 그러나 담양 전가의 본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뎐씨 애국가’와 전명운 의사가 한결 더 자랑스러웠다. 이번 담양 시 둘레길에서 돌아오는 내내 땅에 발이 닿지 않았다. 차바퀴마저 우쭐거렸다.
시민기자·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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