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1990년대 말 IMF 사태를 겪으며 그 고단했던 체험을 투영하는 방편으로 드라마에서 어두운 과거들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기억하는가. 2000년대, 신문 지면을 뒤덮었던 불편했던 사건과 진실들을. 상류층의 병역 비리, 대기업 연예인 X파일 유출, 대입 부정과 시험지 빼돌리기 등 굵직한 사건이 지면에 오르내렸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정보 인증이 허술했던 시절, 대리시험 부정 입학과 음주사고 운전자 바꿔치기를 소재로 했던 드라마가 있다.
MBC의 ‘진실’. 최지우 박선영 손지창 류시원 주연. 이 시기 드라마의 특징은 주인공 네 명의 명확한 선악 캐릭터와 애정 구도가 얽혀있다는 것이다. ‘겨울연가’ ‘청춘의 덫’ ‘이브의 모든 것’ 등 당시 흥행 드라마에는 엇갈리는 네 명의 애정, 대립하는 두 여주인공의 4 : 2 전략이 두드러졌다. 최지우는 친오빠 폭행 합의를 위해 주인집 딸 대리시험을 쳐주는 ‘캔디’였고 부잣집 아들 류시원은 그 옆을 지킨다. 한국 드라마를 젠더 관점에서 보면 여주인공은 꽤 오래 오빠 아버지 계부 등 남자의 사건사고를 해결하는 희생의 캐릭터로 등장했고. 사랑에서도 ‘시크릿가든’(2010)의 길라임 같은 자립형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진실’이 진부한 선악구도에서 그나마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데는 백마 탄 왕자 전문이던 손지창이 악녀 박선영을 압박하고 최지우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욕먹고 끝나는 나쁜 놈을 넘어 동정심을 유발하고 몰입하게 할 때 새로운 악역, 요즘 말로 빌런이 탄생한다. ‘진실’의 충격적 결말은 경찰에 쫓기던 손지창과 박선영이 차를 몰고 동반 자살하는 장면이었다. 절대악의 끝판을 보여준 둘의 종말이 후련하기보다 씁쓸했던 건 그들의 ‘결핍’ 때문이었다. 조커가 빌런으로 변해가는 과정에는 어릴 적 학대와 방치, 무례함 같은 결핍이 있듯이 드라마 속 악역은 그렇게 서로 닮아 있었다. 이들을 괴물로 만든 경쟁과 차별, 계급과 편 가르기에 앞장섰던 우리 사회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한 세기말 드라마였다.
20년 지난 오늘도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에 열광하며 역사를 되풀이하는 건 아닌지. 샴쌍둥이처럼 아픈 캐릭터와 정체성을 가졌던 기억 속 드라마 ‘진실’이 오늘 문득 떠오른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