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차별·불운과 맞선 독서광
‘세상 고생에 이력이 난 사람’. ‘돈키호테’ 전편 1부 6장(기사 소설 화형식)에서 세르반테스(사진)는 자신을 이렇게 평했다. 남이 보기에도 허풍이 아니다.
개종한 유대계 혈통으로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에서 태어난 그는 줄곧 사회 차별과 냉대를 견디며 불운과도 싸웠다. 유년 시절 쪼들렸고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21세 때인 1568년 수필집에 시 4편을 발표해 문학에 발을 내디뎠다. 가르실라소 시에 빠졌고, 독서광이었다. 돈키호테처럼 기사 소설에 빠졌다. 결투법을 어겨 추방되기도 했고, 추기경 수행원으로 일하며 르네상스 문화를 익혔다.
24세 때 레판토 해전에 뛰어들었다. 열병에 걸렸는데도 전투하다가 다친 왼팔을 평생 자유롭게 쓸 수 없었다. ‘레판토 외팔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이 전력을 자랑스러워했다. 군인을 향한 애정과 자부심은 전·속편 곳곳에서 드러난다. 28세 저자는 터키 해적에 동생과 함께 잡혀 5년간 노예로 고생하다가 수도사 도움으로 몸값을 치르고 풀려났다. 이때 그는 동생을 먼저 풀어주고 자신은 4번 탈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붙잡혔다. 인간 존엄성을 알게 해준 값진 체험이었고 소설 쓰는 자양분이 됐다. 극작 여러 편을 집필했는데 두 편만 전한다.
41세 때 밀 징발 문제로 파문당했다. 4년 뒤 비슷한 사유로 감옥에 갇혔다. 5년 후에는 징수한 세금을 예치한 은행이 파산한 책임을 지고 또 투옥됐다. 58세 땐 자택 앞에서 유명인사가 죽는 바람에 누나 딸과 함께 감옥에 갔다. 억울하게 3번 옥살이를 했다.
말년에야 ‘돈키호테’가 준 명성을 다소 누렸다.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다. 속편이 나오고 1년 뒤인 1616년, 69세 세르반테스는 질병으로 죽기 며칠 전 독자에게 글로써 작별했다. “안녕 은혜여, 안녕 우아함이여, 안녕 나의 즐거운 친구들이여! 나는 죽어가니 곧 다른 세상에서 다시 기쁘게 만나기를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