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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으로, 위리안치처럼 비가 내린다. 빗줄기의 기세에 밖으로 나가기 어렵다. 우리는 격리됐다. |
<내 느낌으로 바라보기>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처음엔 공포감을 주던 용어가 이제 대수롭지 않게 생활 속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격리’라는 말도 그렇다. 자의건 타의건 전염병과 무관하게 소외나 무관심 속에 가려져 격리나 다름없는 일상 속에 갇힌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가 발병하면서부터 어디를 방문하건 더 깨끗이 ‘손을 씻’고 ‘귀’도 ‘입’도 잘 씻어야 하는 청결에 더욱 신경이 곤두서게 되었다. 환자가 모여드는 병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연로하신 부모님 일로 한 며칠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보니 고성만 시인의 시가 감성을 자극하며 생의 모습에 천착하게 된다. 병원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기도 하지만, 그만큼의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만난 ‘당신’은 사람마다 각자 다른 대상이겠으나 여기에서는 부모님을 읽게 된다.
그래서인가 때늦을지라도 ‘죄책감을 지우고’ ‘기억을 채’우며 마음을 닦아 가시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둔 후에야 ‘산딸나무 꽃’ 핀 ‘뒷마당이 하얗’게 된 것에 물개박수를 친다. 예수님이 골고다언덕을 올라가실 때 짊어진 십자가가 산딸나무로 만든 것이라 하여 그리스도인은 산딸나무를 성스럽게 여긴다.
삶은 고행의 연속이라 했으나, ‘들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새떼가 날아오는 5월’ 텅 빈 골목이 햇살의 날갯짓으로 환해지는 서정적 풍경이 삶에 평화를 주기도 한다.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와 노을을 지고 산밭에 가신 ‘어머니’ ‘방파제 넘어, 다리건너’ 언젠가 ‘별빛마을에 도착’ 했을 때도 시적 화자가 기다렸던 것은 ‘당신의 음성’이었던 때가 있다.
그가 ‘비로소’
파도가 되어 바다를 만나는 그림을 그려본다.
비로소, 격리에서 해제되는 날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파도 소리로’ 채워진 ‘방’하나 있어도 좋지 않을까.김곳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