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래부사가 공적 작성한 서류
- 문헌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중
- 최근 용사 후손 통해 실체 확인
- 독립운동가 번역본도 찾는 성과
- 향토역사 문화 자산 활용 기대
1592년 왜군이 쳐들어와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경상좌수영이 있던 지금의 부산 수영구 일대가 일찍 함락된다. 경상좌수사 박홍이 개전 직후 전황이 극히 불리해지자 수영성과 함대를 버리고 전선에서 이탈한 뒤 전쟁 기간 7년 내내 수영은 일본군 수중에 떨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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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 25 의용’의 한 분인 최막내의 전주 최씨 족보에 실려있는 ‘최가정방록’. 김성효 전문기자 |
‘수영 25 의용’은 그런 상황에서 압도적 전력의 왜적에 맞서 군사적 저항 투쟁을 펼친 수영의 백성 25인을 일컫는다. 수영 25 의용의 공적을 조선 조정이 정식으로 높이 평가하고, 그 활약과 헌신을 기려 후손들에게 전한 ‘정방록(旌榜錄)’의 실체를 담은 사료가 잇따라 발굴됐다. 부산 임진왜란사, 부산 향토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 자산인데도 좀체 관심이 확산되지 못한 수영 25 의용을 재조명하고 활용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방록은 왜란이 끝나고 10년 뒤인 1608년(광해군 즉위년) 뛰어난 문인이던 이안눌 동래부사가 주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엄밀히 조사한 뒤 쓰기 시작해 이듬해 펴냈다. 일종의 국가 공인 공적 조서이다. 이를 바탕으로 후손의 호역(戶役)을 면제하고 상을 주는 조처도 뒤따른다.
김종수(7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수영구협의회장은 “부산 수영구 향토사를 재발견·재조명하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정방록’의 중요성을 알게 됐으나 찾을 수 없었다”며 “부산시 디지털 부산역사문화대전에도 ‘정방록은 찾을 수가 없고 기록상으로만 전한다’고 나온다”며 고충을 설명했다. ‘기록상으로만 전한다’는 설명이 현재 역사학계의 정설인 셈이다.
‘정방록’을 찾아 헤매던 김 회장에게 지난해 9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영의용충혼숭모회의 일지 등을 검토하다 알아낸 단서를 바탕으로 1986년 부산 남구청(수영구는 1995년 생긴다)이 펴낸 ‘남구향토지’에 독립운동가 이태길 선생이 번역한 ‘김가정방록’이 실려있음을 확인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는 수영 25 의용 가운데 김옥계 의용의 집안에 내려진 ‘정방록’이었다. 김 회장은 “이어 놀랍게도 같은 달 말 수영 25 의용의 한 분인 최막내 어른의 15세손 최도선(72·부산 연제구 연산동) 씨가 보관하는 전주 최씨 족보에서 ‘최가정방록(崔家旌榜錄)’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는 “원본 그 자체는 아니지만 ‘정방록’ 실체를 찾았다. 오는 4월 출간할 저의 책 ‘정방록을 찾다-25 의용·독당·수영성’(도서출판 비온후)에 상세한 내용을 싣고, 이를 역사문화 자산이자 스토리텔링 자원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