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MBC가 드라마 왕국의 자리를 굳건히 하게 된 배경에는 90년대 초반에 제작된 드라마들의 잇따른 성공이 있다. 이 시기 MBC는 여류작가들과 연출 거장들의 호흡이 명작을 탄생시켰는데 사극 장인 이병훈 PD,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현대극 전문 황인뢰 PD, 그리고 ‘엄마의 바다’ 연출자인 박철 PD와 김정수 작가가 그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다. 박철 PD는 70년대 후반 MBC에 입사해 연속극과 가족드라마로 경력을 쌓다가 ‘겨울꽃’(1986) ‘사랑과 진실’(1985)로 주목받았고 1991년 ‘사랑이 뭐길래’가 대히트를 치면서 스타 PD 반열에 올랐다. 김정수 작가는 국민 드라마 ‘전원일기’를 집필했던 힘으로 90년대 한국 사회를 반영한 따뜻하고도 슬픈 가족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엄마의 바다’는 1993년 작품이지만. 이미 곳곳에서 몇 년 뒤 한국 사회가 겪게 될 크나큰 좌절과 IMF 구제금융 사태의 운명이 감지된다. 그래서인지 고소영이 연기한 둘째 딸 대학생 경서를 보며 내 이야기 같아 동질감을 느꼈고 불안불안하기도 했다. 발랄하고 당차지만 철이 없던 경서와 갑작스런 가족의 불행에 엄마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 큰딸 고현정의 모습은 깊은 공감을 가져왔다. 강하고 억센 전형적인 우리네 엄마 대신 나약하고 여린 엄마로 그려진 김혜자의 연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홀로 앉아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메마른 얼굴로 듣던 엄마.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그녀에게 여자로서 행복했던 순간은 정말 반나절 나팔꽃처럼 짧았을까. 강한 여인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종이 인형처럼 팔랑이던 여인이 자식들과 함께 거센 파도를 맞으며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그 시절 엄마의 성장 드라마, ‘엄마의 바다’. 그렇게 엄마는 자신만의 바다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 드라마를 다시 찬찬히 돌려보니,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 정서와는 다른 모두 착하고 선한 인물들이다. 결국, 영서를 좋아한 독고영재 빼고는 모두 해피엔딩을 맞지만 그때는 그것이 모두의 바람이었을 테니…. ‘엄마의 바다’에 이어 1997년 김정수 작가가 쓴 ‘그대, 그리고 나’ 역시 영덕의 강구항을 배경으로 펼쳐진 ‘내 인생의 드라마’가 된다.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