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1년 한국 최초 온천 테마곡
- 이경설 ‘온양온천 노래’ 나왔지만
- 일제강점기 말엔 한동안 맥 끊겨
- 이후 나온 곡들은 상투적인 데다
- 예술성 없고 엔카 번안곡 의심도
바깥기온이 선선해지면 따끈한 온천탕이 저절로 그리워진다. 오랜 역사가 서려있는 온천장의 물은 일반목욕탕 물과 성격과 근본부터 사뭇 다르다.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놓여나 온천탕에 온몸을 담그면 소중한 이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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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천 명소가 있는 부산에 관련 노래가 없어 아쉽다. 부산 동래구 온천장에 있는 조형물. 국제신문DB |
온천은 화강암 깊은 단층이나 깨진 틈에서 땅위로 솟아나는 뜨거운 물이다. 한국에서 온천수의 요구온도는 섭씨 25도이다. 이것은 일본도 동일하지만 일본은 화산활동이 많은 지질이라 훨씬 뜨거운 물이 용출되는 경우가 많다. 한반도의 온천은 비화산성으로 화강암류를 기반으로 한다. 현재 등록된 한국의 온천은 109개 내외라고 한다. 분단 이전엔 북한 전역에 양질의 온천이 많았다. 최고의 온천지역은 황해도인데 배천 연안 송화 옹진 달천 삼천 신천의 온천은 평균 수온이 70도가 훨씬 넘는다. 통일이 되면 이런 온천을 가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남한의 유명온천으로는 충청남도의 온양 유성 도고가 손꼽히고, 부산 경남의 동래 해운대 부곡을 으뜸으로 헤아린다. 온천장마다 붙여놓은 기록을 읽어보면 온천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들이 찾는 명소였다. 피부병과 각종 질병의 치료에 보조적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일제침탈기로 접어들어 한국의 온천은 거의 일본인 주도하에 개발되었다. 주변 숙박시설이나 도로망 따위도 온천의 소재지 중심으로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온천 관련 노래 많은 일본 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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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에 제작된 동래온천 기념 엽서. 이동순 제공 |
일본은 국토전체에서 온천수가 용출하는 지역이 많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유명온천도 한둘이 아니다. 벳부의 지옥온천에는 원숭이조차 온천탕에 들어가 앉아있는 진기한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벳부역 부근에는 1879년에 문을 연 다케가와라 온천이 있다. 고풍스런 건물로 지은 이곳은 서민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공공온천인데 요금이 항상 100엔이다. 어느 산골지역으로 들어가도 하얀 김이 설설 뿜어져 나오는 유서 깊은 온천탕을 쉽게 발견한다.
이 때문에 일본 엔카에는 온천 관련 노래가 꽤 많은 편이다. 가장 대표적 온천 테마 엔카를 하나만 들자면 오미 토시로(近江俊郞)가 부른 ‘유노마치 엘레지’(湯の町エレジ, 1948)’가 있다. 저명한 작곡가 고가 마사오(古賀政男)가 만든 이 노래는 발표된 이후 ‘이즈(伊豆)의 산마다 달빛 희미해/ 불빛에 목메는 온천의 연기/ 아 첫사랑의 그대를 찾아 오늘밤도 또 기타를 켜는 나그네 새’란 서정적 가사로 많은 가요팬들의 심금을 애절하게 울린다. 같은 제목의 영화주제가로 만들어진 이 노래엔 이즈 지역의 온천과 달빛, 온천탕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 로맨스 사연, 기타 연주 따위의 소재가 배합되어 발표 이후 모두가 즐겨 애창하는 절창이 되었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온천 관련 노래로 발표된 최초의 작품은 1931년에 나온 ‘온양온천 노래’(이경설)이다. 이 노래는 이듬해에도 전수린 이경설 혼성으로 부른 음반이 시에론레코드에서 나왔다. 1937년 동래권번 기생 서영신이 부른 ‘동래아리랑’이 발표되었는데, 이 노래 2절 가사에서 ‘동래 온천 진달래는 눈 속에도 피건마는’이란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대중가요가 아니라 정선아라리 풍의 신민요에 가깝다. 1938년에 기생 장학선이 부른 ‘온정가’란 음반이 발표되었는데 이 노래는 온천탕에 몸을 담그고 앉아서 뜨거움을 참기 위해 부르는 숫자노래의 일종이다. 1에서 10까지 헤아리는 횟수를 다섯 차례 반복하는 흥미로운 방식이다.
■온천장 품은 부산엔 왜 없나
이후 온천 테마 노래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워낙 험난한 일제말을 배경으로 한가한 온천 노래 따위가 출현할 심리적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6.25전쟁 후인 1955년 ‘온천엘레지’(백영호 작사· 작곡, 변임복 노래)가 나왔지만 가사의 전개나 곡조에서 일본 엔카의 번안곡 혐의가 짙다. 두 해 뒤인 1957년 ‘부산행진곡’ 3절 가사에서 부산 명소 목록을 들며 그 하나로 ‘봄바람 동래온천’이란 부분이 짧게 등장하고 있지만 이미지 환기엔 미흡하다. 이듬해인 1958년에 ‘온천의 하룻밤’(천봉 작사·백영호 작곡·신해성 노래)이 발표되었다.
바람에 한잎 두잎 꽃잎 지는 온천의 밤아/ 기타를 퉁기면서 부르는 추억의 노래/ 사나이 가슴을 울리고 떠난 사람/ 그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느냐(‘온천의 하룻밤’ 1절)
이 노래 역시 가사전개나 구성방식이 밋밋하고 별다른 개성이나 특징을 느낄 수 없다. 제목에 온천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무대배경이 온천인지 아닌지 뚜렷한 정서적 확신을 살려내지 못했다. 1966년에 발표된 이미자의 노래 ‘온천장 소야곡’(천지엽 작사, 고봉산 작곡)도 위의 작품과 동일하다. 1967년 노래 ‘온천장 일야’(고봉산 작곡) 가사엔 뜬금없이 ‘온천여관 208호실’이 등장한다. 가사전개의 인과관계와 필연성이 전혀 살아나지 않고 대중적 예술성도 빈약하다. 1968년 노래 ‘애수의 온천장’(정월산 작사, 허경구 작곡, 윤은섭 노래)도 마찬가지다. ‘달뜨는 금강공원’과 ‘애수의 온천장’이 등장하지만 너무 의례적 상투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모든 노래들이 대중들에게 전혀 어필되지 못했다. 이후 40년 넘도록 제대로 된 온천 테마 노래는 만날 수 없었다. 2009년 ‘신동래아리랑’(김희은 작사)이 발표되었는데, 전체 7절 구성으로 된 이 노래의 4절에서 ‘신라왕도 반했다던 동래온천 노천족탕 발 담그니 신선놀음일세’가 삽입되어 온천을 동래의 여러 명소 중 하나로 단순 환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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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전국에서 그야말로 유서 깊은 명소 중의 하나인 동래온천 해운대온천 등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온천 테마 노래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비유하기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일본 엔카 ‘유노마치 엘레지’가 왜 히트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사연 및 경과를 주의 깊게 연구하고 성찰해야만 할 것이다. 일본 엔카는 일본 전역의 온천을 살리기 위해 온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었고,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하면서 전체 온천이 모두 살아나게 되었다. 김이 설설 피어나는 노천탕에 앉아서 ‘유노마치 엘레지’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지역의 명소를 바탕으로 노래가 생겨날 수 있고, 그 노래 하나가 절창이 되어 해당 장소를 역사적 장소로 만들어간다. 하늘이 베푼 온천을 보유하고서도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지금이라도 부산의 온천 담당 행정기관과 문화관련 책임일꾼들은 이런 점을 깊이 헤아리고 원점에서 성찰해갈 필요가 있다.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