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산정·계정 등 전국 35곳 소개
- “정자와 방 이름에 얽힌 사연 등
- 제대로 된 자료 없어 책 펴냈죠”
- 벼슬 뒤 귀향이야기 등 4부 구성
세상에 부대끼며 사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럴 때면 한적한 곳에 가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이치에 순하게 몸을 내맡긴 채 복잡한 일 다 잊고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번쯤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퇴직을 하고 시골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옛사람들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우리나라 곳곳에는 누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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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홀로 선 자들의 역사’를 낸 역사기행작가 김동완을 경주 남산동에 있는 서출지 이요당에서 만났다. |
김동완 역사기행작가의 ‘홀로 선 자들의 역사’를 펼쳐보았다. 우리 조상들이 이 땅에 남긴 누정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말한다. 퇴계 이황의 안동 고산정을 비롯해 경주 독락당 계정, 담양 면앙정, 거창 요수정, 양양 의상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파주 화석정 등 역사와 이야기를 품은 전국 35곳 누정을 소개한다. 누정에 담긴 사연들을 사진과 함께 보다 보면,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면서 불쑥 그곳으로 가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책이다. 경주에서 김동완 작가를 만났다.
■일상 속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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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선 자들의 역사- 김동완 / 글항아리 |
경주행 시외버스가 봄 햇살 사이로 달리는 동안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깼다. 창밖으로 유명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보였다. 건물이 기와지붕이다. 주유소도 학교건물도 기와지붕이다. 순간적으로 ‘경주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김동완 작가의 차로 갈아타고 달리는 동안에는 도로 오른 쪽은 ‘신라시대 어느 왕…’, 왼쪽도 ‘신라시대 어느 왕’의 역사가 배어있는 유적과 유물 안내를 받았다. 천년고도의 도읍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김동완 작가는 경주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동안 전국의 역사 현장을 찾아다닌 역사기행 전문작가이다. 누정과 경주 남산, ‘삼국유사’ 현장을 찾아다니는 일은 그의 일상이라 할 정도이다. 취재 약속을 한 후에도 필자를 안내할 누정을 서너 곳 먼저 다녀온 후에, ‘서출지’와 ‘이요당’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서출지는 경주 남산동에 있다. 신라 제21대 소지왕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연못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 임적이 현종 5년(1664)에 서출지 옆에 정자 이요당을 짓고 글을 읽으며 경치를 즐겼다.
조선의 이요당은 신라의 서출지에 다리를 내리고 있다. 아쉽게도 연못에는 물이 없었다. 연꽃을 위해 어떤 작업을 하는 듯 보였다. 연꽃이 피면 아름다운 경치가 기막히다는데, 날을 잘 맞춰 다시 와야겠다. 이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ㄱ자형 집이다. “이요당은 책에는 없지만, 누정기행을 다닐 때 가장 먼저 방문했던 곳입니다.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김동완 작가와 함께 서출지 옆을 따라 이요당을 향해 걸었다. 신라의 연못을 바라보면서 조선 선비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해보았다. 닫혀 있는 이요당의 문을 열면 조선 선비 임적이 책을 읽고 있을 것 같았다.
김동완 작가에게 왜 누정을 찾아다녔는지 묻는 건 쓸모없는 질문이었다. “신라유적 옆에서 태어났고, 일상 속에서 문화재를 보며 살았지요. 10여 년 전 부터 정자와 누각을 찾아보고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다가 경북일보에 전국의 누정을 찾아다니는 기행문을 100회 연재했습니다. 책에는 35곳을 실었습니다. 처음에 누정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볼 때 제가 궁금해 하던 내용을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자료가 없더군요. 정명(정자의 이름)에 담긴 의미, 방마다 붙여진 이름의 뜻이 뭔지 알려주는 자료도 드물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관련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요.”
■누정 따라 시대 거슬러 오른다
책은 4부로 구성됐다. ‘돌아오다 歸(귀)’ 벼슬살이를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만년을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 ‘머무는 자의 내면 處(처)’, ‘그리움이 향한 곳 慕(모)’, 그리고 ‘인간이 함께 쉬는 곳 休(휴)’. 4개의 주제로 나누어 35곳의 누정을 가려 뽑아 소개했다. 역사 속 자료에서, 누정을 찾아간 현장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이다.
깎아지른 해안가 절벽, 유유히 흐르는 강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누정이 서있는 공간은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탁 트여 있지만, 일부러 그곳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은둔의 장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주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이들이 지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 중에는 어쩌면 말못할 사연과 때론 억울한 울분의 심정을 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탁 트인 자연을 바라보며 삭이곤 했을 것이다. 그 사연은 이 땅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그저 텅 빈 건물이고, 탁월한 자연 경관의 운치를 더해주는 유적이고, 오랜 세월의 풍상이 스며있는 옛사람들의 흔적일 뿐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역사와 인물을 길어 올려 책으로 묶어놓고 보니, 그 옛집들이 품은 웅숭깊은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역사기행이라는 거창한 이름 없이 불쑥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 사진으로 보는 누정은 마치 처음부터 산과 물과 함께 존재했던 공간처럼 자연풍경 속에 녹아 있었다. 세월이 오래돼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인지, 처음 누정을 지을 때부터 조화를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각 누정에 얽힌 이야기를 읽는 동안 역사 공부도 저절로 된다.
누정은 어떤 의미일까. 김동완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선비들은 누정은 물론 주변의 이름 없는 산과 물, 바위에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편액과 산 들 바위에 붙여진 이름은 ‘고문진보(古文眞寶)’에 다름 아니다. 누정이라는 끈을 잡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선시대 선비의 삶이 낡은 영상처럼 펼쳐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다. 글을 쓰는 동안 누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