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요리사이자 자연요리연구가
- 식재료 찾아 세상 떠도는 방랑식객이
- 특별한 밥상 차리기까지 여정 담아
- “마음이 가득 담긴 음식 먹으면
- 가슴 속 응어리 풀리고 평화 찾아와
- ‘밥정’보는 관객도 그런 체험 했으면”
최근 몇 년간 교육부에서 조사한 초등학생 희망 직업 상위권에 셰프가 올라 있다. 셰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고, 식생활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셰프들이 많이 출연하면서 여러 명의 ‘스타 셰프’가 배출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중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음식에 담고, 나눔의 미학을 전파하는 셰프가 있다. 그가 바로 지난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밥정’의 주인공 임지호 셰프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시작된 10년의 여정을 담은 ‘밥정’은 낳아주셨지만 얼굴조차 모르는 친어머니, 가슴으로 기르신 양어머니, 길 위에서 만난 어머니 등 세 어머니와의 아름다운 이별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발길 닿는 대로 재료를 찾고 손길 닿는 대로 요리를 만드는 방랑식객 임 셰프를 만나 인간미 넘치는 요리 철학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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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요리사인 임지호 셰프. 지난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밥정’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음식 철학이 담겨 있다. 하얀소엔터테인먼트·엣나인필름 제공 |
■셰프의 길
세계적인 요리사이자 자연요리연구가인 임 셰프는 유엔 한국 음식 축제(2003),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식 시연회(2005), 베네수엘라 한국음식전(2005) 등으로 세계 각국에 한국 음식을 알렸고, 2007년 제1회 뉴욕한류상,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문화관광부 장관상 표창을 받으며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셰프로 인정받았다. 또한 KBS1 ‘인간극장’과 SBS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 등으로 많은 감흥을 전하며 대중과 교감했다. 최근에는 SBS ‘정글의 법칙 with 헌터와 셰프’에 출연해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만찬을 선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친모와 이별한 임 셰프가 요리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단순하다.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 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요리가 의식주를 해결하기 가장 쉬운 직업이었고, 그렇게 요리를 시작한 지 50년이 됐다”는 임 셰프는 “음식은 어떤 감정의 기복도 평정하게 해서 평화롭게 생명을 살리고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마음이 담긴 음식을 먹으면 오랫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응어리를 풀 수 있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병을 낫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0대 때부터 한중일 및 서양의 요리를 도제식으로 배운 임 셰프는 현재 한식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우리 것, 선조들이 해왔던 것을 기본으로 한다. 식재료도 우리의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만든 것이 최고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다고 알리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그것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좋은 친구가 되고 서로 나누게 된다. 좋은 맛은 세계가 공유한다.” 그는 더 좋은 우리의 맛을 찾기 위해서 매 계절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뿜어내는 자연 속 다양한 식재료를 찾아 다녔고, 그렇게 평생을 떠돌아다녀 ‘방랑식객’이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렇게 전국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해주기도 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한 것이 음식이다.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혹시 이 음식으로 만날 수 있을까, 내가 해주는 음식을 어머니와 관계된 혈육이 먹으면 좋겠다는 기대감 속에서 이것을 계속 해왔다.” 이러한 그의 여정을 그린 ‘밥정’에는 지리산 단천 마을의 김순규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임 셰프가 길 위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또 한 분의 어머니다.
■밥으로 나누는 정, 그리고 어머니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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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 |
‘밥정’은 2009년 어느 날 “지리산 큰 나무 밑에서 할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그분을 찾아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임 셰프의 말에서 시작됐다. “할머니의 나물 뜯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몸이 불편한데 주름이 많은 얼굴로 웃는 모습에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 웃음은 인생의 꽃이자 아름다움이었다. 할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숨 쉬듯이 하셨다. 우리가 살면서 알지 못하는 고마운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을 알았을 때 인생은 훨씬 더 빛날 것이다.” 임 셰프의 말에 2006년 ‘인간극장’ 때부터 인연을 맺고 있던 박혜령 감독이 함께 나섰다.
‘밥정’에는 임 셰프가 자연 식재료로 요리한 청각초밥, 솔방울 국수, 토란국, 두부 계란찜, 모과청 등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등장한다. 그는 이제 자연 식재료를 잡으면 자동으로 어떤 음식을 할지 그려진다. 돌이나 나무를 이용한 플레이팅도 음식처럼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그의 음식은 자유롭게 느껴지고 즉흥적이지만 오래된 장인의 절제된 형식미가 가미돼 더 아름답다.
지리산을 찾은 임 셰프에게 할머니가 끓여주는 냉잇국. “밭에서 뜯어서 한소끔 끓인 것인데, 가슴에서 우러나는 따뜻함을 느끼게 한 것이 바로 그 냉잇국 한 그릇이었다. 너무 감사하고 감동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는데, 미각 DNA에 나도 모르게 각인돼 있었고 냉잇국을 먹으면서 그것을 찾아서 감사했다.”
■세 어머니와의 이별, 그리고 새로운 길
멀미 때문에 외지로 나가지 못하던 할머니에게 전국의 다양한 식재료로 생신상을 차려주려고 했던 임 셰프에게 어느 날 비보가 날아든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지리산 할머니 집에 멍하니 앉아 있던 임 셰프는 3일 밤낮으로 제사상을 차렸다. 낳아준 어머니, 길러준 어머니, 길 위에서 만난 어머니를 위한 상으로, 103가지의 음식과 다섯 개의 무형의 접시를 포함해 모두 108개의 접시가 대청마루에 차려졌다. 무형의 접시에는 허영심을 버릴 것, 거짓말하지 않을 것, 부지런할 것,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가질 것, 음식을 먹을 사람에게 어떤 음식을 나눌지 재료를 판단하는 매의 눈을 갖는 것 등 다섯 가지의 요리 철학을 담았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참회의 시간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참회와 감사,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 3일간 만든 것이다. 그 과정은 가슴에 맺혀 있는 것들을 풀어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세 분의 어머니를 위한 것이지만, 잘 보면 지방이 없다. 세 분의 어머니로 출발해서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드실 수 있도록 했다.”
임 셰프는 ‘밥정’을 촬영하면서 많이 울었다. 그렇게 응어리를 풀었고,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가 생겼다. “‘밥정’을 보면서 관객들이 나처럼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다. 세계 영화제에 초청받아 갔을 때 관객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가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도 마찬가지로 공유할 수 있고 나눠야 한다.” 임 셰프는 우리의 음식을 전 세계인에게 먹여주고, 음식으로 한국을 그리워하고 방문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60대 중반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찾아가는 임 셰프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을 마음에 담아 본다. “인생은 겸허하고 작은 손을 내밀듯이 하라. 새떼가 삼각편대로 날아갈 때 리더가 꼭짓점이 돼서 용기를 주듯 나도 도구일 뿐이다. 나의 인생은 그 도구로 충실하게 사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고, 이에 감사하고 가치를 느낀다.”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