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원희 등 26명 120여 점 선봬
- 연계 강좌·아카이브 등도 마련
1980년대 부산 화단을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는 ‘형상미술’이다. 구체적 일상과 인간 실존 문제에 주목하는 경향으로, 이러한 개인적 서사는 필연적으로 당시의 사회상 또는 시대적 고민을 내포한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국미술사 전체의 맥락에서는 민중미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대 담론이 주류를 이루면서, 형상미술은 민중미술의 한 분파로 여겨지거나 논의에서 소외되곤 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형상미술, 형상성에 대한 미술사적 정립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런 점에 착안해 올해 첫 번째 기획전으로 형상미술을 재조명하는 ‘거대한 일상 : 지층의 역전’전을 마련했다. 1980년을 기점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부산 미술사를 정리하는 작업이자, 한국 미술사를 보다 두텁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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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립미술관 ‘거대한 일상:지층의 역전’전에 전시되는 김춘자 작가의 ‘생(生)-88’.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오는 8월 22일까지 개최하는 이번 기획전은 노원희 안창홍 정복수 최석운 등 부산 연고 작가 26명의 작품 120여 점으로 구성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형상적 감각을 드러낸 작가들의 작품들로 추렸다는 게 미술관 측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전시실에는 한국미술계의 흐름을 아우르는 아카이브, 인터뷰 영상도 선보인다.
전시는 ▷현실의 표정-형상의 전개 ▷표현의 회복 ▷뒤틀린 욕망 ▷격랑의 시대 총 4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시기가 아닌 주제와 특징을 잘 담아낸 키워드로 작품을 구분했다. 먼저 ‘현실의 표정-형상의 전개’ 섹션은 1970년대 주류를 이룬 추상과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발 의식에서 태동한 ‘새로운 형상성’에 대해 소개한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서사에 주목하거나 시대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인 삶의 표정으로 그린 송주섭 작가의 ‘세대’(1982)와 정복수 작가의 ‘고독을 소독하는 사람’(1978) 등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어지는 ‘표현의 회복 ’ 섹션은 인간 일상 풍경을 통해 시대를 바라봤던 개인들의 격렬한 시선에 집중한다. 정진윤 작가의 ‘여왕의 잠’(1989)을 비롯해 강렬한 색감, 초현실적인 배경과 배치, 한국적 소재 등을 활용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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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주섭 작가의 ‘세대’.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형상미술의 다원성을 보여주는 ‘뒤틀린 욕망’ 섹션은 섹슈얼리티와 욕망, 과장된 인물 묘사를 통해 급격한 산업화나 자본주의의 폐해 등 혼란한 시대를 드러내는 작품들을 조명한다. 김춘자 작가의 ‘생(生)-88’(1988), 김미애 작가의 ‘매치’(1988) 등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묘사와 언캐니(Uncanny)한 도상들의 조합이 눈길을 끈다. 박병제 작가의 ‘자화상’(1990), 안창홍 작가의 ‘위험한 놀이’(1983)가 포함된 ‘격랑의 시대’ 섹션에서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삶의 체취를 보다 다각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미술관은 기획전 기간에 배움의공간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도 운영한다. 1980년대 작가들이 주목한 일상과 다양한 삶의 체험을 당대 문학과 관련지어 사유하고 표현하는 프로그램으로, 연령 제한이 없다.
또 다음 달 13일부터 6월 3일까지 매주 목요일 미술관 대강당에서는 시민 강좌 ‘기혜경 관장과 함께하는 한국 현대미술사’도 진행한다. 기혜경 관장은 “지역 미술사 조명을 통해 1980년대 한국 미술사를 재고하려는 이번 전시에 시민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