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로 관객 잃은 민간 단체
- 부산문화회관, 공공극장으로서
- 지역 예술인 기량 펼칠 판 마련
- 극단 청춘나비·드렁큰씨어터
- 빅픽처스테이지의 놀라운 연기
- 현대무용단 자유·조군댄스
- 새롭고 힘있는 몸짓에 희망이
지난 8월 17일 오후 7시30분 부산문화회관 사랑채 극장(소극장)에서 극단 빅픽처스테이지의 연극 ‘코마’(작·연출 김정환)가 시작했다. 배우는 최현정 선승일 이설, 단 세 사람이었다. ‘코마’는 형식 면에서 일종의 밀실 드라마였다. 고립된 산중 별장의 거실이라는 공간 배경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규모가 작은 사랑채 극장에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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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나비 뮤지컬 ‘살.그.시’ |
밀실형 작품은 치밀하게 긴장감을 높여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단점도 있다. 밀실이라는 설정 자체가 인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니 작은 허점이나 실수만 있어도 극의 긴장은 깨진다. 일촉즉발(touch-and-go) 상황에서 극을 끌고가는 셈이다. 빅픽처스테이지는 이 쉽지 않은 무대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더구나 이들이 참여해 공연 중인 이 행사는 ‘2021 부산신진예술페스티벌’이다. 신진들이란 뜻이다.
■ 공공 극장의 또 다른 힘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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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현대무용 ‘적정온도’ |
공연예술 페스티벌을, 이렇게 어려운 때에, 공공 극장이 개최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부산으로 무대를 좁혀 살펴보자. 코로나19 팬데믹은 지역사회 곳곳의 기성 시스템과 현장을 강력히 할퀴었는데 공연예술 시장 또한 그 와중에 파괴됐다. ‘시장’이라는 표현이 덜 와닿는다면 민간 영역이 크게 타격을 입었다고 해도 되겠다. 지역의 연극 춤 음악 뮤지컬 행위예술 등을 공연예술 요소로 볼 때, 이들 민간 영역의 시장 규모가 원래 작기는 했지만 지역 예술을 떠받치고 가꾸는 일을 톡톡히 해왔다.
관객이 현장으로 와서 작품 또는 예술가와 직접 교감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창조되는데, 이것이 공연예술의 본질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부른 집합 금지와 비대면은 바로 이 ‘직접 만남’이라는 접점을 때려서 부쉈다. 군사용어를 빌리자면, 정밀 타격 수준이다. 민간 영역이 먼저 그리고 더 크게 타격을 받았다. 부산문화회관이 기획한 ‘2021 부산신진예술페스티벌’은 이런 상황에서 공공 극장(부산문화회관)이 민간에 손을 내밀고 판을 펼쳐준 구도를 보여줬다. 공공 극장의 기능·역할을 확장하면서 기꺼이 받아안은 드문 장면이다.
■ 야외공연은 온라인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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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픽처스테이지 연극 ‘코마’ |
‘그래 봤자 페스티벌 한 번 한 것일 뿐이지 않느냐. 상징적 효과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합리적인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선례 또는 상징적 시도가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은 천양지차다. 선례는 다른 영역으로 건너가 또 다른 사례를 낳는 데로 이어질 수 있고, 예술기획에서 상징적 효과는 강력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큰 위기가 닥쳤을 때 부산에서는 공공 극장이 손을 내밀어 민간과 협력한 경험이 있다’는 선례는 결국, 부산문화회관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부산문화회관 측은 “올해는 출연진 70%를 부산 팀, 30%는 서울 등 다른 지역 팀으로 했다. 다른 지역 팀 선정 때 장르 안배에 신경 썼다”고 밝혔다. 관객 기호나 다양성 차원에서 해봄 직한 시도라고 판단한 듯하다. 2019년 1회 때 다른 지역 팀은 없었다고 한다.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그런 가운데 코로나19 악화로 방역이 4단계로 올라가면서 야외광장 공연으로 계획했던 7개 팀(루츠리딤, 킬라몽키즈, FORCE, 서커스 디 랩, 첼로가야금, 써드네이처, 페트라아트랩)이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야외공연을 꼭 보고 싶은 팀이 여럿이었는데, 안타까웠다.
■ 객석 사로 잡은 기량·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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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군댄스 현대무용 ‘갑자기 part 2’ |
그래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최, 부산문화회관 주관으로,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부산신진예술페스티벌에서는 7개 팀의 극장 공연만 펼쳐졌다. 부산 팀은 빅픽처스테이지, 청춘나비, 드렁큰씨어터, 현대무용단 자유, 조군댄스였다. 다른 지역 팀은 타이거 댄스 프로젝트, 극단 시지프였다. 참가 요건은 ‘참가 예술인의 70% 이상이 만 39세 이하인 단체 또는 프로젝트’ 등이다. 이 가운데 부산 5개 팀의 공연을 관람하고 취재했다.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간다. 빅픽처스테이지는 ‘코마’를 어떻게 펼쳤을까? 연극이 끝났을 때, 기립박수를 칠 뻔했다. 배우 세 명이 이렇게 관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고? 신진이라고? 이렇게 개성 있고 치열하고 세밀한데? 대사는 밀도 높고 허황하지 않아 문학성을 느꼈다. 범죄스릴러를 표방하면서도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보편성과 삶의 허무까지 안고 들어오는 데서 강한 공감력을 느꼈다. 기립박수 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 뮤지컬과 좀비물을 만나다
8월 19일 중극장 공연은 청춘나비 극단의 ‘뮤지컬 살. 그. 시’(연출·각색 박용희, 작곡 박동재, 원작 주형준)였다. 12명이 출연한 규모 있는 120분짜리 작품이다. 시대 배경과 공간 설정이 친근해 즐겁게 빠져들었지만, 전반부는 흐름이 좀 복잡하고 정확한 타깃을 향해 꽂히는 맛이 없어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후반부로 가면서 완연히 ‘다른 작품’으로 ‘살. 그. 시’는 점프해버렸다. 독일 축구대표팀에 0 대 2로 뒤진 채 전반전을 끝낸 한국 팀이 후반전에 3 대 2로 경기를 뒤집은 것 같은 힘이었다. ‘부산 소극장에서 이렇게 뚝심 있게 삶의 깊이를 담아내는 뮤지컬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고 있었구나’ 하는 소회가 있었다. 이쯤 되니 이번 신진예술페스티벌 취재는 점점 ‘발견의 시간’으로 변해갔다.
8월 20일 사랑채 극장 공연은 드렁큰씨어터 극단의 ‘최저인간’(작·연출 윤준기)이었다. 좀비 이야기다. 황자미를 비롯한 주연급 배우들이 힘 있게 극을 끌고 갔다. 12명이 출연해 무대를 좀비 천지로 만드는 이 작품에서는 뜻박의 수확을 거뒀다.
■ 현대춤 작품이 보여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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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렁큰씨어터 연극 ‘최저인간’ |
‘최저인간’을 보면서 소극장에 직접 찾아와 연극을 보는 것 특유의, 고유의 맛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이런 거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소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관객·배우·작품 사이에 이뤄지는 독특한 몰입, 감정이입, 혼연일체, 날것의 경험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완벽히 구현되는 기술의 보좌를 받는 영상물을 소비하는 것과는 달랐다. 나도 모르게 작품과 주인공과 좀비를 응원하고 있었다.
8월 21일 오후 5시 현대무용단 자유의 ‘적정온도’(안무 이언주 이혜리)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 8월 22일 같은 시각 중극장에서 조군댄스의 현대무용 작품 ‘갑자기 part 2’(안무 연출 조현배)가 공연됐다. 현대무용을 보는 재미에 자유로움이 있다. 안무자는 자기 내러티브(이야기)를 갖고 작품을 짰을 텐데, 객석에 앉아(특히 팸플릿에서 연출·안무 의도를 미리 안 읽었다면) 그 이야기를 알아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안무의도는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춤 공연 소감은 ‘나는 이렇게 봤다’면 충분하다. 정답은 없다.
그런 점에서 ‘적정온도’는 주제를 구현하는 능숙함과 몸의 힘을, ‘갑자기 part 2’는 안주할 줄 모르고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을 찾아 헤매는 강한 에너지를 발휘한 매우 힘 있는 작품이었다.
부산문화회관은 강력한 ‘관객 네트워크’와 자원을 가진 공공 극장이다. 신진예술페스티벌 형태의 기획은 그런 자산을 바탕으로 부산 예술인이 시민과 만날 기회를 줬다. 이 페스티벌을 취재한 결과, 이 어려운 시국에도 부산 젊은 예술인들이 눈을 형형하게 뜨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번에 만난 희망 두 가지이다.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