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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33> 화개동천 야생녹차 제다기

산비탈 뿌리 내린 야생 화개차…덖음질 정성 품어 향기 그윽하구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5-04 19:30:40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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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자락 골 깊은 땅서 자라
- 평균 6m 뿌리… 생명력 강해
- 사람 손길 거의 닿지 않아
- 대자연 풍미 茶 속에 오롯이

- 아침 이슬 맺힌 찻잎 최상품
- 따는 시기 이를수록 맛 부드러워
- 수확한 잎 잡티·이물질 제거 후
- 수차례 덖고 비빈 뒤 밤새 건조
- 맛내기 거치면 ‘햇차’ 완성돼

곡우(穀雨)가 며칠 남지 않은 날. 하동 화개동천(花開洞天)에서 야생차밭을 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햇차 딸 때쯤 되지 않았어요?” “그러지 않아도 며칠 전 산에 다녀왔는데 따기 좋을 만큼 새잎이 났습디다. 시간 되면 햇차나 조금 만들어 가시지요.”
하동 화개의 목압마을 뒷산에서 야생녹차를 따고 있는 필자.
지리산 자락의 목압마을. 앞으로 화개동천의 맑은 물이 흐르고, 뒤로는 골 깊은 산악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일명 ‘화개차’라고 불리는 이곳 녹차는 다른 지역의 녹차와는 달리 차 맛이 은은하고도 향이 깊다.

이는 화개동천의 야생 녹차나무가 거칠고 척박한 지역 산비탈 등에 서식하기에 뿌리가 깊고 생명력이 강해서다. 이 지역 차나무는 원뿌리가 평균 5~6m까지 깊게 뿌리 내린다. 그 때문에 산의 지력을 최대한 흡수하기에 차 맛이 맑고 깊다. 온갖 고난을 딛고 이겨낸 삶의 온화함이라고나 할까. 차향이 그윽하고 정갈하다는 것이다.

원래 녹차는 차나무의 어린잎을 따서 덖거나 찐 후 잘 말려서 두고두고 우려먹는 차 종류 중 하나이다. 볶거나 삶지 않기에 잎의 원성분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찻잎색이나 우려낸 찻물색이 녹색을 머금고 있어 녹차라고 불린다. 차의 종류는 제조법에 따라 녹차 이외에도 찻잎을 발효시켜 음미하는 ‘발효차’와 중간 쯤 발효시킨 ‘반 발효차’로 나눌 수가 있다.

■야생녹차 찾아 떠난 하동 화개

갓 수확한 야생 찻잎이 푸릇푸릇하다.
지인과 함께 아침 일찍 목압산을 오른다. 지인은 자신의 거처 뒷산을 마을 이름을 따 목압산으로 부른다 했다. 낮은 산임에도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거칠다. 10여 분을 오르자 야생녹차밭이 보인다. 지인의 말대로 방치하다시피 한 녹차나무는 자연 속에서 저 나름의 환경에 따라 몸을 펼치고 가지를 뻗고 있었다. 비탈을 따라 찻잎 따는 데도 힘이 들고 그 수확량도 적다. 그런데도 지인이 야생녹차를 고집하는 이유는, 차나무를 자연 그대로 두고 사람 손길을 최소화하였기에 대자연의 풍미가 차에 오롯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뭇가지 위로 연둣빛 감도는 어린잎이 소복하게 달려있다. 마치 참새 혓바닥처럼 앙증스러우면서도 보드랍다. 새순에 달린 여린 잎들을 따려니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를 지켜본 지인이 찻잎 따는 법을 알려준다.

“채엽(採葉)을 할 때는 새순과 새순에 달린 잎만을 따야 합니다. 새순은 깃발같이 생겼고 새잎은 창처럼 생겼기에 새순 하나에 새잎 두 개를 따는 것을 일기이창(一旗二槍), 새잎이 조금 컸을 때 제일 위의 잎만 따는 것을 일기일창(一旗一槍)이라 부릅니다.”

찻잎을 따는 시간도 까다롭다. 아침에 따는 것이 첫째요, 낮에 따는 것이 둘째요, 비가 오는 날은 따지 않는다. 아침나절 이슬이 맺힌 찻잎이 최상품의 차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원래 녹차는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 부른다. 곡우 전에 딴 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雨前), 곡우에서 입하 전까지 딴 잎으로 만든 차는 세작(細雀), 5월 중순 사이에는 중작(中雀), 그 이후로는 대작(大雀)이라 부른다.

찻잎을 따는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차 맛이 부드럽고 맛있다. 화개 야생녹차는 산세가 깊고 해발이 높아 타지보다 기온이 다소 떨어지기에 찻잎 따는 시기도 늦다. 가장 맛있는 우전차도 곡우에 임박해 제다를 하는 이유다.

■오전 내내 잎 땄는데도 한 봉지

방금 딴 야생 찻잎을 덖고 있다. 섭씨 200도 정도에서 여러 번 덖고 비벼야 차가 완성된다.
오전 내내 채엽을 했는데도 600여 g. 그 정도면 차 한 봉지는 만들 수 있겠다며 지인이 하산을 서두른다. 오늘 중 찻잎을 덖고 밤새 말려야만 다음 날 차를 완성할 수 있기에 그렇다.

참새 혓바닥만 한 새순을 하나하나 뒤적이며 찻잎 속 잡티를 제거하고 이물질을 걸러낸다. 이렇게 수백 수천 개의 새순을 가려내고 나니 눈도 아프고 허리도 찌뿌듯하다. 그사이 지인은 가마솥에 불을 넣고 온도를 조절한다. 덖는 데에는 불 조절이 중요하다. 처음 섭씨 250~270도에서 시작하여 200도 정도로 유지해야 차 색깔이 파릇하니 보기 좋단다. 가마솥에 찻잎을 넣고 덖자마자 차 특유의 향긋함이 서서히 퍼진다. 따닥따닥 생잎 덖는 소리가 좋다.

타지 않도록 계속해서 두 손으로 차를 덖는다. 오래도록 수고로운 덖음질이 계속된다. 덖음질이 게으르면 차가 타거나 골고루 덖어지지 않기에 지인의 손은 쉴 새가 없다. 뜨거운 온도에 오래 노출되는 작업이라 한창 차를 덖을 시기에는 손의 지문이 지워질 정도란다.

그리고 유념. 덖은 찻잎을 식기 전에 맨손으로 비비는 일이다. 찻잎에 상처를 내 특유의 향과 진을 내는 작업. 양이 많을 때는 덕석에 비비는데, 오늘 수확한 햇차는 양이 적어 면포에 대고 유념을 한다.

요즘은 기계로 유념을 하는 곳도 많은데, 기계는 강하게 비벼지기에 맛과 향이 진해 선호하는 사람이 많단다. 그러나 지인은 손으로 직접 비벼야 야생의 녹차 맛이 살아 손수 유념을 한단다.

■6번 덖고 말려야 완성되는 차

직접 딴 찻잎을 손질해서 우려낸 향긋한 우전.
유념을 마무리하고 나면 다시 솥에 넣고 덖는다. 덖고 비비는 작업을 몇 번 거쳐야 하는지 물었다. ‘찻잎 상태’나 ‘수확 전후 날씨’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햇차는 잎이 연하기 때문에 덖는 횟수가 적어도 되고요,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은 덖는 횟수가 많아지게 되지요.” 우리가 덖는 차는 며칠 전 비가 와서 5, 6번 덖어야 하겠단다. 그리고 실제로 6번을 덖었다.

덖은 차는 방에 불을 넣고 한지에 깔아 건조한다. 하룻밤 정도 건조하면 차가 완성된다. 건조 후에는 맛내기 작업 또한 거친다. 약한 불에 두어 시간 살살 뒤적이며 거친 야생의 숨을 순화시키는 것. 맛내기를 안 하면 차 맛이 거칠고 떫은데 맛내기를 하면 부드럽고 은근하면서 깊은 맛을 낸단다.

이렇게 완성한 우전차(雨前茶)는 약 80g 남짓. 600g 정도의 찻잎을 수확하여 이틀의 수고로움 속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처럼 녹차는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이란 품을 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맛을 음미할 수 없는 ‘지난하고도 정갈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인이 조상님께 헌다례(獻茶禮)를 올린다. 첫차를 제다하고 나면 늘 행하는 일이다.

한학자이기도 한 지인이 직접 지은 제문을 읽는다. “복상신축년춘신차선조(伏上辛丑年春新茶先祖)…” 찬찬히 제문을 읽어 내려가는 그의 지극함이 새삼스럽다. 낭랑한 목소리 위로 신춘 햇차의 향이 오래도록 온 방 가득 은은하게 퍼지고 있음이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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