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적 사실과 진실 관통하는
- 핵심 고리 찾으려 기획 연재
- 상·하층민 대등 원리로 기술
- 숨은 가치 제대로 된 연구 필요
- 민중 속 불성 알아챘던 일연
- 그들 공감하고 존귀함 인정
- 유교 지식인·불교 승려 질타
- 그 가치 이은 것이 ‘훈민정음’
- 정천구 “못 다룬 조목만 100개
- 전체 포괄하는 책 펴낼 계획
- 한국·한민족 미래 열기 위해
- 일관된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
국제신문이 ㈜상지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와 공동으로 기획해 지난해 9월 시작한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시리즈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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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학자 정천구(오른쪽) 박사와 조봉권 선임기자가 부산 동래구 복천동고분군(복천박물관)에서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연재를 마무리하는 대담을 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가야역사를 담은 ‘가락국기’가 실렸고, 복천동고분군에서는 가야 유물이 많이 나와 이곳을 대담 장소로 잡았다. 김성효 전문기자 |
‘삼국유사’는 ‘자료집’이 아니며, 일연 스님이 평생에 걸쳐, 철저한 기획과 염원 아래, 민중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한민족 역사와 정체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 또한 방대하게 섭렵해 써낸, 21세기 한국학의 보고임을 이 시리즈는 한 땀 한 땀 밝혔다. 한국의, 한민족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삼국유사’라는 보물상자부터 새로운 관점에서 열어야 함을 역설한 고전학자 정천구 박사를 인터뷰해 에필로그로 삼는다.
“이번 연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삼국유사’의 조목이 100개가 넘고, ‘삼국유사’ 전체의 3분의 1 정도만 포괄한 연재였기에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그래도 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삼국유사’를 다시 본다면 숨겨진 의미를 읽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 박사는 분량과 기간의 한계로 이번 연재에서 포괄하지 못한 조목 등을 풀어 책으로 엮는 작업을 시작했다. “국제신문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연재는 ‘삼국유사’의 ‘역사’ 부문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부문은 ‘불교’다. 책은 불교 부문 등을 새롭게 집필해 각 500쪽짜리 2권으로 1년쯤 뒤에 펴낼 예정이다.” ‘삼국유사’를 총체로, 통으로, 일관된 관점으로 꿰뚫는 저서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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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범어사가 소장한 ‘삼국유사’(1394년 간행본) 표지(왼쪽)와 본문. 국제신문 DB |
■일연 스님의 탁월함과 위대함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연재는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진실을 모두 염두에 두고 진행했다. 그것은 기존 연구 방식과 관점을 벗어나, 문학 종교 역사 신화 등 관점 어디서 보든 하나로 관통하는 핵심고리를 찾는 일이었다. 연재하면서 그런 전체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고 그는 말했다. “단순 소박하게는, 일연 스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중요하게 판단해 ‘삼국유사’에 실었을까 하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근대 분과 학문 방식으로, 개별 연구자가 자기 전공 관점에서 개별로 접근하면 ‘삼국유사’의 숲은 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역사적 사실’을 고증해 실제 여부를 가리는 일도 물론 의미 있지만, ‘역사적 진실’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컨대 역사학자가 ‘역사학의 눈으로만 삼국유사를 보았더니 사실(史實)과 일치하지 않는 대목이 많았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는 엉터리!’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삼국유사’가 품은 진실과 가치는 안 보인다. 역사 문학 신화 전설 민속학 지리 등 다양한 분야 연구자가 ‘삼국유사’에 접근하지만, 결국 전체를 통으로 꿰뚫어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분과 안에 머물고 만다. ‘삼국유사’는 제대로 안 보인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삼국유사’는 ‘다행히’ 민중의 관점을 실었다. 역사는 상층과 하층이 함께 만든다. 근대 학문은 상층(지배층·지식층)의 역사, 상층이 쓴 역사만 보여준다. ‘삼국유사’는 기층의 역사, 기층이 보고 해석하고 기억한 역사를 이야기하려 했다. 바로 여기 ‘삼국유사’의 ‘혁명성’이 내장됐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기 힘들었을, 한민족의 문화 DNA와 기질,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민중성이 전해진 것이다. 정 박사는 “우리 역사를 이해할 때 요체 가운데 하나가 ‘민중’인데 그런 민중이 주체적으로 역사를 보고 불교를 이해한 그런 이야기를 알아보고 ‘삼국유사’에 기록한 일연 스님이 대단한 분이다”고 강조했다. 중세였던 고려 시절, 지식은 상층이 독점했다. 민중은 글도 몰랐고 기록을 남길 수 없었으며, 기록되지 않은 지식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때 민중을 있는 그대로 보고, 훨씬 깊이 들여다본 점은 일연 스님이 우리에게 남겨준 어떤 유산보다 크다는 설명이다. 이어 정 박사는 이번 연재에서 기본이 된 방향을 ‘대등의 원리’로 짚었다. “그것이 이번 연재를 관통한 핵심이다. 그런 대등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됐는지 보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덧붙였다. 일연 스님은 가장 존귀한 국사였고 고려 충렬왕은 국사 이상으로 일연 스님을 존경했다. 그럼에도 일연 스님은 오만·교만에 빠지지도 않았고, 낮은 존재인 하찮은 민중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값어치를 알아봤다. 올바르게, 치열하게 수행하여 내면이 담박하게 텅 비어 있었다는 뜻이라고 정 박사는 설명했다.
“아집 독선에 빠지는 건 아주 쉬워요. 노력 안 해도 되죠. 거기서 벗어나는 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이 대중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어울려 똑같이 먹고 지낸 것처럼 일연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내려가)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기록했죠.”
■“‘삼국유사’ 이은 건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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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연 스님 |
정 박사는 ‘민중 속에 불성이 있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고 민중과 공감하며 민중을 귀한 존재로 인식한 ‘전통’을 간추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라 원효 스님이 먼저고, 고려 일연 스님이 그 일을 했고. 조선에서는 세종이 그러했습니다. 세종은 세속의 제왕이지만 부처의 마음을 지녔지요. ‘삼국유사’를 이은 것은 ‘훈민정음’입니다.” 그는 “‘삼국유사’를 이은 것이 ‘훈민정음’”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통해 겨냥한 주 타깃은 당대 유교 지식인과 불교 승려였습니다.” ‘삼국유사’의 체제와 구성 원리는 치밀하고 독특한데, 여기에는 일연 스님의 깊은 문제의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삼국유사’에 여러 가지 지리서가 거론되고 인용된 점에도 주목했다. “당시 승려는 행각하면서 돌아다닌 존재였습니다. 지리학자처럼 이 땅을 다녔죠. 그런 가운데 일연 스님은 다종다양한 지리서를 참고하고 인용해 ‘삼국유사’를 씁니다. 왜 그랬을까요? 민중이 들려준 이야기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실·진실임을 알고 그걸 입증하려고 지리서를 풍부하게 활용한 것으로 저는 추론합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나는 ‘삼국유사’가 일연 스님이 평생에 걸쳐 매우 오랜 기간 쓴 글이지, 어떤 시점에 특정한 장소에서 쓴 책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삼국유사’의 ‘기이’ 편은 북쪽 고조선에서 해양권의 금관가야로 이어지는 판도를 보여준다. 여기서 ‘이주와 융합’이 활발할 때 한민족은 강해졌음을 볼 수 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보면 구간이라는 존재가 이미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신라에는 ‘육촌 촌장’으로 상징되는 주민이 먼저 살고 있지요. 부족국가가 먼저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박혁거세나 박·석·김, 김수로왕이 등장한 것은 이주민이 새롭게 들어왔다는 뜻이죠. ‘이주와 융합’이 우리 정체성을 형성한 귀중한 요소임을 알 수 있죠.”
정 박사는 “이번 연재에서는 못 다뤘지만, ‘삼국유사’의 마지막 편인 ‘효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속 윤리인 효와 출가자 덕목인 선을 합친 것이 효선입니다. 이는 유교와 불교의 융합을 나타내죠. 나는 ‘삼국유사’의 총괄을 ‘효선’ 편으로 봅니다.” 이렇듯 ‘삼국유사’는 편목 하나하나마다 다 의미가 담겼고, 슬쩍 넣어놓은 듯한 짧은 문장에도 모두 깊은 뜻이 있다. 이걸 허투루 봐서는 ‘삼국유사’의 전모는 안 보인다.
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공동기획
·㈜상지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국제신문
※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강연 동영상은 상지인문학아카데미 유튜브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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