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서부국과 함께하는 명작 고전 산책 <22> 일리아스·오디세이아-호메로스 (기원전 8세기께)

그리스·트로이 영웅들의 복수와 화해… 인간애 꽃피운 서사시

  • 서부국 기자 book@kookje.co.kr
  •  |   입력 : 2021-07-08 19:37:13
  •  |   본지 1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일리아스’ 전쟁 막판 49일 기록
- 아들 시신 찾으려 무릎 꿇은 왕
- 눈물 흘리며 허락한 아킬레우스
- 전쟁은 가장 어리석은 짓 교훈

-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 귀향담
- 온갖 시련 끝 가족과 극적 재회
- 최고 미인神 선발전 등 흥미진진
- 인간 희로애락 고대·현대 흡사

잘 읽히지 않는 고전 중 하나지만, 귀에 익숙한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트로이(Troy). 팝송 좋아하는 5060세대라면 네덜란드 여성 3인조 보컬그룹 루브가 불렀던 ‘트로이 목마’가 떠오른다. 금발을 휘날리며 칼을 휘두르는 브래드 피트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2004년 국내 개봉한 워너브러더스 영화 ‘트로이’에서 그는 아킬레우스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 그가 주연이었듯 이 고전에서 아킬레우스는 최고 영웅. 컴퓨터 정상 프로그램을 위장한 악성 바이러스에 ‘트로이 목마’란 이름이 붙었다. 적절한 작명이다. 오디세우스가 고안한 이 위장 목마 때문에 트로이가 함락됐다고 이 고전은 전하니까. 그 속에서 쏟아져나온 건 바이러스 아닌 그리스군이었지만 말이다.
   
그리스군 최고 용장인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 맹장 헥토르를 죽인 뒤 발가벗겨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능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화가 프란츠 마슈(1861~1942) 작.
“노래하라 노여움을, 시의 여신이여.” 일리아스 첫 문장. 노여워하는 인물은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이다. 적진을 코앞에 두고 그들이 벌이는 갈등이 서두에 놓였다. 곧 청동 갑옷이 덜거덕대는 소음, 전차가 질주할 때 수레바퀴에서 나는 마찰음이 시모에이스강과 크산토스강 사이 평원에 가득 울려 퍼진다. 물푸레나무 자루에 박힌 청동 창이 적군 머리통을 꿰뚫자 뇌수가 흙먼지 속으로 흩어진다. 묵직한 청동 칼이 상대 투구를 내리치자 푸른 불꽃이 인다.

인간과 인간, 신과 인간, 신과 신이 싸우고 화해하는 얘기인 이 고전은 기원전 8세기 중·후반께 쓰였다. 일리아스(일리아드)는 ‘일리오스 이야기’란 뜻. 현재 터키를 옛날엔 일리오스라 불렀다. 오디세이아(오디세이)는 일리아스 2탄으로 ‘오디세우스(율리시스)의 노래’. ‘일리아스’에 등장했던 그리스 영웅 중 한 명인 오디세우스(율리시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트로이전쟁이 끝난 뒤 곧장 고향 이타케로 못 갔다. 10년간 방랑하며 여러 모험을 겪는다. 귀향 후 가문을 되찾는 과정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일리아스’(24권 1만5693행) ‘오디세이아’(24권 1만2110행)는 서사시. 서구 문학상 최초이자 가장 길다. 그리스어 알파벳 24자를 첫 자로 사용하는 권별법(券別法)에 따라 책을 썼다. 10년간 벌어진 트로이전쟁 중 일부만 다뤘다. ‘일리아스’는 트로이가 함락되기 직전 49일간이다. ‘오디세이아’는 귀향 전 41일간 모험담. 호메로스(호머)는 가장 급박한 시기를 잡아채 서사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트로이 얘기는 유물 발굴을 통해 일부가 사실(史實)로 확인됐다. 관련 유적을 1870년 하인리히 슐리만이 처음으로 찾아냈다.
   
터키 북동구 쪽인 헬레스폰트해협 히사틀리크 구릉에서 발견된 트로이 성곽 유적.
저자 호메로스는 실존 여부조차 불명하다. 기원전 800~700년 활동했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그가 후속작 ‘오디세이아’를 저술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두 고전을 견줘보면 각각 쓴 단어나 어투가 자못 다르다. 작품 간 50~100년 시대 격차도 영향을 줬다. 이런저런 흠집에도 걸작. 입·기억으로 명맥을 어렵사리 잇던 그리스신화·전설을 문자로 정착시켜 영원한 인류 자산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리아스’는 전쟁이야말로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어리석은 짓이라는 값진 교훈을 전한다. 생사 앞에 선 작은 인간, 신들에게 꼭두각시다. 그런 인간이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여러 장면이 가슴을 데운다. 호메로스는 삶과 죽음을 통찰한 대시인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죽음을 인간 한계가 아닌, 신은 못 누리는 고상한 덕목으로 보았다. 아귀인 양 싸우기만 하는 인간, 남긴 게 무엇일까. ‘일리아스’ 마지막 대목으로 가보자.

바야흐로 전쟁은 막바지. 헥토르는 트로이군 총대장이자 프리아모스 왕의 맏아들이다. 그리스군 용장 아킬레우스는 벗 파트로클로스를 무척 아꼈다. 그런 그를 헥토르가 처참하게 죽인다. 이를 갈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여 복수를 이룬 후 나체 시신을 끌고 다니며 욕보인다. 늙은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은 이를 보고 통곡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신의 도움을 받아 적진을 찾았다. 아킬레우스를 만난 그는 아들 시신을 돌려 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두 사람, 부정과 우정은 그 슬픔을 이해한다. 두 적장이 서로 붙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일리아스’ 하이라이트다. 고결한 성품을 찬양했던 호메로스는 그걸 아킬레우스에게 심어줬다. 아들 시신을 넘겨받아 돌아온 프리아모스 왕은 장례를 치른다. ‘일리아스’ 마지막 장면이다. 방패와 창이 부딪치며 내는 무시무시한 쇳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외눈박이 거인 키클로페스를 눈멀게 한 뒤 배를 타고 탈출하자 거인이 쫓아와 바위를 던지고 있다. 스위스 화가 아놀드 뵈클린(1827~1901) 작.
“그 용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소서, 뮤즈 여신이여.” ‘오디세이아’ 서두다. 용사란 트로이군을 쩔쩔매게 했던 ‘꾀돌이’ 오디세우스. 늑대 여우 돼지를 합한 듯한 이 용사는 이제 무사 귀향만을 갈구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일 뿐. 호메로스는 ‘참을성 많은 오디세우스’란 표현을 자주 쓰면서 그 앞에 열린 고생길과 반전을 예고한다.

전작 ‘일리아스’에서 못 한 여러 얘기가 ‘오디세이아’에서 하나씩 밝혀진다. 오디세우스 진술이나 회고, 음유 시인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서다. 오디세우스가 10년간 집에 가지도 못한 건 그가 트로이 출항 때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아 노여움을 샀기 때문. 그는 식인 외눈박이 거인 키클로페스에게 잡힌다. 거인 눈을 멀게 해 겨우 탈출했는데 하필 키클로페스 아버지가 포세이돈. 오디세우스 시련은 가중된다.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히고 재산을 축내 온 구혼자들을 오디세우스, 아들 텔레마코스, 두 하인이 합심해 도륙한다. 당한 가문 쪽에서 무기를 드니 다시 피바람이 불기 직전. 호메로스는 이런 복수의 고리를 끊는다. 택한 카드는 아테네 여신이 중재한 화해다. ‘일리아스’ 마지막에서 타올랐던 대주제, 꺼뜨릴 수 없는 인간애 불꽃을 다시 피워올려 보이며 막을 내린다.

독자는 고대 그리스를 여행한다. 그때는 암소나 양을 잡아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의례가 상세히 나온다. 살점이 붙은 다리뼈를 그을려 낸 냄새를 신을 향해 날려 보내고 고깃살을 나눠 먹었다. 인간이 신에게 대드는 장면이 볼거리다. 올림포스 열두 신은 인간과 얽힌 인연이 많아 참전이 불가피하다. ‘최고 미인 여신 선발전’이 전초전. 여기서 아프로디테-헤라·아테네로 편이 갈린다. 아프로디테가 미모 경쟁에서 아테네와 헤라를 이겼다. 아킬레우스 어머니인 바다 여신 테티스는 그리스군 편이다. 트로이인 제관을 둔 아폴론은 그리스군을 괴롭힌다. 아폴론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을 아킬레우스 급소인 발뒤꿈치에 꽂히게 해 그를 죽인다.

후반에서 드러나는 놀라운 사실. 제우스가 이 모든 걸 기획했다! 트로이 패망을 정해놓고 전쟁을 몰고 갔다. 제우스는 테티스를 좋아했지만, 둘 사이에 난 아들이 자신을 죽인다는 신탁을 피하려 그녀와 인간 펠리우스를 결혼시킨다. 그 혼례에 초대받지 못해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뿔이 났다. ‘최고 미모 여신에게’라고 쓴 황금사과를 식장에 던지자 앞에서 말한 세 여신이 걸려든다. 트로이전쟁 유발범 파리스는 밀약한 대로 아프로디테를 지목하고 그 대가로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제우스 딸)를 유혹해 데려간다. 오쟁이 진 메넬라오스 왕은 형 아가멤논을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에 앉히고 10만 명 1000척으로 출정한다. 트로이전쟁이 시작됐다.

   
인간이 희로애락을 겪어내야 하는 운명은 고대나 현대나 변치 않았다. 두 고전 속 주인공을 만나보면 그리 낯설지 않다. 온갖 풍파를 헤치고 귀향하는 오디세우스가 그렇다. 오늘도 수많은 남녀 오디세우스가 힘든 하루를 끝내고 고단한 몸을 누일 곳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서평가·세상관찰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1> 배진규의 사위곡
  2. 2부산 동구, 지게골~부산진역 도시철 경제성 용역 추진
  3. 3부산신항 노사 재격돌…서컨부두 개장 또 미뤄지나
  4. 4윤석열 해양특별시, 홍준표 금감원 이전…야당 주자 ‘부산 선물’ 보따리
  5. 5안철수 출마 임박? 초박빙 대선판 ‘제3지대’ 변수 예고
  6. 6선사는 초호황…컨 수리업은 고사 위기
  7. 7부산~여수 신규 항로 두 달만에 존폐 기로
  8. 8부산 해동용궁사, 조계종 사찰 됐다
  9. 9창원시 공무원, 페트병으로 만든 등산복 입고 런웨이에 서다
  10. 10국힘 지지율 41.2% 최고치…민주 29.5%
  1. 1윤석열 해양특별시, 홍준표 금감원 이전…야당 주자 ‘부산 선물’ 보따리
  2. 2안철수 출마 임박? 초박빙 대선판 ‘제3지대’ 변수 예고
  3. 3국힘 지지율 41.2% 최고치…민주 29.5%
  4. 4불심 잡은 윤석열, 당심 다진 홍준표…야당 주자들 ‘PK 상륙작전’
  5. 5[김경국의 정치 톺아보기] 원팀에 균열 내는 경선 후유증…與는 진행형, 野는 예고형
  6. 6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김오수 “윤석열도 수사하겠다”
  7. 7[국감 현장] 야권 “대장동 그분은 인허가자” 이재명 “돈 받은 건 국힘”
  8. 8부산~괌·사이판 하늘길 다시 열린다
  9. 9김도읍은 때리고 박형준은 막고…시장선거 전초전 된 부산시 국감
  10. 10부산 공무원 휴직 급증, 보건직 279명 ‘태부족’…코로나 업무과중 악순환
  1. 1부산신항 노사 재격돌…서컨부두 개장 또 미뤄지나
  2. 2선사는 초호황…컨 수리업은 고사 위기
  3. 3부산~여수 신규 항로 두 달만에 존폐 기로
  4. 430개국 1500개 부스…세계 5대 조선해양대전 위상 과시
  5. 5영화·스포츠·숙박 등 소비쿠폰, ‘위드코로나’ 맞춰 내달 풀린다
  6. 6[브리핑] 형지, 인천 송도 패션센터 준공
  7. 7산업계, 부산엑스포 유치 해외 네트워크 풀가동
  8. 8[브리핑] 부산도시가스株 공개매수 마감
  9. 9기습 한파에 편의점 감기약 불티
  10. 10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40%로 상향
  1. 1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1> 배진규의 사위곡
  2. 2부산 동구, 지게골~부산진역 도시철 경제성 용역 추진
  3. 3창원시 공무원, 페트병으로 만든 등산복 입고 런웨이에 서다
  4. 4양산 물금 가촌리 아파트, 4수 끝 승인 가시화
  5. 5동네지킴이 ‘안전보안관제’ 유명무실
  6. 6본지 제작 부마항쟁 다큐, 부울경 근현대사 교재로 쓴다
  7. 7동·서·영도구 등 정부 첫 인구감소지역 지정
  8. 8코로나 신규 1050명…103일 만에 최저치
  9. 9오늘의 날씨- 2021년 10월 19일
  10. 109월 부산 하늘 맑았던 이유…초미세먼지 농도 역대 최저
  1. 1아이파크, 개성고 이태민 품었다
  2. 2BNK 썸 박정은 감독 “우승하면 팬과 캠핑 떠나겠다”
  3. 3“부산시청 빙상 실업팀 창단해달라”
  4. 4손흥민, 케인과 통산 35골 합작…EPL 최고 기록에 한 골 차
  5. 5안방서 대패한 롯데…멀어지는 가을야구
  6. 6정우영, 새 홈구장 역사적 첫 골…프라이부르크 8경기 무패 행진
  7. 7물 건너간 아이파크 K리그1 승격
  8. 8부산 체육계 "해수부 북항재개발 사업변경안 철회하라"
  9. 9한국 검술 '한무도' 전통탈 투구 쓰고 비무대회 개최
  10. 10MLB 보스턴 레드삭스, PS 첫 2이닝 연속 만루포…휴스턴과 ALCS 승부 원점
이병주 탄생 100주년 그를 회고한다
임규찬 도서출판 함향 대표·작가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임성구 시인의 시조집 ‘복사꽃 먹는 오후’
리뷰 [전체보기]
옥주현·정선아 7년 만의 만남…‘초록매직’ 부산을 홀리다
새 책 [전체보기]
세상 끝에서 춤추다(어슐러 K.르 귄 지음) 外
치카를 찾아서(미치 앨봄 지음·박산호 옮김)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성도들 시련의 시대 대처법
휴대전화·TV가 미적분 덕?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겨울 갈대 /배종관
가을맛 /임종찬
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전체보기]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기적’의 배우 박정민
‘영화의 거리’ 김민근 감독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아이돌 티 벗었네, 가을 스크린의 네 여우
새로운 OTT 공룡 온다…디즈니 發 지각변동 예고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피해자 서사의 시대…‘오징어 게임’
무협 영화의 하이브리드
BIFF 리뷰 [전체보기]
‘와즈다’
뭐 볼까…오늘의 TV- [전체보기]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10월 19일
뭐 볼까…오늘의 TV- 2021년 10월 18일
방호정의 컬쳐 쇼크 & 조크 [전체보기]
발라드가 ‘불멸’인 이유
한국의 코미디는 어디로 가는가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1년 10월 19일(음력 9월 14일)
오늘의 운세- 2021년 10월 18일(음력 9월 13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 2021년 10월 8일
오늘의 BIFF - 2021년 10월 7일
요즘 뭐 봐요- [전체보기]
요즘 뭐 봐요- 탈레반 탄압에 가족 먹여살리려 남장…아프간 여성의 현실
요즘 뭐 봐요- 9·11 비극의 서막은 이데올로기 전쟁
장은진의 판타스틱 TV [전체보기]
연재를 마치며
우리 인생의 드라마 - 에필로그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모스크바에서 자전거 타고 가는 모습을 읊은 김득련
단종 복위 도모하다 굴복하지 않고 죽은 유응부
  • 맘 편한 부산
  • 2021조선해양국제컨퍼런스
  • 제10회 국제신문 골프대회
  • 제23회부산마라톤대회
  • 극지논술공모전
  • 조선해양사진 및 어린이 그림공모전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