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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아디동 블루스 /박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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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2-31 18: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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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망했다 랩과 국악이라니 내 마음처럼…
- 배배 꼬인 등나무 줄기만 한참을 째려봤다

- 석구는 길게 숨을 내쉰 뒤 눈을 감았다
- 그의 입에서는 아리랑이 흘러 나와 … 

“야! 이가비. 운동장 등나무로 나와라.”

학교 음악제가 코앞이다. 선생님은 왜 저런 범생이와 팀을 정해 줬는지. 휴, 나는 허리춤에 걸쳐 놓은 바지를 추켜 올리고 랩 연습을 했다.

“에이요. 내 이름은 표현. 열두 살의 래퍼. 우리 학교 최강. 날 상대할 자 아무도 없지. 요.”

운동장을 걸어오는 이가비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추를 목까지 꽉 채운 셔츠와 커다란 안경. 답답한 옆 가르마에, 턱에 난 대왕 점까지 그냥 다 별로다.

언제 왔는지 이가비가 등나무 의자 앞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나는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너 뭐 할 줄 아는 거 있냐?”

땅만 보던 이가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

“뭐? 뭔 소리야?”

“우리 소리.”

“그게 뭔데?”

이가비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진정코 봄이로구나. 어때? 사철가야.”

아, 망했다. 랩과 국악이라니. 내 마음처럼 배배 꼬인 등나무 줄기만 한참을 째려봤다.

“너 랩 할 줄 아냐?”

“랩?”

나는 포기하듯 고개만 까딱했다.

“뜻밖의 별주부와 마주친 호랑이도 용봉탕 좋은 줄은 알았던가 보드라. 호랑이 좋아라고, 야 이놈아. 너 뭐라고 중얼거려 쌌냐? 어서 이리 오너라 먹자.”

이가비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는 아니리인데, 수궁가 중 호랑이 뒷다리란 대목이야.”

“하…….”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일 보자는 말만 남기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 문화 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박물관 같았다. 도자기, 불상, 먹으로 그린 그림들, 역사책도 지겨운데 여기서 또 보다니. 그때, 음악 소리가 들렸다. 드럼과 피아노 반주에 첼로 소리가 뜀박질하듯 경쾌했다. 고개를 돌렸다. 축음기가 있었다. 네모난 나무 상자에 나팔 모양의 금속관이 달린 축음기였다.

“이 음악이 좋은가 보구먼.”

할아버지가 레코드판 하나를 건넸다. 고대 유물전에 나올법한 레코드판을 만지다니 신기했다.

“그거 50년도 넘은 거야. 아주 귀한 거지. 우리 손주 같아서 내 특별히 싸게 줄 테니까 가져가.”

아빠에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달라고 조르던 참이었다. 이건 어디다 써야 하나 생각하며 레코드판을 살폈다. 앞표지에는 체크 정장을 입은 외국인 아저씨가 첼로와 함께 웃고 있었다. 이름이 오스카였다. 아, 이런. 제목도 영어였다. 띄엄띄엄 읽었다.

“AH-DEE-DONG, 아디동 블루스?”

할아버지가 갑자기 축음기 소리를 높였다. 오래된 축음기가 지직거렸다. 아리랑 첼로 연주가 흘러나왔다. 재즈 음악이었다. 축음기가 다시 지직거리더니 나팔관이 마치 입처럼 오물거렸다. 나도 모르게 축음기 나팔관으로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나팔관에서 손이 쑥 나와 내 손을 낚아챘다. 나는 나팔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웅웅대는 소리가 났다.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혀왔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 누가 내 손을 잡고 쑥 끌어 올렸다. 내가 정신을 차리자 어떤 아이가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신 좀 드냐?”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턱에 난 점, 이가비?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안경 벗은 이가비였다. 그런데 머리 모양과 옷이 달랐다.

“야! 너 뭐야?”

“물에 빠진 놈 살려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심보일세?”

“뭐?”

그러고 보니 몸이 축축했다. 분명 문화 장터였는데, 주변을 살폈다. 냇가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야! 이가비 여기가 어디야?”

이가비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빨래만 하고 있었다. 나는 이가비 닮은 꼴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 내 말 안 들려?”

“성격이 고약한 줄 알았으면 그냥 물에 둘 걸 그랬어. 그리고 아까부터 이가비라 하는데, 나 아니거든.”

“그럼 넌 뭔데?”

“나 석구다. 어쩔래?”

“석구?”

그때 돌이 하나 날아와 냇가에 박혔다. 앉아있던 석구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

“미군 빨래는 우리 거라 했지.”

석구보다 두 뼘이나 더 큰 아이들이 다가왔다.

“너보다 내가 더 먼저 했거든!”

석구가 일어나 맞섰다.

“그래서 뭐!”

무서운 얼굴을 한 아이들은 석구를 밀치고 빨래통을 걷어찼다. 빨래통에 있던 군복들이 물 위로 흩어졌다.

“야! 하지 마!”

아이들은 달려드는 석구를 물속에 휙 밀쳤다. 석구는 그대로 냇가에 고꾸라졌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걸리면 그때는 알지? 조심해라. 이석구.”

아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물속에 주저앉은 석구는 꼼짝하지 않았다. 냇물로 떠내려가던 군복이 내 발목에 휘감겼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몸을 던져 떠내려가는 군복들을 집어 올렸다. 내가 봐도 좀 날렵했다. 석구도 그런 내 모습을 힐끔거렸다.

석구는 빨래를 담아 어딘가로 걸어갔다. 나는 석구 뒤를 따라갔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높은 건물은 물론 차도 없었다. 깊은 산속 마을인가? 조금 걸어가니 온통 움막집인 동네가 나타났다. 영화 세트장인가?

“근데, 여기가 어디야?”

석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너도 피난길에 혼자가 된 모양이구나.”

“뭐, 피난길? 야, 지금이 50년대냐. 뭔 피난길?”

“응. 1952년이야.”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됐다.

“장난하냐?”

석구가 별일 아니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여기는 너같은 아이들이 많아. 전쟁통에 부모 잃고, 정신까지 잃은 애들.”

“뭔 소리야?”

석구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뭐지? 그러고 보니 석구도 동네 사람들도 옷차림이 이상했다. 깡통시장에서 봤던 구제보다 더 오래돼 보였다. 머릿속이 엉망이 됐다. 아, 손! 축음기 나팔관 속 손과 물속의 손, 어쩌면 같은 손일지 모른다. 바로 석구의 손. 다시 석구의 손을 잡으면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석구에게 더 바짝 다가가 걸었다.

석구는 움막집 동네를 지나 뒷산으로 올라갔다. 나무와 나무를 묶어 길게 연결한 빨랫줄이 있었다. 그런데 빨랫줄에는 몇몇 빨래만 있고 나머지는 더럽혀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까 걔들 짓 아냐?”

석구는 말없이 바닥에 떨어진 빨래를 털어 빨래통에 넣었다.

“너 왜 가만히 있어? 겁쟁이구나?”

석구가 픽 바람 빠지듯 웃었다.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강원도에서 정말 죽을 고비 넘기고 이곳에 왔거든.”

석구는 마른 군복을 갠 다음 풀밭에 앉았다. 발밑 피란민 마을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올라왔다.

“우리 할아버지는 떼꾼이었어.”

“떼……, 뭐?”

“정선 소나무가 진짜 좋거든. 정선 소나무를 서울까지 운반하는 사람. 뗏목을 타고 말이야.”

“뗏목?”

“아우라지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물살이 센 곳이 많아. 뗏목을 타고 가기엔 힘든 길이었어. 그럴 때마다 떼꾼들은 아라리를 부르며 힘을 냈대.”

“아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석구의 노랫가락은 구슬펐다.

“여기까지 오면서 굶어 죽은 사람도 봤고, 총 맞아 죽은 군인도 봤어. 무서웠어. 그럴 때마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소리를 했어.”

석구의 눈동자에 물기가 스며들었다. 조금 뜸을 들이다 노래를 불렀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 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언덕 너머 철쭉 핀 산들이 세 겹이나 보였다. 석구의 노래가 구불구불한 산을 한 겹, 두 겹 넘어갔다.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면서 내 가슴을 간질였다.

“사철가지?”

“응. 너도 아는 노래야?”

“뭐 어쩌면, 그럴지도.”

해가 산에 반쯤 걸릴 때 우린 다 마른 군복을 가지고 언덕을 내려왔다.


석구가 미군 부대 철조망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미군 부대 안은 소란스러웠다.멀리서 번쩍번쩍 불빛도 보이고, 쿵짝쿵짝 드럼과 첼로,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위문공연단이 왔나 보네.”

석구의 말에 나는 까치발을 들고 부대 안을 살폈다.

“위문공연단?”

낮게 들리는 음악 소리에 몸이 들썩거렸다. 석구도 고개를 까딱거리며 리듬을 맞췄다. 조금 있으니, 미군 두 명이 건들거리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헤이, 몽키. 쏭.”

저건 놀리는 말이다. 영어를 몰라도 미군 아저씨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석구야, 아니야.”

나는 석구의 팔을 잡았다. 석구는 내 손을 빼냈다. 놀리듯 웃어대는 미군들 앞에 석구가 다가갔다. 나는 더 세게 석구의 팔을 잡았다.

“야, 아니라고. 너 바보냐? 하지 마!”

석구는 내 팔을 더 세게 뿌리치며 말했다.

“이거 놔. 노래 안 부르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는다고! 상관하지 마.”

석구가 나를 밀쳤다. 나는 한발 물러난 채 서 있었다. 석구가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석구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노래가 끝나자 미군들은 히죽대며 통조림과 초콜릿을 석구의 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개킨 군복을 들고 부대로 돌아갔다. 나와 석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서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지켜보던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군복이 아닌 체크 정장을 입고 있었다.

“어, 저 사람, 나 아는데.”

레코드판 표지에 있던 오스카 아저씨였다. 오스카 아저씨는 우리에게 다가와서 석구가 부른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놀려대던 미군들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아, 리?”

오스카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석구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아. 리. 랑!”

오스카 아저씨도 힘주어 말했다.

“아디동!”

오스카 아저씨가 웃으며 석구에게 아리랑을 불러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석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둥그런 보름달이 조명이 돼 석구를 비추고 있었다. 석구는 마치 무대에 선 것 같았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석구만의 무대. 석구는 길게 숨을 내쉰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석구의 입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석구의 아리랑은 굽이굽이 펼쳐진 산과 같았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석구의 아리랑은 산을 휘감아 도는 강과 같았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피난길에 석구가 내쉬었을 한숨이 느껴졌다.

“원더풀, 원더풀.”

아리랑이 끝나자 오스카 아저씨는 손뼉 치며 소리를 질렀다. 오스카 아저씨의 칭찬에 석구가 활짝 웃었다. 석구의 웃음은 보름달보다 환했다. 오스카 아저씨가 손을 내밀었다. 석구가 주춤거렸다. 나는 석구 손을 잡고 오스카 아저씨와 악수를 시켰다. 아! 손. 석구의 손이 열쇠였다. 시간을 여는 열쇠. 석구와 오스카 아저씨의 모습이 뱅글뱅글 돌며 점점 멀어졌다. 나는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저기, 학생. 사실 우리 손주는 서른 살인데, 우리 손주 어릴 때와 어찌 그리 똑같누. 싸게 줄게. 천 원짜리 두어 장만 주고 가지고 가.”

눈을 떴을 때 다시 문화 장터였다. 할아버지와 내가 레코드판을 맞잡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레코드판을 가방에 넣었지만, 지퍼가 잠기지 않았다.

다음 날 등나무 아래에서 이가비를 만났다. 쭈뼛대던 이가비가 내 가방에서 레코드판을 꺼내 들었다.

“어, 이거 우리 집에도 있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예전에 할아버지가 미군 부대에서 아리랑을 불렀대. 그걸 듣고 미국의 재즈 음악가 아저씨가 음악을 만들었대.”

“아, 혹시 이 석자, 구자 되시니?”

“네가 어떻게 알아?”

나는 씩 입꼬리를 올렸다. 이가비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앞에 랩을 할 테니까 랩이 끝나면 네가 아리랑을 불러 봐.”

“아리랑 아라리 고개는 우리의 고개. 너와 가까이 한 고개. 모두 들어봐 우리의 노래. 너희와 다른 노래. 우리는 그래. 우리는 소리와 랩을 하는 랩소리. 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등나무 아래는 우리의 무대 같았다. 등나무 꽃이 무대 조명보다 환하게 우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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