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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와 21세기 한국학 <5> 왜 ‘유사(遺事)’인가

불교 배척 ‘삼국사기’와 유교 간과 ‘해동고승전’의 대안사서로 집필

  • 정천구 고전학자
  •  |   입력 : 2020-09-27 19:34:0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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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 승려 전기 없이 유교사관 편향
- 불교사 공정하게 서술 안해

- 반발한 각훈 저술 ‘해동고승전’
- 고승 행적 중심으로만 기록
- 민중 배제한 채 불교 우위 강조

- ‘삼국유사’는 두 정사와 달리
- 새로운 사관에 입각해 저술

‘삼국유사’는 ‘삼국(三國)의 유사(遺事)’라는 뜻이다. 왜 유사라 했을까? 유사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기록되지 못하고 남은 일, 버려진 일을 뜻한다. 둘째는 사관(史官)이 아닌 사람이 썼음을 뜻한다. 이는 곧 ‘삼국유사’가 사관이 아닌 사람이 정사(正史)에 실리지 못한 일들을 기록하고 편찬한 책이라는 뜻이니, 적절한 풀이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히 해명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삼국유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위에서 풀이한 뜻보다 훨씬 심오한 의미가 있으리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단순한 ‘유사’치고는 그럴듯한 체재와 구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삼국유사’의 체재와 구성은 수많은 연구가 있었음에도 충분히 설명되지 못했다. 그것은 숨은 원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원리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먼저 ‘삼국유사’와 자주 비교되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의 특성 및 의의를 따져보아야 한다.
   
명나라 때 그린 자금성. 황제 중심의 차등적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왼쪽),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 성과 속을 구분하며 암암리에 승려의 우위를 고착화했다. 문화재청·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삼국사기’의 유교사관

1145년 김부식(金富軾)이 열 명의 사관을 이끌고 편찬한 ‘삼국사기’(50권)는 정사(正史)다. 이에 반해 ‘삼국유사’를 ‘야사(野史)’라 하는데, 적절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 자세히 논한다.

중국 수나라 역사를 기록한 ‘수서(隋書)’(636년) 권33의 ‘경적지(經籍志)’에 “이때부터(진수가 ‘삼국지(三國志)’를 편찬한 이후) 저술된 역사서는 모두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을 따랐는데, 이를 정사라고 여겼다”고 나온다. 사마천은 기전체(紀傳體) 형식을 고안했고, 반고는 유교사관(儒敎史觀)에 입각해 ‘한서(漢書)’를 썼다. 기전체는 제왕이나 군주의 행적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본기(本紀)’와 남다른 행적을 보인 개인들의 전기를 서술한 ‘열전(列傳)’을 중심으로 한 시대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역사 서술 방식이다.

유교사관은 김부식이 인종에게 ‘삼국사기’를 올리며 쓴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에 잘 나타난다. “‘고기’는 문자가 거칠고 졸렬하여 사적이 빠지고 없어졌습니다. 이런 까닭에 임금의 선과 악, 신하의 참됨과 사특함, 나라의 평안과 위태함, 인민이 다스려지고 혼란해짐을 다 드러내 권계로 삼을 수 없습니다.”

선과 악, 참됨과 사특함은 통치자인 군주와 그를 보좌하는 신하들을 판단하는 유교적 기준이며, 나라의 안위와 인민의 치란을 좌우하는 윤리적 행위다. 김부식은 ‘고기’를 두고 “문자가 거칠고 졸렬하다”고 했는데, 문장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유교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인물들에 대해 엄정하게 윤리적 평가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런 비판에 걸맞게 김부식 등은 서술 방식이나 문장 수준 등에서 중국의 정사에 손색이 없는 ‘삼국사기’를 내놓았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불교사를 공정하게 서술하지 않았다. 그 분량도 매우 적을뿐더러 역사적으로 주요한 역할을 한 승려들의 전기가 ‘열전’에 전혀 없다. 원효조차 ‘설총전(薛聰傳)’에서 “아버지는 원효다” 정도로 서술했다. 이는 불교를 대립적으로 또 부정적으로 인식한 유교사관에 의해 편향되게 서술했음을 뜻한다. “부처의 법을 받들면서 그 폐단을 알지 못하고 마을마다 탑과 절이 즐비하고 백성은 달아나 승려가 되게 해 병사와 농민이 줄고 나라가 날로 쇠약해졌으니, 그러고서야 어찌 문란해져서 멸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신라본기’ 제12)라고 서술했을 정도다. 그 결과, ‘삼국사기’는 실제 삼국의 역사를 반쪽으로 만든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반발해 ‘해동고승전’이 저술됐다.

   
유교사관으로 쓴 ‘삼국사기’(왼쪽), 불교사관으로 쓴 ‘해동고승전’. 문화재청·국사편찬위원회 제공
■ ‘해동고승전’의 불교사관

‘삼국사기’ 권46에 “김대문이 ‘고승전’을 지었다”는 대목이 나오지만, 그 책은 전하지 않는다. 지금 전하는 것은 각훈(覺訓)의 ‘해동고승전’(1215)이다. 겨우 2권만 남아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지만, 권1과 권2가 ‘유통(流通)’편이며 중국 고승전의 ‘역경(譯經)’편을 대신해 둔 것이라 밝힌 데서 십과(十科) 체재에 따라 저술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양(梁)나라 혜교(慧皎, 495∼554)가 마련하고 후대의 전범이 된 십과는 역경과 의해(義解) 신이(神異) 습선(習禪) 명률(明律) 유신(遺身) 송경(誦經) 흥복(興福) 경사(經師) 창도(唱導) 등이다.

각훈은 석망명(釋亡名)의 전기 말미에 “그때 좋은 역사가가 있어 그 업적을 나열하고 서술하지 못했음이 한이 될 뿐이다”(時無良史羅縷厥緖爲恨耳)고 적었다. 이는 당시까지 온전한 고승전을 편찬하지 못해 초기 불교사가 부실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며, 동시에 고승전 편찬자가 역사가여야 한다는 인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각훈의 발언으로 고승전은 불교계의 정사(正史)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기전체 역사서가 제왕 또는 군주의 행적을 중심으로 서술한다면, 고승전은 고승의 행적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각각 세간과 출세간에서 존귀한 존재로 여겨진 인물들을 내세운 셈이다. ‘해동고승전’ 권1의 ‘논왈(論曰)’에 “법의 수레바퀴를 굴려 중생을 이롭게 한다”(轉法利生)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석가모니가 본보기로 보여준 것으로, 모든 고승이 좇아 한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승들이 보여준 행적은 범부의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담시(曇始)가 날카로운 칼에 베였어도 전혀 다치지 않은 일이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은 일, 안함(安含)이 입적했을 때 푸른 물결 위에 자리를 펴고 앉아, 기쁘게 서쪽으로 향해 가는 안함을 중국에서 돌아오던 사신이 만난 일 따위는 유교사관에서는 전혀 인정할 수 없는 괴이하고 허황된 일이다. 그러나 고승전에서는 위신(威神) 신이(神異) 감통(感通) 등이 나타난 것으로 보면서 ‘신성(神聖)하다’고 여긴다. 이것이 유교사관과 다른 불교사관(佛敎史觀)이다.

‘해동고승전’ 권1의 ‘법공’에서 염촉이 한 말에 불교사관의 특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무릇 비상한 사람이 있은 뒤에야 비상한 일이 있습니다. … 부처님께 신통력이 있으시다면, 내가 죽을 때 반드시 이상한 일이 있을 것입니다.”(夫有非常之人而後有非常之事. … 佛若有神, 吾死當有異事) 비상한 일이나 이상한 일은 초인간적이고 초월적인 일이다. 고승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비상한 사람이고, 고승전은 그런 사람들의 전기다. 이로써 유교에 대해 불교의 우위를 주장했으며, 고승이 중생뿐 아니라 세간의 어떠한 존재보다도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 두 정사의 대안으로서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해동고승전’은 모두 유교와 불교를 전해준 중국의 전통에 따라 편찬됐다. 이 두 정사는 고려가 중국과 대등한 문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성과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실제 역사의 또 다른 두 축이었던 하층 민중을 간과하고 불교를 배제했다. 이런 ‘삼국사기’의 횡포에 맞선 ‘해동고승전’ 또한 불교의 우위를 주장하느라 유교가 세속에서 한 역할을 간과했고, 고승의 신성함을 강조하느라 불교사의 또 다른 축인 중생 곧 민중을 배제했다.

‘삼국사기’와 ‘해동고승전’의 이런 대립과 차등적 인식을 용인할 수 없었던 일연은 ‘삼국유사’라는 대안사서를 저술했다. ‘유사’는 새로운 사관에 입각한 역사서임을 나타낸다.

그 사관은 신이사관(神異史觀)으로 불리는데, 다음 글에서 다룬다.

정천구 고전학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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