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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29> 경주 시장백반

경주 식재료로 만든 30여 가지 반찬…인심까지 푸짐하게 먹고 갑니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2-23 19:50:32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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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역 앞 재래시장인 성동시장
- 백반집 15곳 40여 년 자리 지켜

- 감포 가자미·도루묵 조림은 기본
- 특산품 곤달비·우엉도 맛깔나
- 제철 채소·해조류도 조물조물
- 뷔페식으로 차려 자유롭게 먹고
- 저렴한 가격에 마음까지 배불러

시장만큼 그 지역의 식재료와 음식문화를 잘 읽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시장에 제일 먼저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고 그 계절 따라 제철의 식재료가 선을 보인다. 지역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그 지역 사람들의 조리방식대로 해 먹는 음식이 바로 ‘향토음식’이 되겠다.

경주는 ‘천년의 고도(古都)’다. 신라가 도읍을 정한 곳이 경주이다 보니 오랜 세월 음식문화 또한 긴 세월의 여정을 겪었을 것이다. 고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의 음식문화를 집대성한 정식(定食)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전주가 그렇고, 안동이 그러하며 진주도 뒤지지 않는다. 아울러 경주 또한 나름의 격식을 갖춘 정식이 발달한 지역이다.

그러나 서민들의 음식문화를 들여다보려면 단연 ‘백반(白飯)’이다. 제철에 나는 그 지역의 식재료로 별다른 격식 없이 무심한 듯 차려내는 밥상. 그러나 반찬 하나하나에도 조물조물 손맛의 정성과 만든 이의 따뜻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백반이다.

한정식이 격식과 예법에 의해 차려진다면, 백반은 서민들이 무시로 찾아서 먹는 끼니라 생각하면 되겠다. 특히 도시서민의 생활공간인 재래시장에 자리 잡은 시장백반집은, 서민의 음식문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어 나름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40여 년 전통 성동시장 백반골목

경주 성동시장의 백반집. 음식을 뷔페식으로 차려 놓았다.
경주의 대표적 시장백반은 성동시장 안 백반집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백반집들이다. 시장의 제일 큰 공간을 통째로 차지하고 15개의 고만고만한 백반집들이 40여 년 옹기종기 모여 영업을 하고 있다.

성동시장은 경주역 앞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한때 경주 인근의 물산이 경주역을 통해 모두 성동시장으로 집산되었다. 때문에 철마다 다양한 식재료가 성동시장으로 몰리고, 이를 조리해 밥을 팔던 푸짐한 인심의 밥집이 시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시장기를 해결했을 터다.

이들 백반집의 특징은 반찬을 뷔페식으로 차려놓고 자유롭게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한 ‘한식뷔페’ 형태로 영업을 한다는 것. 시장에서 철마다 들어오는 식재료로 30여 가지의 반찬을 그날그날 조리해 고봉으로 쌓아놓고, 먹고 싶은 반찬을 직접 접시에 담아서 먹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동시장 뷔페식 백반집을 제일 먼저 시작한 청도식당 1대 주인 이금석(81) 씨는 “처음에는 일반 백반집처럼 밥상을 차려 줬는데 자꾸 음식이 남는 거라. 그래서 지금처럼 반찬을 뷔페식으로 쌓아놓고 손님 스스로가 좋아하고 먹고 싶은 반찬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그 유래를 설명한다. 말인즉슨 옛 시장백반이 요즘 세태에 맞는 현대화 과정을 거쳐 지금의 뷔페식 백반집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주 특산물과 해조류 풍부한 밥상

손님에게 반찬 권하는 백반집 주인.
경주를 대표하는 백반집이라 음식 중 몇몇 가지는 경주에서 나는 특산물로 차려진다. 그중 대표적인 경주의 식재료로는 경주 최대 어항인 감포에서 나는 가자미, 도루묵을 잘 말린 반 건조 생선과 경주가 국내 최대 생산지인 곤달비, 경주김밥의 주요재료인 우엉, 경주 사람들 밑반찬 식재료로 늘 소용되는 파란 콩잎, 노란콩잎 등등, 경주사람들이 즐기는 식재료가 철 따라 조리되어 제공된다.

여느 백반들처럼 경주백반 또한 제철 채소로 만든 나물류들이 밥상 위 계절을 알려준다. 봄에는 곤달비 취나물 머위 제피(산초) 등으로 무쳐낸 산나물이, 여름에는 풋콩잎과 열무, 배추 등으로 담아낸 물김치 정구지 얼갈이 등 갖은 푸새로 버무려낸 겉절이가, 가을에는 노란콩잎 김치 등 맛깔스런 김치 류가, 겨울에는 잘 말린 나물로 고소하게 무쳐낸 다채로운 묵나물이 입맛을 자극한다.

바다 냄새 물씬 풍기는 해조류 반찬도 푸짐하다. 생미역무침과 미역줄기볶음, 모자반(몰) 톳 파래 가사리(꼬시래기) 등을 조물조물 무쳐냈다. 각종 장아찌들도 소복소복하다. 깻잎 제피잎 콩잎 통마늘 젓갈류도 오징어젓갈 멸치젓갈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서민들이 주로 찾는 백반집이라 추억의 음식들도 다양하게 선을 보인다. 커다란 소시지를 어슷하게 썰어 계란 물에 부쳐낸 소시지부침, 한 접시 가득 쌓아놓은 계란말이 동그랑땡 비엔나소시지 어묵조림, 마른반찬도 명태껍질 멸치 쥐포 오징어채 꽃게 어린 것 등으로 다양하게 무쳐냈다.

쌈 종류도 철 따라 넉넉히 올라오는데 숙채는 호박잎 양배추 머위 시래기 생채는 각종 쌈 채소들, 다시마 등 해조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양념도 젓갈 강된장 막장 간장양념장 등 다양하게 구비해 놓아 입맛에 따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마침 갓 채취한 머위 숙채가 나와 오랜만에 쌉싸래한 봄 머위 쌈을 멸치젓에 싸먹었다. 점심 전이라 매번 조리한 반찬들을 맛보라고 권한다. 생김치가 몇 가지 올라오고 가지나물 도라지 무침도 좋다. 우엉조림도 달콤하니 맛있다. 전체적으로 제피를 많이 쓰고 멸치젓을 활용하는 것이 부산과 비슷해 입맛이 딱 맞다.

양북뷔페 신말남(70) 대표는 “그래서 그런지 부산 사람들, 경주에 오면 일부러 많이 찾아와요. 입맛에 딱 맞는다고요”라며 연신 모자란 반찬 없냐고 물어봐 준다. 고향동네 단골 밥집에 온 느낌이다.
백반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생선조림 삼총사. 왼쪽부터 코다리·가자미·도루묵.
■가자미·도루묵조림은 필수

성동시장 백반집에서 가장 유명한 반찬은 가자미와 도루묵조림이다. 가자미와 도루묵 반 건조한 것을 양념장에 뭉근하게 조려내는데,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하여 남녀노소 밥반찬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경주 감포가 가자미와 도루묵 산지이기에 제철에는 넉넉한 생산량이 사철 백반집의 주요 반찬이 되었다. 저녁녘에는 주변 상인과 직장인들이 막걸리 한 잔의 안주로도 흔쾌한 것이 이들 생선조림이다. 시장에서 이 조림을 따로 사가는 사람들도 많다.

봄철에는 곤달비로 쌈도 싸고 장아찌로도 내놓는다. 여름에는 푸른 콩잎으로 자작하게 물김치를 올리고, 가을에는 단풍 든 노랑 콩잎으로 장아찌 김치를 담가 내기도 한다. 제피잎 장아찌 또한 경주 사람들 입맛 돌리는 데 안성맞춤인 음식이다.

국은 하루에 두서너 가지를 끓여놓는데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 주로 시래깃국이나 소고깃국 콩나물국 등이 제공된다. 밥 또한 시장인심이라 주인장이 하얀 쌀밥을 넉넉히 퍼 담아서 주기에 양이 적은 사람은 미리 이야기를 해야겠다.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끼워 파는 한 상의 음식, 백반. 원래 시장백반은 시장국밥의 상위 정식 개념이었다. “처음에는 (성동시장에서) 소고기 국밥을 팔았어요. 당시 소고깃국에 말아주는 국수는 30원, 소고깃국밥은 50원 받았어요. 소고깃국으로 차린 백반은 100원 했고요.” 청도식당 주인 이 씨의 말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개 중 고급 상차림이었단 뜻일 게다.

시장에서 장거리를 사고팔던 우리네 이웃들이, 시장 한쪽서 시장기를 속였던 밥상이 시장백반이었다. 지금은 시대상황에 맞춰 그 형식을 다양하게 변화하긴 했어도, 싼값으로 제철 음식을 푸짐하게 거둬 먹이는 주인장들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는 시장백반이겠다.

시인 · 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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