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사관을 좇았던 사회학자 아놀드 하우저(사진)는 서양에서 전개됐던 문화예술을 사회학 렌즈로 고찰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이하 문예사)를 대표작으로 남겨 20세기 유럽 지성인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문예와 그 주역인 예술가가 현실과 어떤 관계인지, 사회와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규명한 역저는 예술사회학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헝가리 태생이고 1차 세계대전에 쫓겨 빈 파리 베를린 런던 같은 유럽 대도시를 떠돌았다. 이런 망명 생활은 고달팠지만, 세상 이면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눈을 줬다. 예술학 정신분석학 미술심리학 경제학 사회학을 포함한 다양한 사고를 접하며 지력을 쌓았다.
핵심 지력 발전소는 1910년대 말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무대로 활동한 지식인 집단 ‘일요서클’. 여기서 그는 루카치, 만하임 같은 당대 인문학자와 교류하며 예술사 극예술 영화 부문을 향한 주관을 다듬었다.
1938년 나치를 피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영국 런던을 찾았다. 이 시기 하우저는 영화사 품팔이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면서 대영도서관에 틀어박혀 10여 년 만에 ‘문예사’를 썼다. 영문판(1951년)에 이어 독일어판(1954년)을 펴냈다.
그는 예술과 사회가 맺는 불가분 관계를 직접 체험했다. 막일하면서 ‘문예사’를 탈고해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무명 학자가 쓴 글이라며 퇴짜를 맞았다. 곤경에 빠진 그에게 영국 미술사학자 허버트 리드가 손을 내밀었다. 그가 출판 보증을 서준 덕에 이 고전은 겨우 나왔다. 가난하지만 재능이 남달랐던 ‘예술가’ 하우저에게 ‘메디치’ 허버트 리드가 제공한 후원으로 오늘날 우리는 ‘문예사’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