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이후 부산테마 중 최다
- 수난·번영 등 변화 생생히 담아
- 서울 출신 백야성의 부산 사랑
- 1960년 ‘마도로스 부기’ 비롯
- ‘잘 있거라 부산항’ 등 연속 히트
- 남일해가 부른 ‘메리켕 항구’
- 한국 연인 두고 떠나는 미국선원
- 美에 종속된 한반도 슬픔 묘사
어떤 가수든 부산 테마 노래를 한두 곡씩 부르지 않은 경우가 드물 것이다. 그만큼 부산 테마 노래는 가수들이 서로 부르고 싶었던 꿈이자 로망의 대상이다. 무엇을 부산 테마라고 하는가?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부산 테마로 손쉽게 편입되는 것으로는 부산항 마도로스 낙동강 부산역 경부선 영도다리 동래온천 송도 해운대 남포동 광복동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동백섬 용두산 피란살이 등이 그 대표적 검색어이다. 1930년대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부산 테마 노래들은 어김없이 이 테마들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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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부산 곳곳을 테마로 노래 한두 곡 부르지 않은 가수가 드물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선택된 장소는 부산항이었다. 사진은 1960년대의 부산항. |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으뜸 테마는 단연 부산항이다. 몇몇 사례를 들어보면 ‘울며 헤진 부산항’(남인수), ‘청춘항구’(남인수), ‘마음의 부산항’(허민), ‘여수의 부산항구’(손인호), ‘추억의 부산항’, ‘향수의 부산항구’(손인호), ‘항구의 사랑’(윤일로), ‘그리워라 부산항’(최갑석), ‘잘 있거라 부산항’(백야성), ‘항구의 영번지’(백야성), ‘항구의 트위스트’(백야성), ‘돌아온 부산항구’(백야성), ‘항구의 5분전 열두 시’(남상규), ‘항구의 바카본드’(방태원), ‘부산항 제2부두’(최숙자), ‘꿈속의 부산항’(이미자), ‘울지 마라 부산항’(이미자), ‘안개 낀 부산항’(남일해), ‘찾아온 제1부두’(진송남), ‘이별의 항구’(태현철), ‘황혼의 제3부두’(문주란), ‘돌아와요 부산항에’(조용필), ‘부산항 제3부두’(최안순), ‘항구의 나그네’(설운도) 등을 우선 손꼽을 수 있다. 이 곡목들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부산항의 역사와 변화 및 숨결까지 읽어낼 수 있다. 수난과 핍박, 이별과 고통, 발전과 번영에 이르기까지 부산항 천변만화의 얼굴이 생생하게 포착되고 있다.
■부산 테마 가장 많이 노래한 백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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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가요사를 통틀어 부산을 테마로 한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른 가수 백야성. |
한국가요사를 통틀어 부산 테마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른 가수는 누구일까? 집계를 해보면 자못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백야성이 가장 으뜸이고, 방운아 손인호 남인수 남일해 윤일로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가수 백야성(1934~2016)은 서울 출생이지만 부산은 그를 기억해야만 한다. 온 생애를 다 바쳐서 부산을 사랑했고, 부산 테마를 혼신의 열정으로 노래했던 인물이다.
백야성이 발표한 여러 장의 앨범 재킷은 온통 부산 테마 노래로 가득하다. 표지사진조차 잘 어울리는 마도로스 복장으로 기타를 품에 안고 있다. 아마도 그의 전생은 부산 시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 어찌 이토록 일생을 부산에 대한 그리움, 부산에 대한 애착과 지극한 사랑을 일관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가요계의 가수들이 부산 테마 노래를 부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지만 대개는 한두 곡 정도이다. 하지만 백야성은 오로지 부산 테마 노래로만 일관했던 가수이다.
1957년부터 KBS노래자랑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고, 본격 데뷔는 이듬해 1959년 오아시스에서 발표한 ‘마음의 이별’이다. 백야성이 부산에 본격적으로 애착을 갖게 된 시기는 1960년부터이다. 피란시기 부산에서 도미도레코드를 설립하여 다수의 히트곡을 냈던 가수 겸 작곡가 한복남이 환도 후 서울로 떠나지 않고 서구 아미동에서 여전히 힘겹게 사업을 이어가던 시절, 신인가수 백야성을 만나 두 사람은 ‘마도로스 부기’(이철수 작사, 한복남 작곡, 백야성 노래)를 발표해서 엄청난 히트를 시키게 된다. 이듬해 ‘잘 있거라 부산항’(손로원 작사, 김용만 작곡, 백야성 노래)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면서 가수 백야성은 완전히 부산 테마 가요의 최고 지위에 앉게 된다. 또 다른 별명으로는 ‘마도로스 노래의 황제’란 칭호까지 얻었다. 일생을 통해 발표한 가요작품 중 부산 테마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항구의 일 번지 부기우기 일 번지/ 글라스를 채워다오 부기우기 아가씨/ 고동이 슬피 울면 이별이란다/ 저 달이 지기 전에 이 술이 깨기 전에/ 부기우기 부기우기 마도로스 부기우기
-백야성의 ‘마도로스 부기’ 1절
■슬픈 한반도의 상황이 반영된 ‘메리켕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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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 |
다음으로는 ‘메리켕 항구’(손로원 작사, 백영호 작곡, 남일해 노래)라는 특이한 노래 한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의 가사를 가만히 음미해보노라면 강대국인 미국과 약소국인 한국의 슬픈 민족적 대비구도가 암암리에 느껴져서 기분이 편하지 않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메리켕’은 ‘미리견(米利堅)’, 즉 아메리카를 뜻하는 한자말이다. 항구에 여러 날 정박했던 미국 상선은 드디어 부산을 떠나간다. 잠시 정을 붙였던 여인과도 작별이다. 여인은 미국 상선에 매달려 흐느낀다. 메리켕 선박은 버림받고 흐느끼는 한국의 여인을 냉혹하게 떼어내며 먼 바다로 홀연히 떠나는 그림으로 펼쳐진다.
이 가요시의 작가 손로원은 대중가요 노랫말에 빗대어서 종속적 한미관계의 불평등과 다수의 문제점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6.25전쟁 발발 이후 은혜로운 시혜자의 얼굴로 다가온 미국의 존재성과 거기에 삶의 모든 것이 마치 슬픈 운명처럼 계박되어 있는 가련한 한반도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통속성을 담보로 하는 대중가요이면서도 한미관계의 위상을 비롯하여 상당한 현실의식을 연상시키는 가창효과로 작용한다.
여러 해전 여러 문화예술인과 경남 거창의 금원산을 등반한 뒤 그날 밤 뒤풀이 장소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캠프파이어를 즐긴 적이 있다. 연극연출가 K모씨가 주흥이 도도해지자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 한 곡을 자청해서 불렀다. ‘메리켕 항구’였다. 필자는 처음 듣는 노래가사의 충격적 전개와 드라마틱한 효과에 압도되어 마치 감전된 느낌이었다. 대중가요 노랫말도 이처럼 강렬하고 상징적인 현실의식이 반영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은 것이다.
메리켕 밤 항구에 창문을 열어 놓으면/ 쓰라린 이별마다 쓰디쓴 담배연기/ 길게 뿜는 메리켕 저 부두에서/ 떠나가는 아메리카 상선에 매달려서/ 느껴 울던 그 사람을 바다위에 버려야지/ 메리켕 메리켕 메리켕/ 로맨스 로맨스 로맨스/
팽개치던 메리켕 카바레에서/ 트위스트 춤을 추던 신나는 그 리듬에/ 기다리던 그 날짜를 미련 없이 잊어야지/ 메리켕 메리켕 메리켕/ 로맨스 로맨스 로맨스
-남일해의 ‘메리켕 항구’ 전문
시인·한국대중음악힐링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